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영화의전당에서 <다른 곳에서 온 그녀라는 단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늙은 매춘부가 자기 직업에 대해 담담히 풀어놓는 이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은 어떤 컷 전환도 없이 흑백의 화면 안에서 인터뷰 화면만 잡는다. 이미지만 놓고 보면 심심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돈도 좋아하고 섹스도 좋아해요. 그럼 이 일이 최고 아닌가요?" 납득은 가지만 어쩐지 반박하고 싶은 이 질문에 아직까지도 명쾌한 해답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아노라(2024)를 보고 나서야 생각이 좀 정리가 되었다. 인생은 욕망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칸과 아카데미를 휩쓴 화제작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른 곳에서 온 그녀의 대담함처럼 시작부터 스트립 클럽의 매춘현장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감독은 이 장면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는데, 오히려 식당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듯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초반부 장면 속에는 매춘이란 행위로 자괴감을 느끼며 도살장에 끌려가듯 우울한 여자들이 아닌, 서로 경쟁까지 하는 유쾌함마저 깃들어있다.
영화가 매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시작지점을 열어둔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일단 일깨우기 위해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돈벌이에 왕도가 없다지만 정말 '어떤 식으로든' 괜찮을까. 이 의문은 마침내 애니가 이반을 만나 저택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증폭되기 시작한다.
갓 20대가 된 철부지가 가지기에는 엄청난 호화주택. 운전하지도 않을 슈퍼카를 지하 차고에 몇 대씩이나 보유하고 있고 애니가 얼마를 요구하든 다 들어주는 이 청년의 재력은 구글에 이름만 검색하면 나오는 재벌 부모님의 재산에서 나온다는 것이 밝혀진다.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이반은 그 돈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그런데 돈만 많은 재벌 X세 망나니가 벌이는 기행이야 영화로도, 뉴스로도 많이 접할 수 있는 클리셰에 가까운데도 <아노라는 그런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기색이다. 다만 이반이 지나치게 태평하다는 점에 유달리 공을 들이면서 지켜보는 관객들 내면의 불편한 감정들을 조금씩 건드린다.
매춘도 마약도 일상처럼 별 것 아닌 모양새로 즐기던 이반이 갑자기 애니에게 청혼을 할 때, 불편한 의구심은 마침내 폭발한다. '정말 그래도 되나?'카지노 게임 사이트 질문은 관객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극 중 주인공인 애니조차도 되묻는 말이다. 매춘부를 데리고 일주일 여자친구 대행을 시키는 건 이 천민자본주의 세계에선 충분히 수습이 될 것 같다. 애니도 1만 5천 달러면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결혼은 이야기가 다르잖는가.
아름다운 장면에 위화감이 드는 건 우리가 이 모든 행위에서 사랑 이상의 진심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돈으로 사람을 구매하기도 하는 인간물화 현장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대단히 낯선 형식이다. 하물며 상대를 머리털 하나까지 자로 재서 선택하는 정략결혼도 아니고 로맨스라니? 이 영화에는 처음과 끝에 이르기까지 욕망에 관한 모든 것이 등장한다. 돈, 마약, 섹스, 명예와 같은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형태의 욕망이 등장하지만 단 하나 부재중인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이반의 청혼은 당연히 진정성이 의심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조차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제멋대로인 결혼일지라도 어쨌든 대저택에 입성했는데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천주교 신자들의 눈총이 쏟아지는데도 세례식마저 포기하고 이반에게 달려오는 토로스는 쌍욕을 퍼붓고 러시아에 있는 부모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미국행 전용기에 몸을 싣는다. 어차피 늘 하던 망나니짓이고 뭐가 잘못되더라도 돈으로 해결하면 될 텐데 어째서?
사실 맘대로 살아도 되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도 함부로 건들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영역이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에 이반이 도망간 뒤 개판이 된 대저택에서 '서로 사랑카지노 게임 사이트 부부 사이'라고 주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애니에게 토로스는 말한다.
"난 남편을 사랑해 영원히 그와 함께할 거야."
