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책 제목, 작가 소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나는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원고 문서에 한가득 쏟아부어 보내고 난 며칠 뒤였다. 처음 보는 파일을 받았다. 그동안 보던 워드 파일이 아니었다. 책의 형태를 지닌 본문 디자인이었다.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일정표도 건네받았다. 맨 위에 '3교'라고 적힌. 올 것이 온 모양이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고 나서 출간 작가의 후기를 염탐카지노 게임 사이트.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외계 용어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1교, 2교, 3교, 그러니까 교정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하나같이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라 표현카지노 게임 사이트. 보면 볼수록 고칠 게 튀어나온다는 경험담 일색이었다. 가진 게 자신감밖에 없는 난 의아카지노 게임 사이트. 애초에 쓸 때 꼼꼼히 쓰고, 퇴고할 때 잘해두었으면 그럴 일이 있겠냐며. 교정 작업 시작과 동시에 정신 나간 생각을 반성카지노 게임 사이트.
교정은 말 그대로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행위다. 종이에 인쇄되지 말아야 할 것을 남김없이 찾는 일이다. 사전 뜻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친절한 편집자의 설명을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1교 때는 큰 틀에서 살핀다. 내용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빠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구조적인 빈틈이 없는지, 붙어있는 제목이 어울리는지 본다. 각 문장의 호응이 자연스러운지 따져본다. 2교 때는 좀 더 자세히 살핀다. 문장의 어색함이 있는지, 세세한 맞춤법 문제가 없는지 다시 본다. 3교 때는 최종 확인을 한다. 더 이상 고칠 곳이 정말 없는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본다. 팽팽한 긴장이 맴도는 사전 안내를 보고 좀 과하다고 여겼다. 설마 3번이나 봐야 할 정도로 고칠 게 그렇게나 많겠냐며.
달달 외울 수도 있겠다 싶은 원고를 또 들여다보기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신기하게도 계속 뭔가 나왔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책 모양으로 보니 어색한 게 많았다. 이대로 책이 되면 안 될 치명적 실수도 잦았다.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눈에 걸려 넘어지는 게 쏟아지자 그제야 자세를 바로잡았다. 흐리멍덩하게 대충 훑어보고 넘기려 했던 정신 상태를 고치고 앉았다. 하나하나 눈에 불을 켜고 살피기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워드 형태의 원고 파일을 옆에 같이 띄워 놓고 함께 비교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마음을 잡고 보니 의미와 보람이 보였다. 꼭 필요한 작업이 틀림없었다. 회사의 보고서 검토와는 또 달랐다. 그땐 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보고 받는 윗사람만 통과하면 내용이나 형식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다. 원고 교정 작업은 전혀 달랐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들어야 했고 어떤 실수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내 것, 내 책이라는 상황은 작업하는 자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열심히 잡아냈다. 넘어가다가도 수없이 읽어보며 다시 돌아와 살폈다.
단순하게 글만 바로 잡는 게 아니었다. 책을 채우는 구조 전체를 조망하게 되었다. 그 자리가 딱 맞을 거로 생각했던 각 장과 글의 구성이 변카지노 게임 사이트. 교정을 진행하는 사이에 편집자의 조정 의견이 있었다. 들어보니 원래 자리 잡은 게 잘못되었구나 싶은 정도로 옳은 변경이었다. 옮기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한 탁월한 자리바꿈이었다. 한결 매끄러워졌다. 혼자서만 파고 있었다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각도였다.
