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라면 다 하는 거죠?
도현과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매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카지노 가입 쿠폰을 떼어놓을 때마다, 깜깜해진 다음에야 친정에 카지노 가입 쿠폰을 데리러 갈 때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기다리느라 졸음도 참고 있던 카지노 가입 쿠폰을 볼 때마다,‘내가 전업맘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눈치도 보지 않고, 카지노 가입 쿠폰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봐도 되고, 아침마다 닦달해 가며 등원 준비시키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하루쯤 신나게 유치원 땡땡이도 칠 수 있으니 전업맘이란 건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게다가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밥통이 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은 저절로 크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난 전업맘이 되면 잘할 줄 알았다. 상상 속의 내 모습은 완벽했다.
예를 들면 이런 모습이다. 아침이 되면 나는 아이의 침대에 조심히 걸터앉는다. 곤히 자는 아이의 머리를 가만 쓸어 넘기며 "잘 잤니?" 말한다. 볼에 살짝 입도 맞춘다. 배경으로는 창문에서 기분 좋게 들어오는 햇살이 걸려 있고, 나는 하얀색의 편한 원피스를 걸치고 있다. 머리는 풀고, 앞치마를 둘렀으며, 편안하게 웃고 있다. 아이는 그럼 끄응 소리를 내며 "더 잘래~" 말하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난다.
이미 아침은 차려져 있다. 아이를 깨우기 전에 다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며, 도마를 꺼내 재료를 탁탁 자르면서도 내 입엔 미소가 걸려있다. 가족들 먹일 생각만 해도 째지게 기쁘다는 듯이. 하하.
낮에는 또 어떤가. 아이 손 잡고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개미도 같이 들여다보고, 꽃도 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아이들은 매일 행복하다. 가끔은 둘이 투탁이겠지만, 그 곁에는 내가 늘 있고, 아이들은 곧 다시 웃는다.
늘어난 시간 안에는 '행복'이란 녀석이 그득그득 찰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전업맘은... 그런 건 줄 알았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라고 못할 리도 없었고.
하지만현실은.. 음....착각이었다. 크나큰 착각!
학창 시절 반아이 중 한 명이 자신의 꿈이 '현모양처'라고 했을 때, 내가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던가. 나만이 아니다.반 아이들 다 웃었다. 뭐 저따위 것을 꿈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듯 말이다.'자녀를 잘 키우고 남편을 잘 내조한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때는 몰랐으니 말이다.
고작 10대의 아이가 왜 '현모양처'를 꿈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일 수도 있고, 다른 사연으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미 알았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 생각에 살림과 육아도 다른 직업처럼적성이 맞아야 잘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거나타고나길 마음이 온화하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사부작사부작 엉덩이가 가벼워 잘 치우고 다니는 사람이, 원래 요리하는 게 즐겁고 그음식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한 사람이, 원래 체력이 좋은 사람이, 원래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원래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 살림과 육아에는 잘 맞을 거다.
나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걸!
우리가 처음 미국에자리 잡았던 건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리를 건너 동쪽, 이스트베이였다. 도현은 우리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 주말마다 여러 동네를 돌며 렌트할 집을 찾았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라는 내 주문에 맞춰서. 그렇게 얻은 집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한 마을이었다. 학군도 좋고, 안전하고, 공원도 많은 동네.
2015년 여름, 한 손으로는5살짜리 큰 아이를.다른 한 손으로는 2살짜리 둘째의 손을 잡고 샌프란스시코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도현은 우리를 데리고 한 시간쯤 차를 몰았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2층집 앞에 차를 세웠다. 작은 마당이 있는 코너 집이었다.1층에는 차고와 주방, 거실, 패밀리룸이 있었고, 2층에 방이 3개가 있었던 그 집에 내리자마자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뛰어도 돼!" 아이들은 가구 하나 없는 빈 집을 소리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꽤 괜찮았다. 미국 주택에 사는 재미가 있었다.숯불에 고기를 구울 때면 마당에서 자라는 허브를 뜯어 넣는 재미도 쏠쏠했고, 뒷마당에 있는 핫터브에서는 아이들이 수영도 즐겼다.엄마가 아파트 베란다에 70여 종의 식물을 키울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내가, 작은 마당에이것저것 심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가 보다.)
영어가 갑자기 들릴 리도 없었지만, 그때는의욕을 갖고 첫째 학교에 가서 매주 목요일마다 발론티어도 했다. 5살짜리 아이들이 저마다 떠들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지만, 선생님이 잘 배려해 준 덕에 '미세스리'로 사는 재미도 느꼈다. 아직 영어가 서툰 첫째는 내가 갈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댔다.
집 앞에서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 뛰어노느라 바빴고, 차도는 까만 도화지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곤 했다.인터넷을 뒤져가며 하나씩 요리를 완성할 때마다 재미도 느꼈다.내가 꿈꾸던 생활에 많이 다가갔던 셈이다. 물론 하얀 드레스도 없고, 머리는 늘 질끈 묶었지만.
지난주였나, 도현이 혼자 와인을 홀짝이다가 말한다. "그때.. 거기를 가는 게 아니었어!" 무슨 소린가 싶어 쳐다보니 말을 덧붙인다. "미국 처음 왔을 때 말이야,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면 실리콘밸리로갔어야 했어. 그런 시골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의 말로는 그때 동네만 다른 곳을 선택했더라도, 지금의 비즈니스가 달라졌을 거라는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내 입장에서는 꽤 좋은 시절이었다. 워킹맘으로서의 죄책감을 덜어내자매일이 평화롭고 아이들도 한없이 사랑스러웠다.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해 조금 어른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아마 그대로살았다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조금은 더 편안하게.
하지만 어디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는 법이있던가. 변화는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쿵! 하고.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