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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독자 Oct 13. 2024

물결, 파랑,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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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사이트<한 잔의 휴식 본인 작품


잠깐 나의 상담 선생님을 만나기 전 날로 돌아가보자.


혹시 산술장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물질의 질량이나 부피를 제대로 재지 못하는 학습장애를 일컫는 용어이다. 큰 질병은 아니지만, 무언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모멸적인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에 아직까지 우리 나라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심리적인 기전이 뚜렷한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르다" 는 "특별하다" 가 아닌 "틀리다" 가 된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단계지수에서도 0.1% 였던 산술장애라서 나는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말은 학습장애라고 되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건그렇게 좋은 단어가 아닌 것 같다.

또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실제로도 사는데 별 무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정상이라고 하긴 애매한 뭔가를 이렇게 겪으면 사람이 느끼는 것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그렇다고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해선 특별히 제도가 따르지 않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로, "쟤 이상해" 라는 법과 도덕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그런 말은 종종 상스럽게 느껴진다.하필이면 다수가 아닌 소수의 영역에 걸쳐 있는 나로서는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당혹스럽기 짝없었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는 수학의 나라였다. 입시 시작 전부터 가장 많이 비중을 두는 과목이 수학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분수의 곱셈과 나눗셈 이후로는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학 지옥에 빠졌다.


산술장애는 대한민국에서는 가르칠 방법도, 치료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시에 특화된 빠른 진도 커리큘럼 자체에 뒤쳐질 뿐더러 전형적으로 칠판에 판서를 하며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이해할 수도 없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은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등 기존에 있는 교수법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며, 또한 별도로 모아놓고 그룹 과외를 시켜야 한다.

돈 되는 걸 하는 학원에서 이 일은 수요가 안 나니 하려고 들질 않는다.그게 아니라면, 약물을 쓰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한국에서 금지된 종류이다.


세상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 무렵깨달았다.

초등학교 3학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인생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필 이럴 확률이 몇 퍼센트가 되나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못하는 것에 대한 욕심을 빨리 버려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 그러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그냥 운이 좀 없었거나 생각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때는세상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닌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불안했다.


당시 학습클리닉 센터 원장님은 어머니에게 "딸이 수학 공부를 포기해야 할 것" 이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저주받은 학교 커리큘럼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이미 유치원 기록에서 산술장애 증상이 나와 있는 것을 전달받은어머니가 빨리 포기하다시피 선생님들에게 부탁했다.

"얘는 산술장애가 있어서 수학시키기가 어려워요. 선생님, 얘는 문제 풀게 하지 말고 두세요."


하지만 딱히 선생님들은 그 말을 듣거나 동조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일단 학교에 들어오면 쉬는 시간이 아니고서야 중간에 나갈 수는 없다보니

나한테만 비정상적인 커리큘럼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점수 기준치 미달 대상자로 선정되어 이해되지 않는 나머지 공부를 했다. 여러 아이들이 그 수업에 참여했다. 나는 정말로 산수가 불가능한 아이였고 나머지는 그냥 공부를 안 해서 끌려온 양아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었고 나는 뭐라고 해명할 새도 없이 그 교실에 꽤 오래 갇혀 있었다.


선생님의 나를 향한 노력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나. 인간은 생각보다 자기 욕심에 포기를 안 하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또 무언가를 깨달았다.

선생님이란 고된 직업이다. 대단한 인내력과 더불어 자기 자부심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교육 정책에도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중학교 때 깨달았다.왜냐하면 선생님이 문제 풀기를 나한테 시키려고 애쓰셨기 때문이다. 눈빛에는 무언가의 각오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교육부 산하 미달 학생 '갱생'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보이려고 애쓰는 그런 모습이었다. 남자처럼 짧은 스포츠 머리에 진한 보랏빛 같은 입술을 가진 강한 인상의 여자 선생님. 그녀는 여러가지 의미로 포기를 모르는 듯했다. 어려우면 문제를 복습해보라고 선생님이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선생님은 산술장애 자체를 이해를 하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머리털나고 처음 듣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당시에 산술장애라는 분류조차도 흔하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또한 지금처럼 아이들의 개성과 성격 각각에 맞춰 하고 싶은 것을 시키거나 더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도록 유도하던 때도 아니었다.

하필 또 중학교 교육까지가 의무교육이라 나는 그저 그 나머지 공부를 하는 교실 창으로 금빛 햇살이 들어오는 모습을 처연하게 보고만 있었다.


학원에서는 수학 선생님에게 틀린 개수만큼 매를 맞았다. 수업비가 아까워서 다니긴 하지만, 어머니의 요청은 이번에도 거절되었다. 거절을 거절한 것이다. 나는 그 수업이 끝나면 해가 다 질 때까지 문제집이 쌓인 창고 같은 골방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내내 붙잡고 있었다. 손은 늘 붉고 퉁퉁 부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내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놀기만 하는 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분명히 말하지만, 그냥 그 문제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하지?


수능을 쳤다. 당연히 엉망이었다. 그 시험지 몇 장이 인생을 책임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건 내 생각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진작에 세상이 결과만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대학은 들어갈 수 있었다.

수학 점수를 그렇게 많이 볼 일 없는 문과계열 사립대였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았다.

그 어느 입시가 치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한테는 몇 배나 힘들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여러개 땄다. 이미 있던 자격증에 더해 그냥 할 수 있을 만큼 다하려 했다.

