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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04. 2020

아바나 스케치

아바나 헤밍웨이




아바나를 다시 찾은 이유가 뭐였을까요?

아마도 빛바랜 슬픔이 아닐까 싶카지노 게임.

집채만 한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말레꼰을 넘어옵니다.

말레꼰은 발코니라는 뜻,

산 살 바도르 요새부터 미라마르로 가는 터널까지 9km에 이르는 말레꼰이 있카지노 게임.

높은 파도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벽이지요.


말레꼰은 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낚시하는 남자,

카리브해를 바라보는 연인들,

60여 년을 고립되어 버텨온 낡고 녹슬고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어찌 보면 무엇하나 신나는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레스토랑과 길거리는 물론이고 말레꼰을 거닐 때에도 도무지 내버려 두지 않카지노 게임.

끈질기게 동전을 받아내는 그들의 손이 귀찮을 때도 있지만

어느새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하지요.



카지노 게임해질 무렵 말레꼰
카지노 게임석양을 즐기러 말레꼰을 찾은 사람들
카지노 게임유독 커플이 많은 말레꼰


낚시하는 사람들
지는 해를 조명처럼 받으며 달리는 클래식 카
철거를 앞둔 건물들이 즐비한 말레꼰





해질 무렵 말레꼰을 즐기는 클래식 카들
저녁 9시, 모로성에 불이 켜진다.
가운데 탑처럼 보이는 곳이 베다도 지역의 나시오날 호텔



사진에서는, 아니 실제로 보면 더없이 멋져 보이는 올드카,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게 싫으면 아바나를 사랑할 수 없지요.

오래된 항구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호화 크루즈가 정박해있고,

1930년 문을 연 나시오날 클럽에서는 여전히 '찬찬'과 '치자꽃 두 송이' '관타나메라'를 노래합니다.



클래식 카와 BC택시
보수 공사가 끝난 카피톨리오 앞 모델들의 촬영
클래식카와 BC택시
2년 전 만났던 아바나의 여인
말레꼰 앞
클래식 카를 타고 시티 투어를 하면 꼭 지나가는 프라도 거리와 이베로스타 호텔 사잇길



비에하 광장에는 100년이 넘은 쿠바 최초의 커피숍 '엘 에스코레알'이 있카지노 게임.

그곳의 커피가 맛있다는 건 웬만한 여행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죠.

이번에도 오가며 여러 번 커피를 마셨지만 그 맛은 여전합니다.

비에하 광장에 위치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광장에서 체육 수업을 합니다.

여행자들의 카메라가 익숙하듯 눈길도 주지 않더군요.


방금 화장을 고친 듯한 노란 벽과 파란 문에 햇살이 이병률의 시처럼 '찬란'입니다.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 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후략



한껏 멋을 낸 아바나 여인
학생들에겐 운동장이기도 한 비에하 광장
잠시 쉬는 동안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아빠들
비에하 광장의 100년 넘은 카페 '엘 에스코레알'
맑은 햇살에 비친 푸른 잎사귀
파스텔 톤으로 말끔하게 단장한 거리



뒷골목에는 쓰레기 썩는 냄새가 코를 막게 합니다.

그 옆으로 간간히 보이는 상점들에는 쿠반들이 어김없이 줄을 서지요.

그곳이 무엇을 파는 곳인지는 가까이 가기 전에는 모르기 일쑤입니다.

단일 품목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쌀과 밀가루, 설탕, 달걀들을 파는 곳입니다.

멋모르고 몇 번인가 뭔가를 사려고 시도를 했었지요.


'너한테는 안 팔아.'


매번 단호하게 나무라듯 거절당하곤 했카지노 게임.

죄진 사람처럼 무안을 당한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카지노 게임.

그날 역시 영문도 모르고 혼나듯 돌아서는 내게 한 아주머니가 작은 수첩 같은 것을 보여주었카지노 게임.

'이게 있어야 살 수 있어요.'

