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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May 06.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하여



"엄마. 이건 진짜 '온라인 카지노 게임치사량 초과' 인걸"

"으으응 그래? 니가 생각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뭔데?"

"깜깜한밤, 차없는 고속도로, 손님없는 외딴 북카페에서 읽은 책, 엄마 아빠가 마신 드립 커피, 내가 먹은 초코 마들렌, 낡은 오두막에서 먹은 국밥(집 냉장고 냉동실에서 가져온) ,더이상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날"

"오.... 니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좀 아는구나."





이젠 더이상 어린이가 아닌 장중딩. 그러나 연휴 내내 집에만 있는게 맘에 걸리던 참이었다. 5월 5일 휴일에도 아침 일찍 출근한 남편이 오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린 계획에도 없던 강원도 박 여행을 떠났다. 냉장고에 있던 야채와, 햇반, 김, 냉동실에 잠자고 있던 레토르트 감자탕 한봉지를 대강 챙겨 해질 무렵 출발한지 한시간 30분 후도착한,지은지 2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황토방 펜션은 성수기라해도 딱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가득 찰 일은 없어 보이는 작고 낡은 곳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가져간 햇반에 냉동 감자탕을 데워 간단한 저녁을 먹고, 30분쯤 떨어진 북카페를 찾아갔다. 영업시간을 묻기 위해 전화를 했을때, 원래는 9시까지인데 오늘은 손님이 없어 7시에 문을 닫을 예정이라던 사장님은 잠시후 마음이 바뀌었다며 9시까지 문을 열어놓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도착한 그곳엔, 우리처럼 엄마,아빠, 아들의 세가족이 앉은 한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었고, 우린 가장 큰 테이블에 앉아 드립커피와 수제 마들렌한조각,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우리 때문에 늦게까지 문을 열기로 마음을 바꿔주신 사장님이 고마워서 제일 비싼 핸드 드립커피를 시키긴 했지만, 노랑봉다리믹스커피 취향의 나는 솔직히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투박하고 뚱뚱한 머그잔이 아닌, 섬세한 손잡이가 예쁜 꽃무늬 커피잔에 넘칠 듯 담겨나온 커피와 조그만 마들렌 한조각을 시켰을 뿐인데, 앙증맞은 포크에 나이프까지 챙겨준 정성으로 보아 카페 주인의 센스를 짐작할 수 있을 뿐.


남편과 아이는 각자 책을 보고, 나는 가져간 노트북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다. 손님들이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진열된 책의 앞줄에 마침 반가운 브런치 작가님의 책이 있어서 남편은 그걸 읽기 시작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엄마의 안광 레이저에 쏘인 장중딩은 눈치껏 가방 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집에서 가져온 신문과 책을 읽었다. 한입 먹어보란 말도 없이 마들렌을 한입에 털어넣은 장중딩이 느닷없이 마들렌과 휘낭시에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나는 냅킨에 그림을 그려 설명해주고는, 시작한 사람은 많아도 끝낸 사람은 없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부분에서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먹는 얘기로만 주구장창 수십 페이지의 서사가 이어진다는 얕은 지식과, 17세기 유럽 수녀원에서 금괴 모양의 빵틀에 구워 만들어 그 이름이 유래된 financier(휘낭시에)가 영어의 finance와 어원을 같이 한다는 잡다한 이야기로 아는 척을 해주었다. 파생어 financial 스펠링을 맞게 써보라고 하다가 나의 안광 레이저를 능가온라인 카지노 게임 장중딩의 가열찬 눈흘김을 받기도 했다.


강원도 어느 소도시의 손님없는 북카페에서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문닫기 직전 9시 즈음, 인상 좋은 카페 주인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어두운 국도를 달려 다시 작고 낡은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도 없는 칠흙같은 도로 위에서 뒷좌석에 앉은 장중딩이 나른하게 하는 말.


"엄마. 이건 진짜 '온라인 카지노 게임치사량 초과' 인걸"

"으으응 그래? 니가 생각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뭔데?"

"어두운 밤, 차없는 고속도로, 손님없는 외딴 북카페에서 읽은 책, 엄마 아빠가 마신 드립 커피, 내가 먹은 초코 마들렌, 낡은 오두막에서 먹은 국밥(집 냉장고 냉동실에서 가져온) , 더이상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날"

"오.... 니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좀 아는구나."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4년 전 5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땐 이미 봄이 다 가는 중이었다.

3년 전 5월, 나는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

2년 전 5월, 나는 먹어도 듣지 않는 신경 정신과약을 털어넣고 반쯤은 정신이 몽롱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

1년 전 5월,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어린이날이니 재미있게 놀다오라고 배웅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종일 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5월 어린이 날, 나는 아이와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비록, 해외 여행은 커녕 호텔도 고급 펜션도 아닌 이 낡은 오두막같은 방에서, 일등급 한우고깃집은 커녕 집의 냉장고에서 대충 챙겨온 음식으로 간단한 저녁을 먹은 일박의 짧은 여행이지만, 내 옆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 삶의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게 했던 '그 일'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문제는 계속되고 있고, 구멍은 메워지지 않고,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큰 일을 겪은 후에도 우린 여전히 함께이고, 그 일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지고 서로를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사랑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들과 함께,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보내며,

소소한 행복에 감사온라인 카지노 게임 것.

그저 하루하루 평안한 것.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란 그런 것.


2025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하여.



온라인 카지노 게임남편이 보고 있는 책은 브런치 말상믿 작가님의 <오십의 태도. 낯선 곳에서 브런치 작가님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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