학교에서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친구가 없었다. 대학 과제에 치이고, 아르바이트에 치이며 살았다.

그저 열심히 살라는 말에 그렇게 살았다. 저녁형 인간인데 진짜 죽을 것 같지만 아침에 수업 나가고,

남들 술 마실 때 안 마시고, 공부하라 할 때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평범한 삶이라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음을, 대학시절에 깨달았다.

한편으론 술집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는 또래 친구들이 부럽고 나 자신이 초라해서 눈물이 났다.

벌어도 벌어도 밑바닥인데다 젊고 어리다는 이유로 돈도 많이도 떼먹힌데다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아마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못해본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 꿈을 접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남을 고통주려 즐기느라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닐까, 지금 자기가 나보다 잘 산다고.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그 고생이란 언제 끝나야 낙이 오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꿈꾸는 것조차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대한민국에서 단 2% 내외인 성향의 INFP라, 감정 조절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성격이 꼬였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남한테 쓴소리 적당히 듣느니

내가 먼저 방어하는 게 편했다.

그러다 내가 정말 죽을 것 같고 상처받는 것보단 나았다.


사람이 하는 말에 발로 채이는 기분이란 극한의 정신적 고통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참아왔기에, 나에게 불필요한 압력이 들어왔을 때,

제때 저항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길게 봐야 하는 인생이라지만,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지만

그런다고 될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아무튼 그런 삶의 반평생이었다.


나의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일 년은, 마음의 폭풍이 멈추질 않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있던 말들과 경험을 원념과 한, 분통함으로 꾹꾹 눌러적었다.


말 한마디로 후레자식 만들기란 참 쉽다.

나와 너를 비교하면서 너를 깎아내리는 일도 참 쉽고,

약한 사람 약점 잡아다 자기 발 밑에 두기도 참 쉽다.


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렇게 쉬운 인간이었나보다.

내가 착한 것도 그 사람들 보기엔 죄가 맞구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파랑이 일며 파도가 요동쳤다.


한때는 그랬음을 기억한다. 감정은 인간다움을 깨닫게 하는 가장 멋진 일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내 신념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부딪혔다. 선생님들은 나의 마음과 감정,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지만 당장 행동을 전혀 반대로 하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먼저 깨닫게 되었다. 뭐랄까, 그 본성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무조건 제일 중요하고, 내 감정은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은 의도적으로 짓밟아도 되는 것들. 나는 학교에서 그저 숨만 쉬어도 불쾌한 존재였다. 내 그림자조차 경멸스러워 밟지도,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아, 사실 눈빛도 아니었다. 나는 그 느낌을 공기로 알았다. 나는 상담 때 말꺼내기도 너무 힘이 들어서 글자로 적었다.


나는 나의 상황을 도와달라고 요청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냥 애들이라서 그래, 아니면 네가 먼저 잘못했겠지 하는 말들이 돌아왔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 비수가 꽂혀 연연해 본 적이 당신은 있는가? 나는 그랬다. 사회에 뛰어든 지금, 그저 바보같이 감성적이고 착한 사람이라서, 나라는 이름의 한 송이 꽃은 무참히 짓밟혀야만 했던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기는 언제나 숨기고 다니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 늘 이렇게 말하며 이제는 웃으며 뒤에서 칼을 갈고 있다.


이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가 당한 고통이 정말 소중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괴롬 때문에 어디다 호소하고 옛날 얘기 따위나 늘어놓아서 남을 괴롭힐 생각도 없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생각보다 툭툭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이기적이고 추한 사람들이 많다.

본래 트라우마라는 것은 잘 지나간 것 같다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어떤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올라오곤 한다.

상처를 봉합하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아주 다른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못된 말을 내뱉는 사람들 속엔 뒤틀리고 썩은 고름 같은 말의 무덤이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대개 그들은 자기가 당했던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곤 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왜 당신 마음 고통을 내가 들어주어야만 하지? 그렇다고 낫지도 않을 텐데.

그저 나를 괴롭히고 싶고 내 귀한 시간을 쓰게 하려 만들려 한다면 병원이나 가보라고 한다.

당신이 어디서 당했던 걸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내 촉촉하고 사람을 울리는 감성은 그로부터 적당히 덜어내야먄 하는 것이 되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솔직하게 내놓을 데가 없는 사람은 숨막혀 죽을 지경이다. 마치 명치에 커다란 납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은데, 그 괴로운 납덩이는 뜨거운 온도로 달구어진 채로 내 마음을 괴롭게 짓누른다. 내가 나다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극도로 끔찍한 일인지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일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거절 의사이다.


내가 좋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망설이게 됨은 다름이 아니라 조바심 때문이다. 저 사람과 중요한 인간관계에 있는데 그것이 깨지지는 않을까, 혹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잃게 되진 않을까, 이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까 하는 타자 중심의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면, 거절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내가 굳이 "아니" 라든가 "싫어" 라든가 "나가" 라든가 하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침묵을 지키는 눈빛만으로도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간은 생각보다 무례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례한 것을 모르며

고통받는 것은 항상 나 자신일 뿐이다.

행복의 순간은 짧고,

불행과 고통의 기억은 오래 간다.


일상에서의 지침과 휴식이 필요함은 이런 부분도 십분 한몫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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