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운동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정규 행사는 오전에 모두 끝났지만, 떠나지 못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운동장과 교실, 복도 사이에 머물며 이별을 밀어냈다. 누군가는 풍선을 나눠 들고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렸고, 누군가는 운동장 모래 위에 ‘6-3 forever’라고 손가락으로 적었다가 다시 지우고 반복했다.
카메라 셔터음은 그칠 줄 몰랐고, “우리 또 보자!”는 말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진심과 의례 사이에서 부유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유난히 조용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잡고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며칠 전, 학교에서 연두색 배정 통지서를 받아든 날이 떠올랐다. 반 아이들 대부분은 “같은 학교!”를 외치며 손뼉을 치고, PC방 약속을 잡고, 하굣길에 떼 지어 나갔다. 6학년 3반, 서른 명 중 같은 중학교로 배정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민석과 나.
나는 그 동그라미에서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분은 어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열아홉 번쯤 반복한 말이었다. 열아홉 번째의 “괜찮아요”는 실은 “괜찮지 않아요”의 다른 표현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어린 마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어였다.
엎질러진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마음은 가장 단순한 말을 들이밀며 버틴다. 나는 그날도 버티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입학식 날 아침, 중학교 교문 앞에 선 나는 몸에 잘 맞지 않는 교복을 몇 번이나 매만지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깨 선은 들뜨고, 와이셔츠 목깃은 뻣뻣하게 피부를 긁었다. 방금 다림질된 바지의 주름은 너무 반듯해서 걸을 때마다 어색하게 접혔고, 새 가방 끈은 어깨에 얹힌 채 자꾸만 흘러내렸다.
눈앞에는 초등학교 때보다 두 배는 높아 보이는 철제 교문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회색 기둥 사이에는 학교 이름이 커다란 검은 글씨로 박혀 있었지만, 그 문구는 어떤 이유에선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아직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벽처럼.
교문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제각기 새 운동화, 새 가방, 새 머리끈으로 단장한 채 부모 손을 꼭 붙잡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누군가는 연신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덜 말린 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앞머리 이상해?”라고 묻기도 했다.
부모들은 담담한 얼굴로도 아이를 살피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 사이에 혼자 선 나는, 그 무리 속에서 마치 중간에 잘못 끼인 퍼즐 조각처럼 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한쪽 어깨로 가방끈을 당기며,몇 번이나 민석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 사이로 민석의 검정색 안경테가 보였다.
민석은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회색 후드 안에 교복 상의를 걸친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자세였다. 나는 작게 손을 흔들었고, 민석도 나를 발견하자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별다른 말 없이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잠시 동안 나란히 교문 앞을 바라봤다.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내내 함께 보냈던 시간만큼 우리 사이엔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공기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아직 괜찮다’고 확인하는 듯한 조용한 신호. 목소리는 평소보다 살짝 낮았고, 말끝에 걸린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 점심시간에 보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작게 답했다.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수십 겹의 감정이 겹겹이 쌓여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오늘 하루는 어떻게든 서로 살아남겠지.’
‘교실이 달라도 같은 학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목소리가 더 컸다.
‘과연 중학교 생활 내내 문제없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정말 버틸 수 있을까?’
민석과 나 사이에 놓인 그 짧은 문장들은, 사실상 서로의 불안과 외로움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위로이자, 새 학년의 입구에서 나눈 가장 솔직한 연대였다.
1학년 5반. 교실 문을 밀자 파도처럼 고개들이 들렸다. 새 교복, 새 책상, 새 공기의 냄새. 낯선 얼굴들이 무심하게 나를 훑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칠판 위에는 굵은 매직으로 임시 좌석표가 붙어 있었고, 내 이름은 창가 맨 끝자리에 적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창밖 운동장은 아직 텅 비어 있었고, 그 빈 공간이 괜히 내 몫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그 공백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나는 자꾸만 거기에 시선이 갔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운동장 한가운데가 유난히 미끄러워 보였다. 그 미끄러움은 현실보다 상징에 가까웠다. 발을 헛디딜까 두려웠고, 사실은 이미 마음이 몇 번이나 미끄러져 있었다.
첫 수업 전, 담임선생님이 제안한 자기소개 방식은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하기’였다. 출석번호 역순으로 발표가 이어졌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지막 쪽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저는 ‘웃음 웃’입니다!”
“빛 광(光)!”
“꿈 몽(夢)!”
아이들의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박수와 웃음이 교실을 부드럽게 채웠다.
나는 여전히 종이에 아무 글자도 떠올리지 못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음속에 수많은 한자가 맴돌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금의 나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칠판 앞에 섰다. 손에 들린 분필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저는… ‘공(空)’이요.”
