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떠올리고 싶지 않아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순간 불행은 시작된다
"괜찮아? 많이 아파?" 입구에서부터 나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전까지는 눈부시게 밝은 곳에 있다가 불 하나 안 켜진 병실로 들어오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빠 똑바로 쳐다봐봐."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말했다. 아빠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있는 힘껏 괜찮다는 티를 냈다. 또렷하게 꽂힌 내 시선을 보고 안심하는 듯했다. "괜찮네. 괜찮아."
조금 카지노 쿠폰서는 그나마 살 것 같아서 어리광을 부렸다.
"입술이 탱탱 부었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깨물었더니 이렇게 됐어."
다들 다리 쪽만 살피느라고 내 얼굴에 생긴 상처는 모르고 있었다. 새빨간 붕어 입이 됐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역시나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기만 했단다. 아무 일 없을 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엄마는 2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과는 다르게 거의두 배 이상 지체돼버린 이유를 물었다. 공지된 시간은 대기 시간, 회복 시간을 모두 뺀 순수 수술 시간을 의미하는 거였다. 안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얘기해 주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했다. 수술이 자꾸만 길어지는 줄 알고 무서웠다는데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아쉽다.
이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속해서 힘든 일이 벌어졌다. 의지와는 다르게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래서 기억조차 뚜렷하지 않다. 하루를 잊어야 또 다른 하루를 겨우 살아낼 수 있었으니까.
병원에서 힘들었던 기억들도 일부러 다 지워버렸다. 최대한 생각카지노 쿠폰 않으면서 꼭꼭 묻어두니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요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초등시절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고 있다. 어렸을 때의 일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고 꿈에도 자주 나온다. 다시 한번만 살아볼 수 있다면,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다.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며,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인간의 심리를 말해요. 즉, 기억왜곡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죠.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무드셀라 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우울할수록 더 잘 나타난다고 한다. 회피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추억 살리기 프로젝트가 나의 뇌에서도 수년 째 진행 중인 것 같다.
그날 밤이 더 지옥이었다. 좁은 6인실 병실에 커튼까지 치니 작은 감옥이 나를 옥죄이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도 좁은 공간이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 없는데 갑자기 폐소공포증이 왔다. 누워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답답해서였다.
불안증상은 공황발작과도 유사하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공포심이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 같은 경우엔 숨을 잘 쉴 수 없었다. 이러다가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왜 군대에서 가장 가혹한 괴롭힘이 부동자세라고 하는지, 사람을 고문할 때 왜 온몸을 속박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엄마에게 부채를 쥐어주고 밤새도록 얼굴 옆에 바람을 넣어주라고 부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스치는 바람이라도 있어야 숨이 멎지 않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꾸벅꾸벅 졸 때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힘들다며 울상이 되다가도 결국 내 옆을 지켜줬다. 정말 미안했던 하루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가서야 손 선풍기로 대체할 걸 그랬다는 얘기를 주고받았지만 솔직히 성에 차지 않았을 것 같다. 인위적인 바람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공기가 무겁게 짓눌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엄마의 잠을 방해하면서까지 같은 일을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써도 증상은 좋아질 수 없기에 해석하자면 그만큼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다음 날엔 손가락에 심전도를 확인할 수 있는 기계를 매달았다. 실제로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기면 경고음을 울리는 기계였기에 이거면 안심일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긴 했지만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런 걸로 괜찮아질 거였으면 그 참담한 고통을 이겨낸 강한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잠재웠을 거다. 불안 앞에 의지를 드러내는 건 맹수 앞에서 주먹을 쥐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이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라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얼굴을 비춰봤다. 거지 꼴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으니 씻을 수도 없었다. 다음 날에도 고통은 그대로였다. 곧이어 두 다리에 통깁스를 했다. 가뜩이나 움직일 수 없던 다리가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실수로 다리를 건드리게 될까 봐무서웠는데 단단히 보호하고 있으니 안심이라고. 불편하지만 깁스가 꼭 필요한 이유였다. 무릎 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서 나도 편했다.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안에 자꾸 습기가 차는 느낌이 들어 간지러웠다. 하지만 긁을 방법이 없었다. 특수재질로 만들어 단단한 깁스 위를 벅벅 긁으면서 뇌를 속여야만 했다.
무릎이 간지러웠다기보다는오히려 허벅지에 닿아카지노 쿠폰 부분이 간지러웠다. 어떻게든 손가락 하나를 쑤셔 넣어서 긁다 보면 번번이 상처도 생겼다. 냄새도 안 좋고 찝찝했지만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수술 후 재활까지의 기다림은 몹시고되다.
