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와 세나의 일기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가르친 어떤 선생님께서 '불구하다'라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그럼에도'면 충분한데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불구하다'라는 말을 붙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면 충분하다.
세나는 알파를 축출하기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잘 지냈다.그렇게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초코와 두나, 카지노 가입 쿠폰와 알파는둘씩 떨어져 지냈고 우리는 그들이 싸우지 않게 하려고방문을 열 때마다 극도로 조심하며 살았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뭐라도문 틈에끼워서 두 무리가 마주치는 걸 막아야 했다. 두나가 초코와 한 무리를 이루게 된 뒤로 두나도 세나를 볼 때마다으르렁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네 강아지는 둘둘로 완전히 나눠졌다. 초코와 두나, 알파와 세나로.
나는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를 신호로 엄마와 초코, 두나를 감지했고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의 실재와 부재를 감지했다. 거실로 나갈 때는 초코와 두나가 있을까 봐 미리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고 나가기도 했다.두 파벌의 접촉이라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우리는촉을 바짝 세우고 지냈다.
안 보고 살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우리 집 네 푸들은 상대의 발소리와 짖음을 들으면 주저 없이 짖어 경계심을 드러냈다.모두가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세나는 거실의 초코와 두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욱앙칼지게 굴었다.
두나는 그런 세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출근했던 날, 일이 터졌다.
내 방에 볼일이 있던 아빠가 문을 열자 마침 거실에 있던 두나와 내 방에 있던 세나가 만나 크게 맞붙고 말았다. 초코를 공격하던 세나처럼, 두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바로 세나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상은 초코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세나와 두나는 자매. 체급도 비슷했다. 둘은 바로 맞붙어 싸웠고 아빠는 주변의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며 둘을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다. 5키로 남짓인 강아지지만, 이렇게 크게 싸움이 붙었을 때 사람이 직접 손으로 입을 잡거나 하면 큰일 난다. 생살이 찢길 수 있다. 아무리 반려견이라도 개들의 이빨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두나는 작정하고 문 세나의 다리를 쉽게놓아주지 않았다. 바로 엄마가 가세해 서로 물고 있는 둘 위로 이불을 던져 덮었고,겨우 떼어내 각자의방에 가뒀다.
문제는 엄마와 아빠도 출근해야 할 시간이 임박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었다. 엄마는 세나가 두나의 귀를 물어 상처를 낸 것을 확인했다. 아빠는 세나가 두나에게 다리를 물린 것을 확인했다. 일단 급한 대로 집에 있는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반창고와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준 뒤 부모님도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퇴근한 내가 확인한 것은 귀에 딱지가 앉은 두나와 다리의 상처가 퉁퉁 부은 데다 열까지 나는 세나였다. 세나는 끙끙대며 내 곁에 붙어있었다. 퇴근 당시 이미 밤 10시 가까이 된 상황이어서밤새 상황을 지켜보며 세나의 상처를 소독했다. 두나가 이번에는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 천사 같던 두나도 복수의 기회 앞에서는참지 않았다.
아침이 밝자마자아빠와 함께 세나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역시나 상처는 매우 깊었다. 동물에게 물리면이빨 때문에 살갗이불규칙적으로찢어지고 감염의 우려도 크다. 두나는 세나의 다리를 아주 꽉 물었고, 지체된 한나절 동안 찢어졌던 피부 끝이오그라들어 바로 봉합할 수도 없었다. 상한피부를 잘라내고 당겨서 꿰매야 했다.
세나는 수술 후거의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했다. 귀신같은 솜씨로 깁스를 풀어버리는 세나 때문에매일 소독을 위해 아침마다 동물병원에 와서 처치를 받아야 했다. 아빠는 거실에 초코와 두나를 둔 채 내 방문을 연 원죄로 아침마다 나와 세나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재미있는 건 세나가 한 달간의 병원행을 꽤나 좋아했다는 것이다. 세나는 매일 아침 나와 아빠와 함께, '다른 강아지들 없이'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물론 병원에서 소독하고 깁스하고 기운 자리의 실밥을 뽑는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았겠지만.
누구보다절실하게 외동이고 싶었던 세나의 처절한 인정투쟁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시작하던 시절의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