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쓰다, 1998
안카지노 게임의 양감(量減)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減)이 없다는 것이다.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안카지노 게임은 25살의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가정사는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생각이 많다. 어떻게 양감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지만 결혼을 위해 남자를 만나는 것에서는 계획적이다. 안카지노 게임은 일련의 노력을 통해 양감을 키우게 되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안카지노 게임의 가족
술주정이뱅이 아빠, 엄마를 구타하고 가재도구를 부수고 급기야 집을 나간다. 엄마가 숨겨놓은 돈을 가져가고 사흘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1년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온다. 양말을 파는 엄마, 가게 규모를 늘이고 외국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어까지 공부한다. 군대 다녀와서도 정신 못차리는 건달 동생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카지노 게임하게 되자 그 남자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쳐 감옥에 가게 된다.
남편 때문에 정신분열관련 책을 읽고, 아들 때문에 형법 책을, 자신의 가게를 위해 일본어 책을 사서 공부하는 절실한 활력을 지니고 있는 엄마를 안카지노 게임은 경이롭게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어머니의 불가사의한 활력,이것도 앞으로 내가 유심히 살펴야 할 생의 비밀이다.
불가사의한 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카지노 게임의 엄마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한날 한시에 결혼도 한다. 그들은 예상했던 대로 극과극의 삶을 살게 된다. 극과 극을 판단하는 건 고스란히 경제적인 기준이다. 그들의 마음속 풍요로움은 어떻게 다른지 정녕 모를 일이다.
마음속 깊이와 색깔을 어떻게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황금으로 도배한 성에 살아도 마음 의지할 곳 없으면 지옥일 것이요. 없이 살아도 바삐 살면 오히려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좋을 수도 있다.
안카지노 게임의 이모
안카지노 게임의 부유한 이모는 우아하고 마음까지 비단결이다. 자식 둘을 유학 보내고 심심한 남편과 고급 주택에서 산다. 이런 이모가 못마땅한지 엄마는 초대받아 간 식사 자리에서 동생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안카지노 게임은 이런 엄마의 말투나 외모를 안쓰러워한다.
이모의 딸, 즉 사촌인 주리와 만나 나눈 대화는 흥미롭다. 주리가 반복하는 말들 중 특이한 것은 ‘오, 그건 옳지 않아’이다.
거기에 대꾸하는 카지노 게임의 반응은
“카지노 게임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카지노 게임이야.”
카지노 게임의 이모는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지만 오히려 카지노 게임의 엄마를 부러워한다. 그렇게 매달릴 것이 있고 기를 쓰고 악다구니를 쓰며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 있는 삶을 부러워하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적인 남편, 심심한 매일을 보내는 이모에게는 평탄한 삶이 오히려 숨막힌다. 결핍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하고 무덤 속 같은 삶을 마감하려 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마지막을 카지노 게임에게 부탁한다. 이것이야말로 카지노 게임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다.
세상의 카지노 게임
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그래서,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다 거두어버렸다.이런 것이 운명이라면,그것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이것이 모순인가? 오히려 공평한 것 아닌가? 다 갖췄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나 가난하고 바쁘지만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는 삶 중 무엇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진진의 엄마는 적어도 심심하거나 무료하다거나 무덤 속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들은 그녀에게 기생해 살았으니 그녀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대체불가한 그 무엇이었다. 비록 힘들고 버거웠지만 항상 앞에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 장애물을 넘기 위한 과정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삶을 열심히 살았다. 적어도 생을 스스로 마감할 정도의 무료함은 없었다.
김장우를 카지노 게임하게 된 진진이 술먹고 외치는 말이 인상 깊다.
“낯설어 죽겠단 말야,왜 그렇지?장우씨는 알아?갑자기 이 카지노 게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무서워.사는 법을 잊어버렸다구요.카지노 게임하면 이렇게 카지노 게임이 낯선거냐고...”
카지노 게임에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하며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안진진의 대사는 그녀가 발칙한 듯 하지만 얼마나 순수한지 알 수 있게 한다. 양감을 늘리고 부피가 있는 삶을 원했지만 마음 속에 사람 하나 들이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줄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책의 말미로 갈수록 급하게 지어지는 결말과 쏟아지는 대형 사건들이 무리하게 펼쳐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모순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인간의 한계가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폭풍의 눈 안에 있는 우리가 폭풍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세상의 카지노 게임을 다루려고 한 작가의 의도는 무리가 아니였을까?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해도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삶이라고 나는 결론짓는다. 모든 부분을 볼 수 없으니 우리는 전체를 알 수 없다. 전체를 다 볼 수 없으니 모순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부분을 보았을 때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인생을,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