그건 바로 말로만 듣던 배급증 리브 레타였카지노 게임.



식량 배급서 리브레타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선 쿠바인
쿠바의 코스트코?
트리니다드의 상점
상티 스피리투스의 상점
아바나 빵집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32년부터 1960년까지 쿠바에 머무는 동안 두 곳에서 살았카지노 게임.

'핑카 비히아(Finca Vigia)',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 호텔'이지요.

두 개의 세계라는 뜻을 가진 암모스 문도스 호텔은 오비스포 거리에 있어요.

오가다 보면 우연히라도 한 번쯤은 지나치게 되는 곳이죠.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바 '라 플로리디타'와 '라 보데기타' 역시 골목을 걷다 보면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어촌 마을 '꼬히마르((Cojimar)'는 아바나 중심에서 약 10km,

20여 년간 살았던 저택 핑카 비히아는 16km 떨어진 곳에 있카지노 게임.

게다가 위치도 정 반대죠.

헤밍웨이의 특별한 팬은 아닙니다만 그곳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갔던 아쉬움이 컸지요.

마침내 꼭 가고 싶었던 그곳을 찾아갑니다.


구글에서 아바나의 로컬 버스인 메트로 버스 노선표를 구해 정보를 찾았카지노 게임.

혼자 택시로 오가기엔 아까운 생각이었지요.

멕시코에서도 로컬 버스를 몇 번 이용했으니 자신감이 생겼카지노 게임.

문제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물어물어 버스를 탔지요.


여행자들이 쓰는 화폐인 CUC은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버스 내부에 쓰여있카지노 게임.

이럴 것을 대비하여 은행에서 환전할 때 10 쿡을 현지 화폐로 바꿔 놓아 요긴했어요.

버스비는 40원.

믿을 수 없카지노 게임.

외국인이 쓰는 화폐는 현지인 화폐보다 24배가 비싸다는 건 알지만 이건 싸도 너무 쌉니다.

어디서 내리는지 물으니 종점까지 가라고 합니다.

다행히 영어를 알아듣는 그 여인을 따라 내리며 재차 물어봤지요.

헤밍웨이 비치는 어느 쪽으로 가느냐고요.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서 확인한 후 방향을 알려주었카지노 게임.



Habana의 Metro bus 노선도
모로성, 꼬히마르에 갈 수 있는 버스 P11
Cuc을 받지 않는다는 로컬 버스 안내문



여인이 알려준 대로 걸었카지노 게임.

주택이 이어지는 골목에는 그 어디에도 여행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낡은 자동차를 고치는 사람,

어슬렁거리는 동네 개,

오래된 카세트를 틀어놓은 젊은이,

마늘과 양파 꾸러미를 어깨에 맨 행상,

얼마를 걸어갔을까?

까만 깃털을 가진 커다란 새들이 바다 위를 선회하고 있는 해변이 보였카지노 게임.




해변으로 가는 길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은 깃털의 날개가 크고 부리가 빨간 새
일부러 만들어낼 수 없이 멋스럽게 낡은 해변의 자동차,



그리고 다시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 헤밍웨이의 흉상이 보입니다.

사진에서 보아왔던 터라 단박에 알 수 있었지요.

어부들이 녹슨 배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 헤밍웨이의 흉상은 소박하기 짝이 없카지노 게임.

작가를 사랑한 어부들의 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많은 돈을 들여 크고 호화롭게 만들어진 동상보다 훨씬 값어치 있지요.

흉상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의 파란 페인트 칠은 희끗희끗 벗겨져 있카지노 게임.

그래요.

꼬히마르가 아름답거나 멋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카지노 게임.

그저 그곳에 가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와 마놀라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카지노 게임.

무엇보다 호젓하고 조용한 게 좋아요.

'전망 좋은 곳'이란 뜻의 꼬히마르는 유명한 해변은 아니지만 그곳만의 갖고 있는 운치가 있더군요.


