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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Oct 03. 2024

926. 카지노 쿠폰를 길러보니

깻잎 하나 기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화분에 들깨 씨앗 20개를 뿌렸다. 사실 농사(?) 짓는 것이 처음이라 쌀농사의 모처럼 발아시킨 후 옮겨 심어야 하는지 아니면 직파를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10일 정도 지났으나 소식이 없어 재차 20개를 뿌렸다. 이래도 싹이 나지 않으면 발아시킨 후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3~4일이 지나자 조그만 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들깨씨 껍데기를 모자처럼 쓰고 올라오는 새싹들이 귀엽다. 일주일정도 지나자 두 번째로 뿌린 씨에서도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화분이 비좁아 솎아내야 할 정도가 되었으나 어린싹을 솎아낼 용기가 없다.


40개 정도의 여리여리한 들깨 순이 자라던 어느 날 체구가 남다른 녀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콩나물 굵기의 새싹은 한눈에 봐도 들깨는 아니고 열흘정도 지나자 들깨들 생육을 방해할 정도로 잎이 커졌다. 떡잎도 커지고 본잎도 커지기 시작해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새싹을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물어봤지만 확실한 답이 없이 매일 다르다. 돌단풍이었다가 단풍취라고도 한다. 잎모양을 봐서는 오이 또는 참외 비슷하다. 하지만 어떻게 싹이 트게 되었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베란다 문은 항상 닫혀있어 외부 생물이 들어올 수 없고 화분의 흙은 구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밀봉상태가 좋아 다른 씨앗이 자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름 모를 다육식물이 말라죽은 화분의 흙도 이용했기에 씨앗이 섞일 수도 있지만 잎 모양은 다육식물이 아니다. 유력한 가능성은 씨앗봉투에 들깨 아닌 다른 씨앗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오이 아니면 참외 비슷한 이름 모를 식물의 정체는 더 커봐야 알 것 같다.


카지노 쿠폰는 둥지를 짓지 않고 흔히 뱁새라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는다. 뱁새가 자리를 비우면 카지노 쿠폰 수놈이 망을 보고 암놈이 알을 슬며시 낳고는 뱁새 알 하나를 물어온단다. 카지노 쿠폰는 머리 좋은 빌런이다.

체구가 커다란 카지노 쿠폰 새끼는 뱁새 새끼와 알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자기가 주인행세를 한다. 아직 털도 나지 않았으며 눈도 뜨지 못한 카지노 쿠폰 새끼의 이러한 행동은 먹이를 독차지하기 위한 본능일 게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세상에만 적용되는 학설이지만 카지노 쿠폰 새끼의 행태를 보면 성악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뱁새는 자기보다 체구가 큰 카지노 쿠폰를 먹여 살리느라 종일 바쁘다. 둥지가 비좁아질 때쯤이면 카지노 쿠폰는 성체가 되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길러준 은혜를 모르니 과연 빌런의 자식답다.

카지노 쿠폰는 지역에 따라 탁란 하는 둥지가 달라 알의 색상도 맞춰 산란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붉은머리오목눈이도 학습되어 카지노 쿠폰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카지노 쿠폰 산란율이 저하된다니 세상은 돌고 돈다. 하지만 빌런은 붉은머리오목눈이를 깜쪽같이 속일만한 신기술을 발명할 거다.


주인 모르게 싹이 터서 들깨가 자라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크고 있으니 뻐꾸기 행태와 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托卵(탁란)하여 자라는 뻐꾸기와 비슷해질 조짐이 있으며 새싹 이름을 모르기에 ‘뻐꾸기’라 이름 지었다.

들깨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잡초에 불과한 ‘카지노 쿠폰’를 자라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살려주었더니 빛을 가리고 지력을 빨아들여 자신들 생육을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인은 카지노 쿠폰가 커가자 자신들에게 신경을 덜 쓰는 눈치다.


마침내 주객이 전도되었다. 카지노 쿠폰 넝쿨이 감고 뻗어나갈 수 있게 지주목을 설치했다. 깻잎을 휘감지 못하게 한 조치일 수도 있지만 카지노 쿠폰를 같은 식구로 인정한다는 조치다. 적어도 뽑혀 없어질 위기의 시간은 지난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가 ‘들깨’가 아닌 ‘카지노 쿠폰’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카지노 쿠폰 보고와?’

‘응, 씩씩하게 잘 자라네. 아주 지가 주인이야.’

‘잎이 커져 들깨가 해를 못 받겠는데.’

‘그리고 잎을 만지면 묘한 향이 묻어 나’

‘뻐꾸기가 자라기에는 화분이 좁으니 분갈이를 해줘야 하나?’


결국 어린 깻잎들이 쫓겨났다. 카지노 쿠폰는 이미 뿌리를 깊이 내렸고 햇볕을 보지 못한 깻잎들은 여리디 여려 뿌리도 깊이 내리지 못해 옮겨심기 좋았다. 갑자기 싹이 튼 것과 깻잎을 몰아낸 과정을 보니 카지노 쿠폰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폭염이 기세를 떨치던 8월 초, 2미터 정도 자란 뻐꾸기와 키 작은 깻잎들이 검고 누렇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베란다내부 고온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뻐꾸기는 오이 같았지만 끝까지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깻잎 하나 기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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