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인공관절 수술 이후로 시어머니는 반년째 칩거 중이십니다. 하루라도 집을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다던 분이었는데 수십 년을 다니시던 스포츠센터도 그만두었습니다.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 것이 자존심 상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넘어지면 큰일이다'라는 공포가 어머님을 집안에 눌러앉게 만들었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길도 미끄러운 계절이 왔으니 어머님의 집콕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80대 중반에 가까운 노인의 일과는 당신 스스로 생각해도 무료합니다. 늙으면 새벽잠부터 없어진다고, 새벽 4시만 되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굴러다니는 빵쪼가리로 대충 아침 끼니를 때우고 나서 좌식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구릅니다. 다리 근육에 힘줘서 열심히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가 마침 가는 길에 있으니 잠시 앉아 쉬었다 가는 수준으로 슬슬 탑니다. 종료를 알리는 세탁기 노랫소리가 처량하게 들리면 절뚝절뚝 걸어가 세탁물을 건져 올립니다. 몇 개 되지 않는 세탁물을 거실 창문 앞에 놓인 건조대에 걸어놓고 잠시 창밖을 내다봅니다. 유난히 하늘이 맑고 볕이 따뜻해 보입니다. 잠시 나가 산책이라도 할까 생각하다가 부르르 몸을 떱니다. 안 그래도 굳은 몸, 추운 날씨에는 집에 있는 게 상책입니다. 건조대 옆에 몇 개 있는 화분에 물을 준 게 언제인지 아득합니다. 부엌으로 더듬더듬 걸어가 양재기 하나 가득 물을 받습니다. 찰랑찰랑 대는 물을 흘리지 않고 걷는 것도 힘든 일이 됐습니다. 이놈 조금, 저놈 조금 물을 나눠 먹이고 나서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습니다. 24시간 틀어놓은 TV는 TV대로 놔두고 휴대폰을 집어 들어 유튜브를 켭니다. 이게 없었다면 얼마나 적적 했을까를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집니다. 맨 위에 황창연 신부 특강이 또 올라와있습니다. 재미있어서 자주 봤더니 이제는 부러 찾지 않아도 맨 위에 떠 있는 게 신통합니다. 웅성웅성 시끌시끌한 소리 사이로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꿈을 꾸고 있습니다. 먼저 간 남편도 나오고 언니들도 나옵니다. 같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을까 서글퍼져 퍼뜩 꿈에서 빠져나옵니다. 허기는 없지만 한 술 뜹니다. 그래야 더디 가는 시간이 조금은 빨라집니다. 오후도 별거 없습니다. 저녁 찬도 별거 없습니다. 초저녁부터 소파에 누워있는 것도 똑같고 TV를 켜놓은 채 한 손에는 유튜브가 돌아가는 휴대폰을 들고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긴긴밤도 똑같습니다.
얼마 전어머님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카지노 게임 추천 얘기가 나왔습니다.동네 친구가 유명한 카지노 게임 추천 선수의 친 이모이며 얼마 전 사인을 받아다 줬다는 자랑을 하는 제게 어머니는 흥미를 보였습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선수 누구?"
"아... 조규성이라는 선수 아세요?"
"알지~ 뜬 지 얼마 안 됐지 아마? 잘생긴 선수, 알지."
의외였습니다. 24시간 골프채널과 보수 언론 뉴스만 틀어놓는 어머니가 카지노 게임 추천선수를 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아냐는 아들 내외의 물음에 어머니는 신이 나셨습니다.
"나 카지노 게임 추천 많이 봐~ 중요한 경기 있을 때는 밤새 틀어놓고 있어. 이쪽저쪽 골대에다가 공 넣는 거잖아. 야구는 규칙이 이해가 안 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는 좀 이해가 되더라. 이 짝에서 공 넣으려고 하다가 잘 안되면 저짝으로 보내주잖아. 저짝에서 넣어보라고. 나 카지노 게임 추천 좋아해~ 재미있더라."
카지노 게임 추천 이야기에 신이 난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직 어머님의 눈을 초롱초롱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 그걸 알게 됐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죄송했습니다.
"우리 엄마, 카지노 게임 추천 좋아하는 거 처음 알았네? 평생 처음 듣는 얘기예요."
엄마의 카지노 게임 추천 커밍아웃에 남편도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카지노 게임 추천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아직도 우리는 부모님의 삶과 생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란 것 아닐까요.
신이 나고 가슴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나이 듦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은 여전히 가슴 떨리는 일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남아있는 것을 알아주는 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무릎은 밤새 쑤셔대고 혹여 넘어져서 걷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지만 바깥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발걸음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밤새TV와 유튜브를 틀어놓는 것은 적적해서, 심심해서가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을 놓지 않으려는 어머님의 간절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들 만나면 카지노 게임 추천 이야기도 하고, 조규성 선수도 알아듣고, 황찬성 신부의 입담도 전해주면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게 아닐까요. 다음에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궁금해집니다.
* 한 줄 요약 : 살아있는 한, 가슴은 떨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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