고된 작업 중에 정신을 잃으면 딴생각이 찾아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참 잘 썼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멋지고 훌륭하게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써낸 행위에 대한 '잘'이다. 이렇게 하길 참 잘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칭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하기로 마음먹고 행동한 나에 대한 만족. 교정작업에 관한 정보를 찾던 중 어느 편집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교정을 하다 보면 무조건 그 원고와 책이 좋아진다.' 수없이 읽다 보면 익숙해지고 애정이 깊어진다는 설명이다. 아마 나도 그런 상태이지 않을까. 가뜩이나 제 잘난 맛에 사는데 자신의 글을 수십 번 보고 있으니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지겹지도 않게 '이걸 내가 썼다고?'를 반복카지노 게임 사이트. 끝없을 것 같던 과정이 조금씩 지나갔다. 고쳐지고 다듬어져 가며 점점 책 같이 변해갔다. 처음의 '이게 얼마나 필요하겠어'라는 생각은 '이거 3번으로 충분할까?'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가장중요한과정이다. 책의이름을정하는작업, ‘제목짓기’. 먼저내게생각하고있는후보를물었다. 가진 게너무많았다. 글의제목을정하는건생각이필요없다. 글을마치면곧장나왔으니까. 책은달랐다. 첫책의겉장에박힐그것을떠올리면생각이끝이안났다. 뭐가딱좋은지정하지못하고막던졌다. 이것도좋아보이고, 저것도느낌이좋고. 천사같은편집자는괜찮다고계속던져달라고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대로믿고제목회의가있는날직전까지마구던졌다. 회의를마친뒤결정된제목을알려왔다. 처음들었을땐정말'으잉?' 카지노 게임 사이트. 뻔하디뻔한내후보와전혀달랐기때문에. 설명이필요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가설득되고이해하기위한배경과과정이궁금카지노 게임 사이트. 논리적이고차분한편집자의해설은도움이되었다. 그런데도뭔가난계속찜찜카지노 게임 사이트. 왜그럴까. 속을깊숙이들여다보며따져봤다.
엄청그럴듯하고멋진문학적제목을바랐다. 처음에'에세이'라는근사한출판분야를맹목적으로희망했던것처럼. 첫책의이름도그렇기를원카지노 게임 사이트. 심지어책의내용이나목적과다를지라도. 출판사에서정해온제목은책을대표하는탁월한제목이맞았다. 그런데도난다른데눈을돌렸다. 바라는'문학적'이뭔지도모른채. 제대로설명도못했고, 대안도제시하지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치상사의잘모르겠는데이건아닌것같으니다른걸로가져오라는식이었다. 어떻게수정하면좋을지물으면겁나게쌈박하고딱들으면꽂히고긍정적이면서도다이내믹하고클래식한느낌이라고대답하듯이. 답없는딴지걸기를멈추기위한대화가간절카지노 게임 사이트. 때가왔음을느끼고편집자와목소리를주고받았다.
우리의첫통화는짧지않았다. 어색할수있는첫만남이었지만하고싶은말이많은나는그럴틈을주지않았다. 위에서늘어놓은솔직함을그대로전카지노 게임 사이트. 조용히들어주고차근차근배경과과정을설명해줬다. 직접천천히부드럽고세세하게듣고나니마음이한결나아졌다. 서로원하는것과나아가는방향이다르지않았다. 어쩌면내가바랐던건안심의확인이었는지도모르겠다. 어쩔줄몰라동동대던날잠재워줄따뜻한편안함을찾았는지도. 감사인사를전하며이대로믿고가겠다고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전화를끊기전에건너편에서놀라운이야기를전카지노 게임 사이트. 편집자뿐만아니라출판사직원모두가이'출간도전기'를읽어봤다고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들엄청나게감동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담당자가갑자기바뀌어서걱정많았을텐데흔들리지않고맡겨줘서고맙다고. 몰래감춰둔간식을들킨기분이었지만애써담담한척카지노 게임 사이트. 웃으며그러셨냐고, 느낀그대로솔직하게남겨가고있다고. 앞으로도마음대로쓸거라는안내도굳이덧붙였다. 통화를마치고마음이푸근해졌다. 더가까워지고믿음이올라간느낌이랄까. 우린서로더편해졌고친해졌다고믿어버렸다.