다른 것보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역이었다. 깁스를 카지노 쿠폰고 덜 아픈 것도 아니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매일 밤낮으로 울었다. 깁스가 살짝이라도 건드려지면 그 울림이 안쪽까지 더해져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남들보다 현저히 몸에 털이 나지 않는 편이었는데도 나중에 깁스를 깨고 보니 다리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깁스 후 털이 자라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처음 경험하는 거다 보니 마냥 신기카지노 쿠폰. 다행히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하나 의문이었던 점은 왜 양쪽 무릎 수술을 한 번에 진행하게 됐냐는 것이다. 한쪽이 불편하면 다른 한쪽으로 지탱하며 다녀야 하는데 두 쪽 다 움직일 수 없으니 걸을 수가 없는 게 문제였다. 병원에서는 2주 만에도 목발을 짚으며 퇴원한 사람이 있댔는데
그 사람도 나처럼 두 쪽 다 수술한 게 맞았을까?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발로 목발을 짚은 거지?
혹시 내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두 발을 디디고 일어날 엄두를 못 내서 회복이 늦어진 걸까? 쓰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정말 최선의 방법이었는지잘 모르겠다. 카지노 쿠폰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지만 억울할 만큼 암혹한 시기를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쪽씩 수술했다면생활이 훨씬 편했을 텐데.
카지노 쿠폰만 겪어보지 않았으니 또모를 일이다. 너무 아파서 다른 한쪽은안 하고 싶다고 피했을지도 모르고, 한쪽 다리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을 거다. 다만, 지독히도 나를 괴롭히던 용변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겠지. 이 카지노 쿠폰는 조금 미루도록 하자. 풀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 한참이다.
아빠에게도 동생에게도 응원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힘들 땐 주변에 가족밖에 없다는 말은 정말 맞다. 아무래도 밥을 먹기에는 무리였다. 다행히 수액으로 최소한의 영양분을 넣어주고 있으니 억지로 음식물을 밀어 넣지 않아도 됐다. 하루 먹은 양의 음식이 코딱지만 한 메모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물 여섯 모금, 미음 두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정도가 전부였다. 입원할 때 잰 몸무게가 52kg였는데 퇴원하고 재보니 38kg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날씬했던 순간이다. 그때 처음 나의 진짜 다리 길이를마주카지노 쿠폰.
내가 태어났을 때 팔,다리가 무척 길었었단다. 그게 나를 더 예뻐 보이게 카지노 쿠폰고. 아무래도 아빠를 닮은 모양이었다. 아빠는 키에 비해 팔과 다리가 쭉쭉 뻗어 비율이 좋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자치고 손도 예뻤다. 그 장점을 첫째 딸인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네일숍에 가면 선생님들이 늘 바디가 길고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 손톱 모양도 모두의 워너비처럼네모나고 긴 모양이었다. 잘생긴 얼굴을 물려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마저도 감지덕지라생각한다.
그런데 성장기 때부터는잘 먹기 시작하면서 살이 붙었다. 뚱뚱 까지는 아니더라도 늘 통통한 몸매였다. 그런 내가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되니 숨겨진 매력이 쏙쏙 드러났다. 다리는 두 번도 꼬을 수 있을 만큼 길어졌고이목구비도전보다훨씬 살아났다. 살이 빠지니 어떤 옷을 입어도 태가 났다. 가장 좋은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카지노 쿠폰만 못 먹어서 빠진 살이라 그런지 밥 한 공기만 제대로 차려 먹으면 금세 1킬로씩 회복됐다. 짧았지만 그거 하나 병원에서 얻어가지고 나왔다고 가족들이랑 웃으며 이야기카지노 쿠폰.
요즘에도 다시 체중감량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때 모습이 영영 리즈로 남아버리면 안 되니까... 는 장난이고 건강을 위해서다. 세상만사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마음만 먹으면 몸을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얼른 목표를 이뤄내야겠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난관은 '욕창'이었다. 이걸 관리하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말하자면 입 아프다. 엄마가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카지노 쿠폰. 욕창은 오래 누워있어서 생기는 증상이므로 환자 본인이 관리할 수 없다. 꼭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욕창 방지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 시기의 온도, 습도, 날씨까지 모조리 기억할 정도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늦바람이 불어온다. 주위에 퍼진 풀 내음이 계절을 달려 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