Ⅹ. 각자의 기억②
JM그룹 감사실
길재는 감사실장에게 첫 번째 주간리포트 보고를 잘 끝내고 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매주 루틴하게 해야 하는 일들은 한 번씩 다 해봤으니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나중에 개별 감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만 하면이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길재가 그룹 감사실 이동대상 후보로 발탁되었던 건
그가 계열사의 감사부서에 있을 때 여러 가지 감사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실력을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홀하게 지나치는 자료에서도 뭔가 정보를 확인해 내고 그런 정보들 간의 상관관계를 보고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그런 실력들이 그룹 감사실에도 소문나면서 길재에 대한 이동 요청이 있게 된 것이었다.
길재의 실력은그가 가진왕성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의 성과를 완성하는 건 '의심'이었다.
주어진 답변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합리적 의심을 거치며의문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길재의 장점무료 카지노 게임,
사람에 따라서는 길재에게 '너 나 못 믿냐?'라고 할 정도로 그는 타인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늘 합리적 의심을 계속해왔기에 길재가 여러 프로젝트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길재는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핸드폰 알림을 보고 그룹 제보 시스템에새로운제보가 접수된 것을확인했다.
무슨 내용인지확인하는 건 다음 날 출근해서 해도 되는 일무료 카지노 게임지만,
혹시나 민감한 제보 건이라면 미리 추가로 확인할 내용이 있을까 싶어서컴퓨터로 회사의 클라우드 PC에 접속해 보았다.
"에이 뭐야... 이런 내용도그룹 감사실에 제보가 되는구나"
확인한 내용은자신의 상점 앞에서 누군가 상습적으로 흡연을 하는 데,그 사람이JM그룹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찾아서 처벌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아무런 증거나 단서도 없이 자신의 기분만 장황하게서술하고 있어서 이런 제보에 대해서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없어 보였다.
'그룹 감사실이라서계열사보다 훨씬 심각하거나 고차원적인일들을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니구나... 이런건은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내일 출근해서 앞서 처리된 전례들을 비교해서 정리해야겠다'
새로 접수된 제보에 대해서는 더 할 일이 없었지만,길재는 기왕 회사의 클라우드 컴퓨터에 접속한 김에궁금해서 이전에 다운로드해 놓았던조회 제한 케이스의 첨부파일을 열어보았다.
파일에는 100여 페이지가 훨씬 넘는 분량의 글이 정리되어 있었다,
권기현이란 사람이 마치 소설 같은 형식으로 쓴 글무료 카지노 게임고,기현이란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그의 1인칭 관점에서마치 현장에서보고 있는 것처럼세세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글에는길재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등장하고 있었기에호기심을 크게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김도형 부회장, 허종호 부회장은 둘 다 JM그룹의 전임 기획조정실장무료 카지노 게임던 사람들인데...
그 둘이 모두 다 JM텔레콤의 천지방송 M&A건에 관여되어 있었나 보네'
긴 글이었지만 상당히 읽기 쉽게 정리된 내용에는 흥미 있는 부분도 많아서 어느새 길재는 한 시간 넘게 글을 읽었고 결국은 전체 분량을 한 번에 모두 다 읽게 되었다.
모든 내용을 읽은 길재에게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궁금한 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권기현이란 사람이 쓴 글에는기업인수 과정에서 문서계수의 조작과 공정보고 위반이 분명한 사례가 다수 있었고누가 언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다 정리되어 있었다.
'이 정도로자세한 내용이 전달되었으면뭐라도 조사가 되었을 법도 한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현이란 사람은 실무자들이 그렇게 일하도록 만든 사람이 있다고 보는 거구나
누군가의 지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거군.
하긴 그러니까 그 배후를알아봐 달라고조사 요청을 한 거겠지'
길재의 생각엔 혹시나 너무나도 고위직이 연루된 일이라서 그룹 감사실이 나서지 않았던 것인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권기현의 글에는 당시 M&A를 둘러싼 계열사와 그룹 기획조정실 간의 혼선과 난맥상이 드러나 있었다.
