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진료실에 무거운 공기가 감돕니다. 숨이 막히고 침이 바짝 마릅니다. 4기 암환자가 된 뒤로 3개월에 한 번은 겪는 일입니다. 이날은 지난번에 찍은 CT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 성적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마우스를 쥔 교수님의 손이 멈칫하는 게 보였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모니터에 곧 CT 영상이 띄워졌습니다. 본다고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일단 영상 속 희끄무레한 덩어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을 들었습니다. 종양표지자 수치는 기존과 크게 변화가 없지만, 간 쪽에 있는 림프의 사이즈가 조금 커졌다고 합니다.
“아, 네. 그렇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상황은 이제 너무도 익숙해서 새삼 충격을 받지도 않습니다. 외래 진료실에서 휴지를 건네받지 않아도 될 만큼 덤덤하게 외래를 보고 나올 정신력도 갖추고 있고요. 결국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고, 다음 일정을 알려주는 종이에 MRI 검사가 추가됐습니다. 이후에는 수납을 하고 처방받은 약을 챙겨서 외래 항암실로 향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만 혼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엄마가 잠깐 볼일을 보러 나간 틈을 타 커튼을 친 침대 좁은 공간에서 울었습니다. 그만 울고 싶어서 가져온 소설책을 꾸역꾸역 읽는데 하필이면 등장인물 중 하나가 암환자이고, 항암치료를 하다 또 재발을 하고 맙니다. 왜, 하필, 이런 책을. 새삼 책을 고르는 능력에 감탄하며 침대에 누워서 울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때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우는 걸 들키는 일만큼 모양 빠지는 일도 없습니다. 재빨리 팔로 눈을 가렸지만 엄마를 속이는 일은 역시 불가능합니다.
“왜 울어, 울지 마.”
그 순간, 카지노 게임 추천의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려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사람이니까 눈물이 나지!”
내가 안 울면 사람이야? 이럴 때 울라고 눈물샘이 달려있는 거잖아. 안 그래? 울며 항변했습니다. 저는 감정이 풍부한 인간이거든요. 우는 딸에게 엄마는 말없이 휴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울고 나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보고 울지 말라고 하던 엄마가 웁니다. 눈물을 삼키면서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울어서 하마터면 눈치채지 못할 뻔했습니다. 저는 보고도 모른 척을 잘하는 딸이라 그냥 책을 읽었습니다. (나중에 왜 울었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읽던 책에도 암환자가 나왔다나?)
암환자가 된 딸의 병시중을 하면서 엄마는 더 빨리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손주 돌볼 나이에 엄마는 다 큰 딸을 돌보느라 바쁩니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는 동안 엄마는 부쩍 나이가 들었습니다. 저는 종종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한동안 정의할 수 없었던 이 감정의 정체가 ‘슬픔’이라는 것은 최근에 알았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과거 사진 속 엄마는 너무도 젊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의 모습인데, 왜 이렇게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아픈 딸로 인한 시름이 늘수록 주름도 함께 늘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가 되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꿈이어야 합니다.
엄마와 내가 슬픔에 빠져있던 그 시간, 옆 침대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옆 침대 할머니는 암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력이 좋아 보였습니다. 들으려 한 건 아니지만 들려버린 할머니의 통화소리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오래전 유방암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폐 전이가 의심되어 검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폐 원발암이었다고요. 할머니는 치료를 받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이상하죠? 폐암이라는데 왜 이토록 좋아하는지. 전이가 되면 4기이지만, 원발암이면 완치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전이가 아니라 원발암이라 다행인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듭니다. 저도 이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몰랐으니까요.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아버지가 항암치료 중이라는 분의 사연이 흘러나왔습니다. 무심코 라디오를 듣다 엄마랑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여기저기 암에 걸린 사연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말입니다. 이후로는 엄마랑 수다 떨면서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머리가 이상해졌나 봅니다. 카지노 게임 추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아닐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위로하지만, 글쎄요. 지금껏 이런 경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요. 그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조금 버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뭐, 그 역시 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긴 하지만요. 그때까지는 희망고문을 견디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회복탄력성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누군가 제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냐고요. 그 질문은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만약 제가 괜찮아 보였다면, 말 그대로 ‘괜찮아 보였을 뿐’입니다. 사실 괜찮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하루를 망치기에 저는 제 삶을 너무 사랑합니다. 제가 괜찮은 척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척’도 계속하다 보면 진짜가 되는 법. 암환자로 5년을 살다 보니 한 가지 법칙을 터득했습니다.
슬프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그게 제가 오늘을 카지노 게임 추천 법입니다.
대단한 희망을 품고 있지도 않고, 대단히 좌절감을 느끼지도 않아요. 그저 주어진 카지노 게임 추천 살아갈 뿐. 가장 힘들었던 카지노 게임 추천 견뎌냈으니 이 마음가짐으로 내일도 살아가겠죠. 그리고 아마도 다음에 병원에 올 때쯤이면(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괜찮아질 겁니다. 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