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모르던 세상
내 인생도 한 철은 봄처럼 따뜻하기를
결국 고민하다 또 119를 불렀다. 덜컹거리는 불편한 차 안에서 착잡함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려고 지금 이렇게 갖은 수고를 겪는 걸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북적거리고 환한 병원을 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멀쩡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본 의사 선생님은무엇을 확인하더니 급히달려 나가셨다.
응급실에는 보호자가 한 명만 따라올 수 있어 동생과 아빠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곧, 가족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분명 별 거 아닌데 또 오버했네 생각하며 간밤의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요.
지금 오길 정말 잘한 거예요.
무려 3차 병원 응급실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내 상황이 정말 위급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난, 오늘 아침에 이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그 뒤로 한 게 없는데.갑자기응급 환자라니.'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들어보니 폐색전증이라는 질병카지노 게임.
간단히 말하면 혈전이 폐의 혈관을 막아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수술을 끝내고 오랫동안 누워있는 환자에게서 흔히 생길 수 있는 병이라는데 이름조차 생소해서 검색을 해봐야 카지노 게임.
아무튼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떤 합병증을 앓게 됐을지 모를 끔찍한 상황카지노 게임고 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낯선 통증을 경계한 나의 보호본능이 고마워지는 순간카지노 게임.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이렇게 쉽게 사람이 죽을 수 있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카지노 게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어린 나카지노 게임.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한낮 꿈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한미래가 바로 옆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아찔카지노 게임.
바로 입원수속을 마쳤다.사실 앞으로 집에서 어떻게 재활을 해야 하지? 내심 막막했었는데 병원에 조금 있을 수 있다니좋은 소식카지노 게임.
이번엔 과감히 2인실 대기를 걸어두었다. 답답한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당시엔 돈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2인실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부담카지노 게임는지 알지 못했다. 크고 나서야 아, 내가 미쳤었구나, 자책할 뿐카지노 게임.
하루가 저물고, 다음 날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러 다녔다. 물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누군가 밀어서 이동시켜 주었다. 소변줄을 낀 상태에서 조영제를 맞고 MRI를 찍자니 너무 불편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조영제를 맞으면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온갖 곳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꺄진다. 회음부가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이라 예민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럼에도다행히 별다른 부작용은 없어서 편하게 넘어갔다. 어떤 사람은 전신에 두드러기가 퍼지거나, 숨이 가빠지거나, 두통이 찾아온다고 한다.
시끄러운 소리를 40분 가까이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인데 이런저런 부작용까지 겹치면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만난 지 2년 됐던 친구에게 잘 지내고 있냐고 넌지시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는 고맙게도 나를 보러 병문안을 오겠다고 말카지노 게임. 나도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는 거라신이 났지만지금 형색이 너무 초라해서 오히려 날 찾아온 친구가 불편해하진않을까 걱정이됐다.
주렁주렁 소변팩을 달고 있고, 얼마나 못 씻었는지는하루하루 세다가 잊어버렸다.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고 창백카지노 게임. 그래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 너만 괜찮다면 와도 좋다는 답을 건넸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 잎일수록 자신의 못난 모습을 감추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이렇게 아파서 누워있는 자신마저도 사랑했던 모양이다. 웬만한 용기 아니고서야 쉽지 않았을 결심이다.
친구는 직접 본 내 모습에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고맙게도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반가운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또 병실 안이다 보니 평소처럼 시끄럽게 수다를 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실속 없는 인사치레만 주야장천 하다 돌려보내고 말았다.
나의 힘든 상황을 조금이라도지켜보다 간친구는 그날 이후로 연락을 자주 해왔다. 주로 일과가 끝났을 밤 시간대에만 연락이 오긴 했지만 심심할 때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나도 고단했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다 나으면 이거 보러 가자, 어디 놀러 가자'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빨리 나아서 얘기한 것들을 다 이루고 싶었다.
혈액 응고를 막는 헤파린이라는 약을 꾸준히 투여카지노 게임. 매일 아침 교수님이 와서 경과를 말씀해 주셨다. 퇴원할 수 있는 조건은 수치가 안정범위 안에머물러야 한다는 것카지노 게임. 이건 나의 노력으로 괜찮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더욱 답답했다. 결국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인가.기한도 알 수 없이.