'아니 2018년 가을만 해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는 김도형 부회장 말고 다른 사람들은 천지방송 인수를 반대했나 보지? 그런데 어떻게 단 3개월여 만에 정반대의 결론이 났을까?'
길재의 합리적 의심이 커질수록 그는 기현이 조사요청을 하게 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확실히문제가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란 건 이미 다 알려져 있었는데도
회사에 피해를 주는 무료 카지노 게임를 밀어붙여 체결시킨 게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던 거네
근데 권기현? 이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 사람이지?'
길재는 그룹 인트라넷의 임직원 검색에서 권기현이란 사람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조회 결과 그룹에는 권기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모두 8명이 있었다.
하지만 JM텔레콤이나 JM방송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다른 계열사의 직원도 6명은 아직 사원, 대리, 과장인 것으로 보아 리더급이었던 기현과 동일인은 아닌 것 같았다.
나머지 2명도JM화학과 JM테크의 공장 소속 생산직으로 보여서 동일인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럼 아마 이미 퇴직을 한 건가?'
주말이면 길재는 동네 카페에 들러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루틴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카페에 가면서 길재가 노트북을 챙겼다.
무거워서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길재가 노트북을 챙긴 것은 뭔가 꼭 할 일이 있어서인 듯했다.
길재는 직접 기현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그가 쓴 글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믿을 만했지만, 합리적 의심은 길재의 생활습관 같은 것이었다.
길재가 주목한 팩트체크 대상은 3가지였다.
첫 번째는 JM방송(구 천지방송)과 JM텔레콤의 실적이었다.
기업인수 시점에 주장했던 기대성과와 기현의 우려를 지금의 실제성과와비교하면 그다음 팩트를 체크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같았다.
두 번째는 과거 인수를 전후한 언론 환경과 이해관계자 동향무료 카지노 게임다.
정말로 기현이 주장하는 것처럼 회사의 바깥에서도 거래를 종용하는 모종의 분위기가 있었는지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당시 거래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현재 포지션을 확인해보려 했다.
당시의 거래 이후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된다면 누가 배후인지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정식 감사가 아니기에 자료는 공개된 재무정보와 기업분석 리포트를 활용해야 했고 나머진 검색엔진을 이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길재 혼자 퀵으로 체크해 보는 수준이라서 정확성이 떨어질 것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었다.
하지만반나절 정도 팩트체크를 해 본 결과,길재는 더 이상의 팩트체크를 포기했다.
그건 이미 천지방송 M&A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끝난 것이란 걸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처절한 실패,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든 완벽한 실패였다'
JM방송(구 천지방송)은 인수 후 5년간 연속적인 적자를 기록했고가입자도 매년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회사의 자본은 6천억 원이나 감소한 상태였고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주가 역시 액면가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애초에 액면가 10배의 가치를 인정해서 인수한 기업이었기에 그 간극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기대성과나 시너지를 따지는 일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었다.
2018년몇 개 온라인 언론사는 마치 스포츠를 중계하듯 M&A를 기정사실화 한 체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특정 증권사의 기업분석이나 애널리스트 인터뷰도 그 근거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길재가 확인해 보니 정작 기업인수가 마무리된 이후로는 그들 중 누구도 M&A의 결과에 대해선 언급하는 곳이 없었다.
M&A의 필요성을1년 내내 떠들어대던 애널리스트도 그 후로는 JM방송에 대한 종목분석을 완전히 중단해 버렸다.
길재가 확인한 모든 정황은 기현이 정리한 글의 내용이 정확한 사실이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길재의 의심이 거둬지고 기현의 글 내용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자
그의 호기심은 다시 권기현이란 사람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니 이 정도로 정확하게 무료 카지노 게임에 대해 분석하고
그룹 감사실장에게도 직접 조사를 요청할 정도이면
굉장히 합리적이면서겁이 없고 집요한 사람 같은데 지금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면 자기가 한 주장이 모두 현실이 되었으니
회사에서도 그 사람 판단을 높게 평가할 것 같은데...
마치 증발된 사람처럼 아무 흔적도 찾아지지가 않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