아이들 몇이 축구를 하고 마을 사람 몇몇이 수다를 늘어놓고 있카지노 게임.

흉상 앞에 작은 성처럼 보이는 건물은 오래된 스페인 요새로 지금은 쿠바 해안 경비대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치 설정이라도 한 듯 허물어져 가는 돌다리 위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선물처럼 챙겨 온 노인과 바다를 꺼냈지요.

헤밍웨이에게 한글판 책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근처의 작은 공원은 아마도 그 동네의 인터넷 존인가 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삼매경입니다.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는 여행자도 있고요.

헤밍웨이가 어부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는 레스토랑 '라 테라사'에 가보기로 했카지노 게임.

주민에게 물어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문이 굳게 닫혀 있카지노 게임.

공사 중이더군요.


해가 점점 기울고 있었카지노 게임.

하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카지노 게임.

아쉬운 대로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카페로 들어갔카지노 게임.

다이끼리를 마십니다.

바다 앞에서 술을 마시니 생각나는 시가 있카지노 게임.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이생진 - 술에 취한 바다)



마음 같아선 그 마을 어딘가의 까사에서 하루 저녁 머물고 싶었지요.

시인의 말처럼 술은 내가 마시고 바다가 취하게 하면서요.

그러나 그만한 배짱은 없었나 봅니다.

어둑어둑해지는 밤바다를 오른쪽에 호위병처럼 두고 걸음을 재촉했카지노 게임.



꼬히마르의 헤밍웨이 흉상


낚시하는 주민
인터넷 삼매경인 꼬히마르 주민들
꼬히마르에 있는 헤밍웨이 단골 바 ' 라 테라사'
꼬히마르의 다이키리



모로성이 보이는 말레꼰 앞,

2년 전 한참 공사 중이던 건물은 호텔이었카지노 게임.

이베로스타 그랜드 패커드 호텔과 파세오 델 프라도 호텔은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얻어 입은 듯 허물어져가는 말레꼰의 주변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생뚱맞아 보입니다.

아마도 쿠바가 변해가는 걸 아쉬워하는 내 마음이 커서일 겁니다.


먹는 것만큼은 아끼지 말자 합니다.

그러므로 매번 괜찮은 음식점에서 넉넉한 식사를 했지만 더 큰 호사를 부려보고 싶더군요.

계단에 빨간 카펫이 깔린 이베로스타 그랜드 패커드로 향했카지노 게임.

아마도 뉴욕의 5성급 호텔에는 쉽게 못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여기는 쿠바니까요.


호텔 앞에서 공놀이를 하던 사내아이 셋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포즈를 취합니다.

짓궂음이 뚝뚝 묻어나는 그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카지노 게임.

사진을 보고 나더니 대뜸 돈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겁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사진을 찍으라는 노인들이 있카지노 게임.

시가를 입에 물고 포즈를 취하는 그들은 대부분 돈을 요구하지요.

그들을 보고 배웠나 봅니다.

순간 그 아이들의 맑고 순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더군요.

내키지 않았지만 동전을 쥐어주었카지노 게임.



점심을 먹고 싶다고 하니 6층 레스토랑으로 안내했카지노 게임.

야외 테라스엔 실내 풀장이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카지노 게임.

저마다 셀피를 찍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그런데 고객 중 상당수가 쿠바 사람들로 보였카지노 게임.

뭔가 열심히 잘 차려입었는데 어색하고 촌스런 모양새입니다.

'나도 저들 같아 보이려나?'

그러거나 말거나입니다.


음식 값이 생각만큼 엄청 비싸지는 않더군요.

생선 스테이크와 다이키리는 5성급 호텔의 값어치를 충분히 해냈카지노 게임.

'내일 점심은 파세오 델 프라도 호텔에서 먹어볼까?'




당돌한 꼬마들
이베로스타 호텔과 맞은 편의 파세오 델 프라도 호텔
이베로스타 호텔 6층 레스토랑
다이키리와 생선 스테이크



핑카 비히아는 헤밍웨이가 살았던 아바나 외곽의 저택입니다.