말이 끝나자 교실 뒤쪽에서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담임은어색하게 “심오하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위로보다 선을 긋는 말처럼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리에 앉았고, 하루 종일 교과서 대신 머릿속 공백과 싸워야 했다.
종례가 끝나자 교실 안은 금세 비워졌다. 누군가는 “야, 학원 같이 가자!”며 친구를 불렀고, 누군가는 공을 차러 가자고 소란이었다. 하지만 그 소란은 나와는 별개의 세계 같았다. 민석도 같은 상황이었는지, 교문 앞에 홀로 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우리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얼마나 낯선 하루를 보냈는지, 표정만으로 충분히 알 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시간대, 학교 담장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서로 다른 교실에서 하루를 버티고 나온 두 사람은, 이 길 위에서 다시 같은 시간에 섰다. PC방 간판의 초록불빛이 저 멀리 깜빡였다. 무언의 합의처럼,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PC방에서 CRT 모니터가 켜지자 익숙한 로그인 화면이 나타났다. 헤드셋을 쓰고, 손에 쥔 마우스의 무게를 확인한 뒤, 우리는 디아블로 II에 접속했다.
낯선 반 친구들과의 대화보다, 이 마우스 클릭 소리가 더 나았다. 칼을 휘두르고 몬스터를 베는 조작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표현할 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본체 팬이 윙윙 돌아가는 소리, 반들거리는 키보드, 헤드셋 너머로 터지는 스킬 이펙트—모든 것이 교실의 소음보다 익숙하고 편안했다.
“오늘 수학 어땠냐?”
“그냥… 별로. 영어는 듣기 속도 너무 빠르던데.”
대화는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를 채워야 할 존재라기보다, 옆에 있어주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키보드 소리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리듬이었고, 그 리듬 안에서 말없이 연결되었다. 던전 깊숙한 곳에서 몬스터 무리를 베고 있을 때, 나는 한순간 무중력 상태에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등수도, ‘공’이라는 글자도, 눈치와 긴장도 없는 공간. 거기에는 오직 생존과 협력만이 남아 있었다. 그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감정이었다.
어느 때 처럼 PC방에서 게임한 판을 끝나고, 화면이 로딩되는 틈에 민석이 조용히 모니터를 껐다. 손목을 주무르며, 그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말했다.
“야, 사실… 나 요즘 좀 이상한 일 당하고 있어.”
그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목소리를 낮췄다.
같은 반 XX라는 애가 수업 중 몰래 문구류를 숨기고, 쉬는 시간에는 욕을 내뱉고, 체육 시간엔 발을 걸고 간다는 이야기였다.
“애들이 있는 데서는 안 그래. 선생님도 몰라. 그래서 더 무서워.”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할 말을 잃었다.
“혹시… 선생님한테 말해 봤어?”
“아니. 증거가 있어야 믿을 거 아냐. 그리고 걔 이번에 반장이야. 반 애들 대부분 걔 편이고.”
민석은 고개를 숙인 채 책상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그 소리는 마치 교실 송풍기 소음처럼 건조하고 반복적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폭력’이라고 배운 것은 주먹질이나 욕설, 공개적인괴롭힘이었고, 이런 조용하고 반복적인 모멸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았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야… 일단 그냥 무시해 봐.”
그 말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낯설었다.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 그 상황을 외면하려는 말이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서 공포가 자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의 눈은 분명히 말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는 지금 무너지기 직전이야.”
하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 한 발 물러섰다. ‘내 일이 아니니까.’
그 한 발짝이, 훗날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거칠게 던졌던 질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낯설고 낯익은 얼굴이었다. 눈빛은 그날 하루의 모든 긴장을 안고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운동장의 미끄러운 느낌, 칠판에 적은 ‘공’이라는 글자, 교실의 정적, 민석의 동공—그 모든 것이 파편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정류장에 내릴 때 신발끈이 풀어진 줄도 몰랐고, 현관문 비밀번호도 세 번이나 틀렸다.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자마자, 서랍에서 남색 중학생 다이어리를 꺼냈다.
첫 페이지는 새하얗고 반듯했지만, 볼펜은 쉽게 종이를 누르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몰랐다. 단어를 고르려 했으나, 마음은 이미 지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결국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무것도 쓰지 않고 불을 껐다.
스탠드를 끄자 방 안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조용히 한 가지 다짐을 되뇌었다.
다음에 내 이름을 한 글자로 정의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땐 ‘공(空)’이 아니라 다른 글자를 고르겠다.
그 글자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답을 찾는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나는 알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