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에 대한 기억
투명테이프
‘현실 남매’ 사이가 그닥 다정하지 않은 게 보통이지만, 어릴 적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는 가족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기 때문일까, 가벼운 자리에서 종종, 과거에 얼마나 남매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소개하는 일화로, ‘웃긴 일’로 소비하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어릴 때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아빠, 엄마, 오빠, 나, 네 식구는 1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다니다가 내가 6학년이 되어서야 한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오빠와 내가 독립을 하고, 마지막엔 아빠와 막냇동생 둘이서 그 집에 살았다. 이제는 아빠와 동생도 새 집을 구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20년 묵은 식구들의 짐을 정리하는 건 내 몫이 되었는데,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들을 버리면서 묘한 쾌감에 젖어 있다가 마지막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리 집 벽면에 피부처럼 붙어 있던 커다란 가족사진 액자.
내가 아홉 살 쯤 되었을 때, 엄마는 나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엄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에게 ‘빼입는' 용도의 옷을 한 벌씩 사줬다. 나는 핑크색의 체크무늬 투피스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검정색 정장이었다. 그리고 스프레이와 드라이어로 머리를 세팅했다. 나는 딱딱하고 단정하게 세팅된 내 헤어스타일과 보풀 하나 없이 매끄러운 옷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 길로 동네 사진관에 가서 우아한 인테리어가 프린트 된 배경지와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적어도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화목한 부잣집 아가씨가 된 것 같았다.
며칠 뒤 액자가 집으로 왔다. 사진액자는 작은 집에 비해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컸고 프레임은 금색이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허름한 집과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게 생경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진 밖 인물들은 웃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약간은 사진의 색이 바래가면서 생경했던 사진이 그냥 벽지의 무늬처럼 느껴져갈 때, 정확히는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오빠가 비비탄 총을 가지고 놀다가 총구를 가족사진 속 내 얼굴을 향해 겨누었다. 딱 소리와 함께 하얀 총알이 정확히 사진 속 내 미간을 뚫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는 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오빠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구멍난 사진에 서둘러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눈치를 챈 엄마가 오빠를 호되게 혼내기를 기다렸다. 내 이마에 붙여진 투명테이프는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너무 반짝거렸기 때문에 바로 들통이 났다. 당연히 혼이 났지만, 그걸로 내 속이 후련해지지는 않았다.
두 살 터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를 자주 때렸고 우리는 사이가 아주 나빴다. 공부를 잘 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항상 나를 모자란 사람 취급했다. 일부러 어려운 수학문제를 내거나 한자로 이것 저것 써보게 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면 ‘멍청한 년, 병신년, 하얀 집(정신병원)이나 가라, 쓸모없는 년, 그냥 사라져라...’는 식으로 욕을 했다. 내가 심부름을 하지 않거나 엄마에게 고자질을 한 날에는 학원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맞았다. 발로 밟혔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모래 대신 톱밥이 깔려 있어서 나무 냄새가 났다. 눈이 온 날에는 눈이 옷 속에 다 들어가서 축축하게 젖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바닥냄새가 익숙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나는, 우리 가족에서 제발 빠져 줬으면 하는, 충치같은 거였다.
물론 나도 나름의 복수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는 밥솥 안의 딱딱해진 밥의 겉면만 살살 들어내 밥을 퍼주고, 편식이 심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에서 보란 듯이 시금치나 우엉 반찬 같은 것들을 맛있게 먹었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정말 나쁜 사람이니까 얼른 데려가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를 마음 속 깊이 경멸했고, 나는 그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증오했었다. 저런 게 왜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여서, 싸움의 끝엔 화해를 해야 하는지, 가족이라고 사랑까지 해야 하는지 늘 억울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사이가 좋다. 어려울 때 한 번씩 연락해서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 몇 년 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그 때는 내가 오만했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깔보고 무시하고 그랬었어.” 라는 식으로 자아성찰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쯤은 웃으면서 옛날에 오빠가 나를 괴롭혔던 기억을 꺼내면, 오빠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아그래? 기억 안나는데. 하고 그냥 가볍게 웃었다. 오빠는 투명테이프를 붙이는 간단한 행동으로 모든 걸 없던 일로 하려 했다. 그냥 여느 남매처럼 한 때 좀 투닥거렸던 추억 정도로 여겼다. 나조차도 이제는 웃어넘기던 기억이지만 막상 오빠가 가볍게 넘겨 버리는 걸 보니, 잊고 있던 억울함이 다시 고개를 든다. 아무리 우리가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해도, 내가 오빠를 이제 조금쯤 사랑한다 해도, 오빠는 어쩜 그 때의 기억들을 그렇게나 쉽게 삭제해 버렸을까? 정말로 내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 내 이마를 뚫어 버릴 땐 언제고, 그 구멍이 사진 말고 다른 걸 뚫어 버렸을 수도 있다는 걸 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웃고 있는 내 얼굴, 그 위로 반짝거리던 투명테이프, 그 아래 뚫린 구멍을, 내가 얼마나 자주 바라봤었는지. 그 때의 마음이 다시 선명해진다.
짐정리를 하면서 아홉 살의 내 이마를, 봤다. 이미 접착력 없이 누래진 채로 겨우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어내니 그 부분만 색이 좀 선명하다. 이마의 구멍을 더듬더듬 만졌다.
그리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때, 나를 아프게 한 것들을 다 따져 물었다. 마지막엔 대답하라고 거의 떼를 썼다. “사과해. 기억 안나도 그냥 다 미안하다고 해. 반성해.” 라고.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들킨 것 같아 머쓱했다. 드라마도 아니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그럴 사이도 아닌데 내가 뭘 한건 지. 게다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사과는 와닿질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어이없어 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사과 같지 않은 사과라도 받아내니 아홉 살의 나에게 좀 덜 미안하다.
마지막 단락은 허구입니다. 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하지 않았어요.
뭐 어때요. 제가 아홉 살의 나를 많이 안아줬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쓰는 일이 꽤나 용기가 필요하네요...
이상하게 가족에 관해선 심적으로 무거웠던 일만 글로 써져요.
좋은 기억도 많은데 말이죠 ㅋㅋㅋ
언제나 다정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