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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샘 Apr 20. 2025

1994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기억

가장 행복했던 1994년 여름방학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승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와 함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강등록을 했다.

나는 물과 친했다. 당연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잘 배울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을 했다.

그 착각은 수업 첫날 깨졌다. 아빠에게 배운 자유형, 배영.

여름이면 늘 강가에서 살았는데, 그런 내가 키판을 붙자고 발차기 연습만 했다.

강사는 나에게 자꾸 무릎을 접지 말라고 했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었다. 결국 강사는 나를 포기했다.

구석으로 가서 키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만 하라고 했다. 첫날을 괜찮았다. 친구와 함께라서.

시간이 지나도 나의 발차기 실력은 늘지 않았다. 나중엔 혼자만 발차기 연습을 하게 되었다.

점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강습이 재미가 없어졌다. 조금 나아져서 진도를 나가려 해도 발차기가 발목을 잡았다.

재수강 등록시즌에 나는 더 이상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배우지 않겠다고 친구에게 선언했다.

물에 빠져도 살아 나올 자신이 있으니, 난 그만두겠다고. 그렇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멀어졌다.


얼마 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시작했다는 지인과 요즘 온라인 카지노 게임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배우다 포기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 끝에 아련하게 자리 잡은 1994년 여름방학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해 최고의 인기드라마 느낌과 사랑에 그대 품 안에가 방영되었던 여름이었다.

아빠와 동생, 고모가족, 할머니와 함께 밀양 배내골이라는 강가에 텐트를 쳤다.

할머니는 커다란 솥에 닭을 삶았고, 고모부는 산에서 잡아온 오소리, 너구리들을 철창에서 사육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고모부는 불법으로 야생동물을 잡아 건강식품처럼 파는 일을 했었다.

아빠는 여전히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였고, 또 백수가 되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돈 잘 버는 고모부에게 아빠의 취직을 부탁했고, 그 여름 강가에서 피서를 겸한 아빠의 실습이 같이 병행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아빠의 여린 성정을 몰랐다. 아빠는 절대 동물을 잡을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는 사람이다.

겁이 많아서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다. 그에 반면 고모부는 무면허 운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며,

동물을 잡아서 파는 일에도 절대 죄책감 따위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린 그 강에서 약 열흘을 보냈다.

아빠는 여름에 피서를 갈 때면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르쳤었다. 늘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본인이 자신 있는 분야를 알려줄 때는 아빠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자전거,종이상자 만들기, 다림질, 청소.

난 그런 것들을 아빠에게 배웠다.


그 해 여름엔 잠수와 다이빙, 물속에서 눈뜨기, 자유형, 배영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는 물 위에 동동 뜬 상태로 따뜻한 햇볕을 받기도 했다. 흡사 보노보노에 나오는 해달가족처럼.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개구쟁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행복했다.

아빠가 말했다.

강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다 보면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지점이 나온다고,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몸에 힘을 빼면 된다. 그럼 몸이 서서히 가라앉을 것이고 어느새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그때를 놓치지 말고 발로 힘껏 강바닥을 차고 올라오라고.


체육시간에 띔 뜰 도움닫기처럼 강바닥을 도움닫기 삼아 치고 올라오라는 뜻이었다.

난 곧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동생들과 텐트 주변 얇은 물에서 놀다가 그날은 제법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너무 멀리 온 것일까, 몸에 힘이 빠졌다. 좀 서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순간 몸이 굳어졌다. 겁이 났다.

그때 아빠가 가르쳐준 방법이 휙 하고 스쳤다. 굳어졌던 몸에서 힘을 뺐다.

정말 내 몸이 서서히 강물 안으로 가라앉았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깊은 강물 속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주먹을 꼭 쥐고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 갑자기 물이 들어가니 따끔따끔하면서 모든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컴컴하기만 하던 물속 세상이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풀, 물고기, 돌, 이끼 그리고 물속을 통과하는 한 줌의 빛. 햇빛 말이다.


햇빛이 바닥을 비추었다. 이것이구나, 이제 저 바닥을 도움닫기 삼아 두 발로 힘껏 치고 올라가야겠구나.

난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난 힘껏 바닥을 찼다.

내 몸은 수압을 이기고, 부력의 힘으로 점점 햇빛과 가까워졌다.

이윽고 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강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던 기억은 어느새 잊혔다. 그리고 아빠도 내 삶에서 잊혔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아빠만큼 다정하게 가르치질 못한다. 인생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니, 스스로 헤쳐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을 자세히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에 난 늘 미숙하다.

내가 늘 혼자 헤쳐 나왔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었다.

길고 길던 언제 끝날지 모르던 내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20대에도 난 혼자가 아니었다.


1994년 그해 여름, 아빠가 알려준 방법이 늘 내 몸 안에 각인되어 있었다.

눈을 떠도 컴컴했고, 눈을 감아도 컴컴했던 그 시절에 늘 한 줌의 햇볕이 내 마음속 깊은 바닥을 비췄다.

바닥을 힘껏 차고 다시 올라오라고 말이다.


힘껏 바닥을 차고 올라오렴.

힘껏 바닥을 차고 올라오렴.


무더운 여름공기를 가득 머금은 아빠의 찬찬한 목소리, 여름햇볕에 그을린 아빠의 얼굴, 하얀 이를 빼곡히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아빠의 얼굴.


힘껏 바닥을 차고 올라오렴.


나의 아이들에게도 언젠가는 알려주어야겠다.

혹시나 살다가 길고 긴 어둠 속에 갇혔다고 생각될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라고.


힘껏 바닥을 차고 올라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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