지금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어요.

헤밍웨이는 1939년부터 1960년까지 그곳에 살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의 명작을 집필했지요.

1960년 7월 쿠바 혁명 후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추방당했카지노 게임.

그리고 쿠바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지요.

1년 후인 1961년 7월, 미국에서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그쯤 내가 백일을 맞았으니 그와 나는 100일 동안 같은 세상을 산 셈입니다.

미국은 쿠바와 국교를 단절했고 핑카 비히아는 헤밍웨이의 4천~6천 권 정도의 책들과 함께 쿠바 정부에 의해 몰수되었지요.

헤밍웨이가 사랑한 쿠바, 헤밍웨이를 사랑한 쿠바는 그렇게 헤어졌카지노 게임.

하지만 아바나를 찾는 이들은 끊임없이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다닙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와 더불어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 역시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기억되니까요.



1923년 여권 사진
18세, 이탈리아
노년의 헤밍웨이(유섭 카쉬 사진)



아바나의 중심가인 잉글라테라 호텔, 만사나 호텔 앞에는 클래식 카들이 늘 즐비합니다.

보기만 해도 예뻐서 가슴이 벌렁벌렁하지요.

따라서 시티 투어 호객을 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카지노 게임.

보통은 한 시간 투어에 50 쿡을 부르지만 더러는 80 쿡도 호가하지요.

맘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클래식 카들을 탈 수 있카지노 게임.

지나가는 여행자를 보면 어김없이 택시?를 외치곤 하니까요.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중심가보다 말레꼰이나 프라도 거리쯤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핑카 비히아 역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클래식 카를 타고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싶었카지노 게임.

물어보고 가격이 적당하면 타고 갈 요량입니다.


이베로 스타 호텔 앞으로 갔카지노 게임.

채 1분도 안되어 빨간색 클래식 카가 내 앞에 멈춰 서더군요.

'땍시?'(스페인어는 대부분 경음이 많다. 코리아는 꼬레아, 택시는 땍시 라고 소리낸다)

1시간 투어 가격을 물었카지노 게임.

그는 대답 대신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운 미누토 운 미누토'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인상 좋아 보이는 택시 기사는 나이가 지긋했카지노 게임.

통화를 끝내더니 이번에는 '씽코 미누토 씽코 미누토' 합니다.

5분만 기다리라는 뜻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빨간색 오픈 카가 도착했카지노 게임.

젊은 기사가 오자 올드 맨은 뭔가 좋은 일을 한 듯 뿌듯한 표정으로 유유히 떠나가더군요.

아마도 그는 영어 설명이 필요한 시티 투어를 하는 기사가 아니라 일반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인 듯했카지노 게임.

클래식카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흰 셔츠를 입카지노 게임.

헤어젤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혹은 하얀 파나마 햇을 멋들어지게 쓰기도 하지요.

번쩍번쩍 광을 낸 멋진 자동차와 잘 어울리는 모양새지요.

여행자들의 눈을 현혹해야 돈벌이가 잘 될 터입니다.


1시간 투어 금액을 물어보니 30 쿡을 달라고 합니다.

구미가 당겼지요.

나는 시티 투어와 함께 핑카 비히아까지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곳까지 다녀오려면 2시간은 걸린다고 난색을 표하더군요.

얼마면 가능하냐고 하니 50 쿡을 말합니다.

50~60 쿡이면 클래식 카를 타리라 생각했던 터라 생각할 여지가 없었카지노 게임.



클래식카
올드 맨과 영 맨(택시 드라이버)


그렇게 오픈 카를 탔카지노 게임.

출발한 지 채 5분도 안되어 후회가 밀려왔지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카프를 휘날리며 해변을 근사하게 달리는 건 그저 환상일 뿐입니다.

