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계단을 올라와 다시 도보에 몸을 내민다. 몸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온 집중을 다해 딛는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아직 눈물이 날 기미는 없었는데. 놓아두었던 초점을 다시 붙잡으니 흡연구역의 불투명한 아크릴 벽이 보인다. 차마 뱉을 수 없는 단어들이 잿빛으로 승화하는 곳.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과 분리된 곳에 분리된 카지노 게임이 모이는 곳. 혹은 그냥 화학반응에 종속된 카지노 게임이 끌려가는 곳.
입장료로 카지노 게임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들어가 아크릴 벽에 몸을 기댄다. 연기와 입김이 섞여 시야를 잠시 가린다. 그 궤적을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더 위로, 더 위로. 시야에 사람들의 머리가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 연기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먹구름이 마치 한 몸처럼 합쳐진다. 비가 오기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도착해야 할 텐데.
다시 한 모금 머금고, 뱉는다.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매어둔다. 끝은 일부러 보지 않으면서 카지노 게임를 앞쪽으로 당겨 잡는다. 그렇게 타들어 가고 타들어 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손가락에 닿겠지. 고통은 자기보호의 욕구를 일으키기 위한 감각이라는데, 과연 카지노 게임의 끝이 닿으면 어떻게 될까. 앗 뜨거 소리를 내며 격하게 반응할까, 혹은 가만히 참으며 견뎌낼까. 두려움 반 기대 반의 감정을 담으며 끝까지 카지노 게임를 쳐다보지 않는다.
닿았다. 소리 없이 움찔하면서 카지노 게임를 떨어트려버렸다. 결국 내뱉지도, 참지도, 그 어느 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떨어진 꽁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아림은 니코틴에 대한 미련일까 미련한 내 행동 때문일까. 남들이 이상하게 보기 전에 발끝으로 꽁초를 뭉갠 뒤 다시 도보에 몸을 내민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떤 한 장면이 나도 모르는 새에 뇌리 깊숙이 박힐 때가 있다. 평일 오전 숙소에서 신주쿠역으로 가던 길,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 흡연부스에 눈길이 갔다. 단발머리에 정장 차림의 여성이 아크릴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보였다. 팔짱 낀 손가락 사이에 카지노 게임가 들려있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두세 번 필 동안 계속 들고만 있었다. 무표정에 공허한 눈빛은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를 피우지도 않고 카지노 게임 연기와 냄새도 싫어하는데 왜 이 장면이 뇌리에 박혔을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박힌 기억이 단순히 망각되기를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모습에 담긴 감정을 생각하며 짧은 글을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