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장르 : 소설 (역사 소설 / 도시 소설)
작가 : 카지노 게임 디아스
한 줄 요약 : 20세기 초 자신만의제국을 건설한 뉴욕의 금융가와 그의 아내에 대한 4가지 카지노 게임. 진실은 무엇인가?
별점 : 4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동진 평론가님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천을 했고, 또 도대체 그 바쁜 와중에 책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을 수 있는지 의문인 버락 오바마 아저씨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이니 말이다.
심지어 작가인 카지노 게임 디아스는 뉴욕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유서 깊은 노포의 축축한 주방에서 30년 폐관수련을 마친 초밥 요리사가 갓 쥐어낸 참치 초밥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걱정이 앞섰는데, 이 책이 재미없을까 봐 걱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책을 '재미없다고 느끼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치밀하게 쓰인 명작들이 그렇듯, 책을 다 읽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명히 반바지에 샌들을 끌고 가서 이 책을 샀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보일러 온도를 무자비하게 올려야 하는 계절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이 책은 '지루한 재미'를 갖고 있다.
나는 나 혼자만의 규칙을 통해 '지루한 재미'를 갖고 있는 소설을 고전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카지노 게임]는 언젠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재미'를 갖기 위해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카지노 게임의 진행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세계관이나 주인공의 선택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뜬금없는 철학적인 대화나 사색이 작품 중간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카지노 게임가 그렇다.)
둘째. 카지노 게임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사건은 아주 은유적, 혹은 건조하게 그려지고, 사건이 남긴 상처가 마치 가습기에서 도포된 물방울 입자처럼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어야 한다.
셋째. 독자들의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에서, 작가는 태연하게 주위 환경 묘사 (저택의 인테리어, 스위스 산맥의 웅장함, 현대 음악의 특이한 운율 등)에 집중해야 한다.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이 모여서 고전 특유의 지루한 재미를 형성하는데, [카지노 게임]는 이런 요소들로 가득했다.
[카지노 게임]는 20세기 초, 뉴욕에 살았던 금융가인 앤드류 베벨과, 그의 미스터리한 아내 밀드레드 베벨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은, 이 카지노 게임가 4가지 버전으로 변주된다는 점이다.
챗의 첫 부분은, 베벨 부부의 연대기에서 영감을 얻은 가상의 작가 헤럴드 베너의 가상의 소설 [채권]으로 시작된다.
뒤를 이어, 앤드류 베벨이 직접 쓴 자서전이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앤드류 베벨의 자서전 대필 작가가 쓴 [앤드류 베벨 자서전 대필 회고록]이 소개되고, 끝으로카지노 게임의 핵심 인물인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가 나온다.
4가지 버전의 카지노 게임에서 주인공 앤드류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에 대한 서술이 꾸준하게 변주되는데,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들은 진짜 앤드류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본인만의 판단을 내리게 된다.
언뜻 보면 [라쇼몽]의 서술 방식과 유사하지만, 내 생각에는 [카지노 게임]가 쓰인 방식은 [라쇼몽]의 그것과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라쇼몽]이 한 사건에 대한 병렬적인 서술을 통해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면, 오히려 [카지노 게임]는 층위가 명확한 4가지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어느 정도 진실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결국 그 진실에 대해서 조차 의구심을 품게 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아니 애초에,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우리는 왜 눈앞에 명백한 진실이 있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는 것일까.
책의 제목은 [카지노 게임] 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독자에게 남는 것은 거대한 '안티-트러스트'의 유령뿐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 세상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라는 감상을 끄적여 보면서, 나는 이 시대의 앤드류 베벨을 꿈꾸며 핸드폰을 꺼내 '비트코인 100만 달러 가자'를 외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