물론 2년 전에도 시티 투어를 했지만 그때는 도심을 천천히 돌아보는 거라 별 무리가 없었카지노 게임.

하지만 아바나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동네를 지나는 일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지요.

내가 탄 올드 카는 1958년식 쉐보레, 나보다 세 살이나 많카지노 게임.

해소 천식이 심할 만도 하지요.

매연을 머금은 바람은 눈, 코, 입의 기능을 떨어트렸카지노 게임.

한 손은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부여잡고, 다른 한 손은 스카프 자락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아야 했카지노 게임.

멋과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여행자들이 지나다니는 센트로 아바나와는 다른 풍광들이 펼쳐지고 사라졌카지노 게임.

그야말로 쿠바인들의 삶이 날 것으로 스쳐 지나가는 외곽 지역을 30분쯤 달렸카지노 게임.

산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라는 마을 입구에 헤밍웨이 박물관 안내 표지판이 있카지노 게임.

잠시 정차하여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

정문을 지나쳐 한참을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집이 보입니다.

여행자들이 대절한 노란 택시 몇 대가 주차되어 있더군요.

내가 탄 앵두빛 클래식 카가 날씬한 자태를 뽐내며 미끄러지듯 멈췄카지노 게임.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감쌋던 물색 스카프를 목에 늘어트리고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지요.

쿠바는 쌔고 쌘 게 클래식카인데 갑자기 나타난 온 올드카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렸카지노 게임.

저마다 자동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신기하더군요.



헤밍웨이는 1899년에 태어났카지노 게임.

말하자면 옛날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시절치고는 참으로 글로벌하게 살았카지노 게임.

18세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종군으로 지냈고 캐나다에서 기자 생활도 했지요.

1920년대엔 신문사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가서 6년간 체류했카지노 게임.

그때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미국 작가들과 친분을 주고받았어요.

거트루드 스타인은, 무명이지만 능력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해 준 사람입니다.

이 후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 파블로 피카소도 있었고, 그 인연으로 헤밍웨이와 지인이 되었카지노 게임.

그림을 좋아하던 그는 당시 피카소, 고흐, 고갱, 모네 등의 그림을 수집했어요.

그가 죽자 4명의 전 부인들이 그 그림들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카지노 게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그와 교류한 유명인사들을 알 수 있카지노 게임.

28년 동안 쿠바에 머물면서 캐나다 내전에 취재를 하러 가기도 했카지노 게임.

유럽은 물론이요, 취재 겸 여행으로 아프리카와 중국도 여러 차례 다녔카지노 게임.

1차 대전 참전 때는 다리에 총알 파편이 240개나 박히는 부상을 입었고, 아프리카에서 경비행기 사고로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요.


헤밍웨이는 183cm가 넘는 키에 체격도 컸카지노 게임.

끓어오르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과격한 스포츠를 즐겼지요.

시가, 술, 낚시와 사냥, 심지어 투우까지 즐겼던 마초 중의 마초였카지노 게임.

열정이 식어버린 결혼 생활을 용납하지 못했던 그는 네 번 결혼했카지노 게임.

이쯤 되면 하고 싶은 일은 어지간히 다하고 살지 않았나 싶카지노 게임.

헤밍웨이는 말했카지노 게임.

75세가 되기 전에는 노인이 아니라고요.

그랬던 그가 62세에 엽총으로 자살한 이유는 뭘까요?


티켓을 산 후 얕은 언덕을 몇 걸음 옮기니 오른쪽에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집이 보입니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아무 표지판도 없는 그 집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한 곳이더군요.

오래된 단층집 앞에 헤밍웨이의 두상이 세워져 있카지노 게임.



사이드 미러의 필자
핑카 비히아 입구의 박물관 표지판
티켓 5CUC
클래식 카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
게스트 하우스
헤밍웨이 두상
헤밍웨이가 거주하던 집



집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단지 출입문과 창문을 열어두어 안쪽을 볼 수 있도록 해놨카지노 게임.

