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섬으로 돌아온 다음 날, 붉게 타들어 가던 석양의 잔상이 푸른 새벽 공기에 완전히 집어삼켜지기도 전, 7일이라는 숫자가 그녀의 시간 위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녀의 여권에 찍힌 7일짜리 스탬프는 그녀의 손목에 찬 다이브 컴퓨터의 공기 잔압 표시처럼 언제든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을 울릴 태세로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당장 5일 후면 다이빙 강사 과정이 시작된다. 2주 과정에 이틀의 시험 기간까지 더하면 7일 안에 이 모든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 그녀의 여정은 거대한 절벽 앞에 선 것만 같았다.
클로드와 케빈이 있는 작은 다이빙 센터, 그녀에게 ‘네버랜드’가 되어준 그곳은 강사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코스디렉터’가 없었다.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섬에 몇 안 되는 대형 다이빙 센터에서 과정을 밟아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기가 진즉에 코스디렉터가 될 걸 그랬다며 클로드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오랜 친구인 맷을 소개해 주었다. 맷은 코스디렉터이자 대형 다이빙 센터의 매니저였다.
오랜만에 달달거리는 스쿠터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려 도착한 맷의 다이빙 센터는 그녀가 속한 작은 센터와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다이빙 보트가 한 척이거나 아예 없는 센터도 많은 섬에서 이곳은 3척의 거대한 보트가 위용을 자랑하며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십 명의 강사들과 수백 명의 교육생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활기보다는 압도적인 숫자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시스템의 소리 없는 소음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가족 같은 온기를 주었던 작은 센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에서 아무런 특별함 없이 시스템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게 싫어 이 섬까지 도망쳐 왔는데, 막상 이곳의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 이름조차 호명되지 않는 수많은 교육생 중 하나, 그저 처리되어야 할 행정적인 데이터가 될까 불안해졌다. 카지노 게임 추천 그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 섬에서 ‘자유로운 아무것’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카지노 게임 추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이빙마저도 이렇게 규모의 경제로 움직이는 상업적인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져야 돈을 버는 건가. 이 섬의 깊숙한 곳에서조차 자본주의의 쓴맛이 혀끝까지 밀려왔다. 그리고 그 씁쓸함은 곧장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왜 이곳에서조차 ‘아무것도 아닌’ 존개가 될까 전전긍긍하는가. 그 모순적인 자신의 마음이 우스웠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그녀는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냈다.
맷은 클로드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그의 외모와 분위기는 클로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두 사람은 90년대 말, 그러니까 이 섬에 최첨단 문명이라곤 제대로 된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절, 비슷한 시기에 이 섬에 들어왔다고 했다. 클로드는 런던, 맷은 리버풀 출신이었다. 클로드가 런던 연고 팀인 첼시를 응원하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량’처럼 그저 바다가 좋아 다이빙 강사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맷은 자신의 고향 팀인 리버풀을 응원하며 다이빙이라는 세계 안에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사업’을 구축하고 일궈낸 비즈니스맨이었다. 클로드가 낡은 티셔츠와 보드쇼츠, 때로는 상의마저 벗어던진 맨발의 자연인에 수염도 깎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이라면, 맷은 잘 다려진 깔끔한 셔츠에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깨끗하게 면도된 턱선, 그리고 안경까지 맞춰 쓴 모습이었다. 다이빙 강사라기보다는 기업의 임원에 더 가까운 인상에 그녀는 잠시 어색함을 느꼈다. 클로드의 센터가 느슨하고 가족 같았다면, 맷의 센터는 효율과 규모를 중시하는 거대한 시스템 같았다. 두 사람이 세워 올린 다이빙 센터의 분위기가 이토록 다른 것에 그녀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녀는 맷을 만나기 위해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 안으로 안내되었다. 밖의 열기와 소음과는 단절된, 에어컨이 과도하게 돌아가는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다이빙 일을 하면서 이런 환경을 맞닥뜨릴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기에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맷은 곧장 질문을 던졌다. “축구팀 어디 좋아하니?”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그녀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맷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제발 첼시라고만 하지 마.” 그리고는 케빈이 늘 그랬듯, 그 또한 처음 본 손님에게 정중하게 영국식 티를 권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용기를 내 맷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원래 무비자 90일 도착 비자인데, 육지에 잠시 나갔다 오는 길에 이러저러한 일로 7일밖에 받지 못했다고. 그래서 5일 후에 시작하는 강사 과정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녀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맷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태국 체류 기간이 30일에서 60일인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장기 체류를 위해 비자 연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이들을 위한 비자 런 대행 에이전시가 있다고. 거기에 한 번 알아보라고 했다. 