"개소리 집어치워. 넌 걜 사랑 안 해. 너희 둘 다 사랑 안 한다고. 알겠어? 다 네 망상이야. (중략) 걔 방이 어딘지 알아? 복도 끝 방이야. 벽엔 우주선이 그려져 있지. 왠지 알아? 걘 아직 어린애거든."
재미있는 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보여야 할 애니가 이 시점부터는 더이상 공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녀가 시종일관 '남편'이라 부르는 이반에게 독립을 꿈꾸는 탕아의 가능성이 1%라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너넨 사랑 같은 건 모른다'카지노 게임 사이트 토로스의 말로 그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진다. 그저 이반은 이제 막 성욕이 생겨난 철부지 어린애였을 뿐이니까.
침대에서 여자를 처음 상대해 본 듯한 어색한 솜씨와 그저 게임기만 붙들고 앉아있는 이반이 문득 떠오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애초에 이반이 결혼이나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어리숙한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자신 또한 무슨 사랑이니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감정보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팔자를 펴보자는 헛된 기대, 스트립 클럽에서 비아냥거리던 동료에게 지기 싫다는 객기에 기대 무모한 짓을 하고 있었음을 차츰 인정하게 된다. 처음부터 여기엔 진심 어린 사랑 같은 것도 없고, 행복과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서류와 법률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허름한 부잣집을 오기로 붙들고 있었을 뿐.
오히려 클리셰를 깨부수는 건 자카로프 가문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살아온 토로스 일행들의 모습이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얼굴을 묵사발 낼 것 같았던 이고르는 알고 보니 순박한 청년이고 토로스 형제도 사고 치는 개망나니 뒷수습 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직장인의 애잔함을 품고 있다. 우리는 토로스 일행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보다는 토로스에게 감정이입을 더 하게 된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소중한 존재를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토로스 일행의 고달픔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모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악다구니를 써도 귓등으로 듣는 일행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얼굴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솔직하기만 하면 진심일까. 영화의 이미지는 초반부에는 아노라를 사정없이 발가벗겨놓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꽁꽁 싸매둔다. 진짜 사랑은 상대를 까발리는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애니는 슬슬 현실 지각을 시작했다. 화려했던 일장춘몽은 사라지고 그 자신이 스트립 클럽에서 남자들을 유혹카지노 게임 사이트 삶도 어느샌가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 되어버렸다. 다만 이 삶에 덩그러니 남은 것은 가족도 남편도 없는 애니 그 자신뿐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서래가 형사 해준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은 자신을 항상 지켜봐 주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아노라에서 애니 역시 남편이 도망간 뒤로 자신을 계속 감시하는 이고르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도망가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이지만 그녀를 온전히 지켜야 할 책임도 있기에 '돈 많은 철부지'에겐 받아보지 못한 보살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고르는 그녀에게 매춘부 '애니'가 아닌 아노라라고 불러주며 빼앗겼던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전해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갑자기 스트립 클럽에서 하던대로 이고르의 몸에 올라타 정사를 나누려고 하는데.......과연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걸 사랑이라고 느꼈던 걸까? 마침내 이고르가 입맞춤을 하려는 순간, 거부감을 느낀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제야 이것 역시 사랑이 아니란 걸 깨닫고 울음을 터트린다. 고마운 걸 고맙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매춘부로 살아오며 쾌락을 대가로 지불하는 방법만을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야 만 것이다.
알베르 까뮈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말했듯이 사랑이 없는 에로스와 나눠줄 수 없는 부에 익숙해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이제 남은 세상은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곳이 된다.
우리가 근원적으로 추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욕망들은 본래 순서를 가지고 있다. 인생 전체를 관통카지노 게임 사이트 행복들, 사랑과 우정, 존경과 감사와 같은 자기 긍정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충만할 때에 비로소 정열, 돈, 명예, 여타 다른 쾌락들도 그 의미를 갖는 법이다.
<다른 곳에서 온 그녀에 출연한 늙은 매춘부는 그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인생을 관통하는 행복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다. 그리고 아마 아노라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쾌락뿐인 인생, 돈만 좇는 인생이 만족스러운 삶이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쓰러진 아노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보기 보다' 다정한 인간들이 세상에 흔할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희망이 그 결말에 담겨있다는 점이다.
*본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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