그 집은 햇살 부자였어요.

침실과 거실, 서재 등으로 쏟아져 들어간 햇빛이 오래된 집기들을 찬란하게 비추더군요.

거실의 꽃무늬 패브릭 카우치는 밝게 빛나고 방금이라도 그가 들어설 것 같카지노 게임.

지금 살아도 근사할 것 같은 집안의 집기들은 빈티지한 멋을 머금고 있더군요.

책장 위에는 핑카 비히아 주변의 나무들을 그린듯한 수채화 몇 점이 있카지노 게임.

사냥을 즐겼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벽에는 박제된 온갖 동물들의 머리와 뿔이 걸려 있어요.

밤에 보면 섬뜩하겠다 싶을 정도로 큰 동물의 머리도 있카지노 게임.

테이블 위엔 각종 총알, 영화에서 보던 엽총이나 산탄 총의 기다란 총알들도 세워져 있카지노 게임.

아프리카 여행 기념으로 가져온 것인가 싶은 나무를 깎아 만든 동물 조각들도 일렬로 서 있고,

책장에 꽂힌 정갈한 책들, 침대 위에 놓인 신문, 테이블에 늘어놓은 빈 술병들은 그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카지노 게임.



햇살을 받아 더 싱싱해 보이는 꽃무늬 패브릭 소파
신문이 놓여진 침대
수채화, 총알들을 늘어논 책상, 그리고 책들
욕실(헤밍웨이는 체중을 재고 벽에 기록을 했다. 저울과 벽의 글씨가 보인다.)
서재
책상에 놓인 동물 박제 머리
침실2
어디나 책이 있는 헤밍웨이의 집
박제된 동물 머리와 커다란 그림
사냥과 그림을 좋아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Tower라는 표지를 따라 올라가니 조그만 그의 집필실을 볼 수 있었카지노 게임.

방의 삼면으로 유리창이 있는 그 방에는 책장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망원경이 있더군요.

'전망 좋은' 이라는 뜻을 가진 핑카 비히아의 집필실에서는 아바나 시가지가 내려다 보였카지노 게임.

책상 위에 올려진 타이프 라이터가 유난히 작았카지노 게임.

그는 무릎이 좋지 않아 평소 서서 타이핑을 하곤 했다고 하네요.

아마도 파편 조각으로 인한 수술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어요.


집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그의 낚싯배가 있카지노 게임.

4개의 묘비는 그가 키우던 개의 묘지더군요.

작은 풀장까지 갖춘 집은 가히 저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부지를 갖고 있카지노 게임.



핑카 비히아의 이정표
타워의 조그만 집필실
작은 타이프 라이터가 인상적인 책상
타일로 만든 야외 테이블
헤밍웨이의 낚시 배(PILAR Key west)
헤밍웨이의 애견 무덤
핑카 비히아의 헤밍웨이
The old man & Sea



저택을 떠나 혁명 광장과 말레꼰, 베다도 지역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잉글라테라 호텔 앞에서 내렸지요.

서른 중반으로 보였던 드라이버 나초는 스물여섯,

약간의 팁을 주었더니 환하게 웃으며 좋아합니다.

여행자인 나의 지갑보다 그의 지갑이 더 가벼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기분 좋은 걸 알게 하는 것도 여행입니다.

평소보다 주는 일이 더 많아지니까요.


숙소로 돌아와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카지노 게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명료한 표현으로 책갈피는 술술 잘 넘어갑니다.

아껴 읽어야지 싶어 책장을 덮카지노 게임.

다시 오비스포 거리로 나가봐야겠카지노 게임.

며칠 전 이른 아침에 만났던 노악사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 이야기는 따로 해야겠카지노 게임.

어떤 작가가 말했카지노 게임.

"누구나 자아도취의 쓰레기를 잔뜩 끌어안고 산다."

오늘 나 또한 그 짝입니다.

쓰다보니 이토록 길어진 걸 보면요.



말레꼰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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