이 에이전시들은 태국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모아 밴으로 국경까지 이동시켜 주고, 미얀마나 말레이시아 국경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시 돌아오는 ‘비자 런 트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몰랐던 세상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어 그것을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는 세상에 카지노 게임 추천 다시 한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묘함은 곧 불쾌감으로 변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 섬과 바다로 돌아오기 위해,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이라는 선을 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투명하지 않은 어둠의 커넥션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니. 자신이 섬에서 찾으려 했던 순수함과 자유가 이런 현실 앞에서 얼마나 쉽게 더럽혀지는지를 목격하는 것은 쌉싸름했다.
맷은 그런 비자 런 트립을 이용하면 문제없이 90일 정상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런 트립은 인솔자가 국경에서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이민국 직원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 정기적으로 ‘뇌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문제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대한민국 국민은 태국에 무비자로 90일 체류가 가능했다. 그런데도 비자 런 트립 비용을 따로 지불하고, 또 비자 비용도 별도로 내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마치 카지노 게임 추천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기에, 정당한 권리도 돈과 비합리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이빙 강사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그리고 이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비자 런 트립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야만 5일 후에 시작하는 강사 과정을 놓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 찜찜하고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것이 지금 그녀가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마주해야 할 현실의 관문이라고.
맷과의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섬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담하고 단출했던 방 한 칸짜리 숙소가 갑자기 비좁고 답답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7일이라는 시간제한이 물리적으로 이 공간을 축소시킨 것만 같았다. 갑자기 변덕처럼 기분이 바뀌는 것을 인지한 순간, 카지노 게임 추천 불안과 초조함이라는, 도시에서 친구처럼 늘 곁에 있던 낯설지 않은 감정들이 습관처럼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온 것을 느꼈다. 그 감정들이 발목을 잡아채자, 카지노 게임 추천 옅은 한숨을 내쉬며 발코니에 나가 앉았다.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석양 아래, 카지노 게임 추천 이 섬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그녀의 관계는 그리 가깝다고 할 수도, 멀다고 할 수도 없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언제나 엄마에게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런 그녀의 자유를 구속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열렬하게 지지하거나 응원하지도 않았기에, 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체념한 건지, 분노한 건지, 절망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애써 엄마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동시에 서로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한참 만에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 있니?” 엄마는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그녀의 ‘안전’을 확인했다. 그녀는 아무 일 없다고, 다 괜찮다고, 다이빙도 재밌고, 사람들도 좋다고 애써 밝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불안과 절박한 상황을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 섬에서 잘 지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엄마에게 살갑게 구는 법을 몰랐기에 서로 안부를 대충 확인한 후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혹시라도 힘들거나 서러우면… 짐 싸서 돌아와. 엄마 여기 있어.”
전화를 끊고 나서, 카지노 게임 추천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알게 모르게 그녀가 이 섬에서 언제든 내쳐질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이방인이자 외국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한 순간,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사회적 지위나 성공과 관계없이,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딸의 불안한 방황을 늘 인내심 있게,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을 비로소 알 것 같아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어 도망쳤는데, 정작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것에 서럽고 화가 나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내던 그 모순적인 마음과, 그런 자신을 변명할 수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자신의 비겁함과 부끄러움이 싫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문득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카지노 게임 추천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 아래, 섬의 이방인으로, 시스템 속의 작은 존재로, 그리고 한 사람의 딸로, 한참 동안 홀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