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생각보다 위험해-첫 번째 이야기
난 주부다. 하루종일 내가 제일 오래 있는 곳은 부엌이다. 부엌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나는 부엌에서 다양한 카지노 게임를 입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입는 카지노 게임가 창상이다. ‘창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칼, 창, 총검 따위에 다친 카지노 게임라고 나온다. 창과 총검 따위는 거리가 멀지만, 주부에게 칼은 멀리하고 싶지만 너무나도 가까운 무기다. 삼시세끼 칼질을 해야 하니 남이 아닌 나를 찌르기가 너무도 쉬운 무기일 수밖에 없다.
신혼 때였다. 집들이를 준비한다고 익숙하지 않은 부엌칼로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크게 베었다. 주말이라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문을 연 병원이 없기에 그냥 집에 있었다. 꽤 많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피가 멎었다. 카지노 게임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는 낫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가 덧나서 아주 오래 고생을 했다. 한동안 칼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주부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부엌일을 누구에게 맡길 처지도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두려움은 차차 잊혔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늦잠을 자버렸다. 서둘러 아침을 차리려고 채칼로 양배추를 채 치다가 양배추가 밀려나는 바람에 내 손바닥을 밀어버렸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세면대가 피로 얼룩졌다. 너무 아프고 무서웠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소아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칼로 베는 것보다 훨씬 큰 카지노 게임란다. 채칼에 다친 카지노 게임는 손바닥의 겉 피부를 없애버린 거였기에 다 나으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피가 완전히 멈추는 데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병원에서 소독하고 붕대를 바르면 피가 멈춘 듯 보였지만, 붕대를 풀면 여전히 피가 나왔다. 무서웠다. 이러다 피가 멈추지 않으면 ‘자다가 그냥 죽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니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병원 치료는 일주일 정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한동안 조심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또 몇 달은 좋아하는 양배추 샐러드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아프고 무서웠던 기억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다시 채칼을 쓰기 시작했다. 채칼은 칼과 다른 쓰임새가 있기에 요긴하니 말이다. 대신 급할 때는 쓰지 않는다. 내 마음을 내가 다잡을 수 있을 때만 쓰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카지노 게임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연말 친구 부부와 저녁 약속을 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냉동실에 묵혀둔 마른오징어가 눈에 띄었다. 물에 담가두고 오징어가 말랑해지면 조림을 하기로 했다. 다리와 몸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야 했다. 칼보다는 가위가 나을 것 같았다. 한참 신나게 가위질을 하다 쓰라림을 느꼈다. 오징어 다리를 자르면서 내 왼손가락도 베어 버린 거다. 순간 머리가 쭈뼛섰다. 마침 토요일 오후였다.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씻어 핏물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사정없이 왼 손가락을 눌렀다. 급한 대로 약처리가 된 밴드를 붙였다. 피가 배어 나왔다. 밴드를 서너 번은 갈아주었다. 머릿속은 또 걱정으로 사정없이 돌고 돌았다.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약국이라도 뛰어가야 하나. 다행히 카지노 게임가 깊지는 않았나 보다. 피가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지만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엌은 주부의 일터이자 전쟁터다. 부엌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하지만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나의 일터이기에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당당하게 칼을 가위를 채칼을 휘두를 수는 없다. 여러 번 카지노 게임를 입으면서 배웠다. 피할 수 없으면 맞서야 하지만 상대를 잘 구슬려 내편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서두르면 안 된다’는 거다. 천천히 차근차근 하나하나 하다 보면 내 마음에 완벽하게 들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완성품이 만들어진다. 피할 수 없다고, 급하다고 나에게 채찍질을 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