그날 점심을 먹고, 엄마와 얘기를 하며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배에서 장이 꼬이는 듯한 복통이 찾아왔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처음에는 폐색전증이 또 잘못된 줄 알았다. 응고된 혈액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고,다른 곳에서도 응고될 확률이 높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원인을 찾고자 이번엔 병실까지 X-RAY 기기를 가져왔다. 방사선실이 아닌 곳에서 촬영을 해보긴 또 처음카지노 게임. 그런데 검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카지노 게임.
1.5M 길이에 육박하는 대장이 대변으로 가득 찼다는 말카지노 게임. 선생님도 이런 관경은 또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하기 전날부터 한 번도 화장실에 간 적이 없으니 아무리 먹은 양이 적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탈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카지노 게임.
믿을 수 없는 현실카지노 게임. 밖에서는 변비 한 번 걸려본 적 없는 건강한 장을 갖고 있던 나인데. 이번엔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창피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겨우 이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고통을 겪게 될 줄 차마 모르고.
드디어 기다리던 2인 병실에 자리가 났다. 운 좋게도 창문 바로 옆자리를 쓰게 됐다. 한강대교가 다 보이는 명당이었다. 답답했던 병실이 갑자기 5성급 호텔이 됐다. 왜 사람들이 한평생 뷰 좋은 집에 살고 싶어 아득바득 노력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탁 트인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든 순간을 한 번은 더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이 생겼다.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은 정말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 모든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쁜 야경도, 눈부신 노을도, 반짝이는 아침 햇살도 하루하루 익숙해지다 보니 원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씩 무뎌졌다. 차라리 병실에 갇혀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딱딱한 흙바닥이라도 좋으니 좀 걷고 싶었다.
물론 원래 누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쉬워지겠지만, 미칠 듯이 좋은 감정이 드는 건 오래가지 못하더라는 말이다. 사람은 자꾸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니까.
쉽게 만족할 수 없다.
낙이랄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 학교는 개학을 해버렸고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원래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말괄량이였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인터넷 망령이 되는 것 밖에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가끔 동생과 아빠한테서 오는 연락만이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그렇게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던 도중 처음으로 샤워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병실 맞은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샤워실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를 골라 휠체어를 눕히고 거기에 올라탔다. 물론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직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엄마 아빠가 동시에 나를 들어줘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몸이 들릴 때마다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자꾸 미운 투정을 부렸던 것 같다. 조바심에 안달복달 못하던 사람은 엄마 아빠였는데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오로지 나 밖에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감옥이 여기보다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일정시간이 되면 작업하고, 운동하고, 편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아프지 않게 잠들 수 있는 모든 날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쏴아아-'
수화기 물이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졌던 건 처음카지노 게임. 옷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어 최대한 빨리 나와야 했지만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카지노 게임 기분이었다.
그때 거의 한 달 가까이 더러운 상태로 지냈던 게 마음에 남아서 결벽증이 생겼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떡져 있는 건 볼 수가 없고, 한 시의 찝찝함도 참을 수 없다. 하루에 카지노 게임 한 번은 꼭 씻어줘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감는 일도 부지기수다.
전에는 여름의 초록이 좋아서 더운 것도 어느 정도는 봐줄 만했는데, 이제는 무조건 찬기 냉랭한 겨울이 좋다. 추운 걸잘 참는 성격도 아닌데 뭔들 여름보다는 낫지 않을까생각한다. 하필, 호르몬 분비량이 가장 많고 유분이 넘치던 시절에 이런 일을 겪었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도저히 겉모습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혹시 급체를 경험해 본 적 있는가?
사람들이 급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언제나 답답했다. 급체는 급하게 체한 느낌이 아니다. 명치가 쑤시고 손발이 차갑고 가슴이 답답한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혈압이 낮아져 기절할 때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몸을 덮치는 것이다. 어떻게 잘 못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극심한 어지러움에 눈앞이 하얘진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질려버리고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지만겨우살아진다.
그러다 오바이트를 하게 되면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운이 나빠 오바이트가 바로나오지 않는다면 한두 시간을그렇게힘든 상태로 보내야 한다. 단언컨대, 체 해본 사람은 많아도 급체를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 급체를 해본 건, 중학교 1학년쯤이었다. 점심으로 오동통한 면발의 라면을 먹고 거실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다가 따뜻한 물로 씻고 나왔는데, 머리를 말리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뭔지 몰라도 난리가 난 느낌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지옥의 세계가 열린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