너무 편해져 버린 탓인지, 그러고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목이 자꾸 떠올랐다. 첫 통화의 따뜻한 감상이 무색하게도. 끝내 하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직장생활에서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은 퇴근선이다. 퇴근 후에는 일로 연락하면 안 된다. 평일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은 더더욱 안 된다. 난 그 선을 넘었다. 토요일 아침 쏟아지는 생각을 막지 못하고 결국 연락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미 정해진 제목으로 표지 시안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나름의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깊은 사과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지막이라고 결심하며. 최종 결정되면 더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지난주에는같은주제로책에넣을글을3번이나썼다. 글을다쓴게언제인데또웬글이냐싶겠지만필요한글이었다. 나를소개하는'작가소개'였다. 요청받고는내심어려울게있겠냐는가벼움으로접근카지노 게임 사이트. 호기롭게여기저기서끼적였던소개글을얼기설기엮어서보냈다. 수정이있을거라고는생각지않았다. 내가쓴나를소개하는글을누가뭐라고할까싶어서. 바로퇴짜를맞았다. 책내용보다는작가에집중해달라고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동안파악한편집자의성향으로미루어볼때이정도멘트면다시써야한다는말이었다. 다음날새벽그날의글쓰기를미루고오랜만의자소서에집중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고싶은말을다쓰다보니한편의글이나왔다. 만족하며새벽에기분좋게보냈다. 아침일찍편집자의다급한답변이도착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의오해를풀기위한적당한분량의 적절한 예시와 함께. 괜히생각을가둘까봐일부러별도의틀없이열어둔거였다며. 이대로두면어디로날아갈지모르는나를겨우붙들었다.
그날온종일찌푸리고있었다고한다. 고민이있으면얼굴에드러나는날보며했던아내의말이다. 좋은사람앞에서는웃고, 싫은사람앞에서는화난표정이니맞다. 다른일을할때도머릿속은온통'작가소개' 뿐이었다. 이리저리굴리던중이거다싶은느낌이왔다. 머리로쓴글을글자로옮겼다. 그대로보내고곧바로오케이를받았다. “와정말 좋아졌습니다!”
식판 밥을 좋아한다. 직접 고르지 않고 정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어 살아왔다. 올바른 삶으로 믿고 명문대를 가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서른 넘어 결혼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늦지 않게 남편이 됐다. 아이가 태어나며 모든 게 달라졌다. 순백의 아이를 어떻게 키워갈지 막막카지노 게임 사이트. 스스로 고민해 본 적도 결정해 본 적도 없어 당황카지노 게임 사이트. 생각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잠시 멈췄다. 직장을 쉬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매일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내 행복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한다. 담아두기 벅찬 생각을 글자로 옮긴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이제는 식판 밥을 덜 좋아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기를 즐긴다. 매일 새벽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 채우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자유롭고 밝게 키워가며 기대와 설렘 속에 지금을 살아간다. 앞으로도 계속 쓰며 살고 싶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초록Joon'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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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파랑은요즘걱정이많다. 우선까칠한남편과일하는편집자를안쓰러워한다. 회사다닐때도내동료와선후배를안타까워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을대하는뾰족하고차가운나를잘알기때문이다. 편집자에게파랑의걱정을전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랑일하느라고생이많다며감사하다는말도빼놓지않았다. 이렇다저렇다말없이웃으며고맙다고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작가님하나도까칠하지않아요.’라는말은없었으니아무래도정황상확정이다. 한번은말싸움중에파랑이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너책쓰더니말이늘었다? 예전엔이렇게논리적으로조리있게못했는데말이야. 이젠아예문장이딱정리되어대구에맞춰서다다다말하더라?" 들어보니그랬다. 제분을못이겨서말도안되는말을어버버하며답답해했었다. 책쓰기의좋은점을발견한순간이다.
여전히 책을 만들어 가는 오늘이 어색하다. 책을 낸다고 으쓱하거나 뻐기는 마음을 가질 틈은 없다. 보면 볼수록 어렵고 이게 맞나 싶어서 헤매기도 바쁘다. 목적지를 향해가던 중 한 가지 확실한 바람이 생겼다. 내 책을 스스로 '졸저'라고 부르기 싫다. 겸손의 의미를 담은 의도는 알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쓰고 싶은 글이 담겼고 최선을 다한 책이라면 낮춰 부르지 말아야 한다. 나와 편집자, 그리고 애쓰는 모든 이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기분이다.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가 졸저의 기준은 아닐 테다. 만들고 싶은 책을 잘 만들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남은 기간이 졸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 언제나 나만 믿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나 말고 믿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