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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y 04. 2025

1-9 한빛, 카지노 쿠폰 첫 불꽃

고전을 읽는 시간

에녹은 목사님과 교인들의 후원으로 지역 명문 사립학교인 한빛고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독특하게도 시카고 대학의 고전 독서 프로그램을 교육 철학의 중심에 두고 있었다. 교사들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 전통과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생각하는 인간’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입학과 동시에 에녹은 동서양의 인문 고전 수십 권을 읽고, 매주 열린 세미나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이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즈음 에녹은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기도와 찬양, 목사의 설교는 이제 그의 영혼에 닿지 않았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고전이 던지는 낯설고도 치명적인 질문들, 곧 인간과 진리, 윤리와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들이었다. 그는 마치 한밤중 들불처럼 타오르는 사유의 열병에 휩싸인 듯, 새벽까지 고전을 탐독하며 낯선 세계를 건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에녹의 세계를 전복시킨 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고1 겨울, 도서관 구석에서 그는 이 두꺼운 책을 펼쳐들고 무너졌다. 이성은 세계를 단순히 반영하는 수동적 창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창조적 틀이며, 신은 이성의 바깥에서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통찰은 그의 신앙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절대적 진리 대신, 인간 내부에서 솟아나는 이성의 형식과 경험의 조건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는 관점은, 에녹에게 ‘신 중심’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의 비약을 가능하게 카지노 쿠폰.


그는 이후 니체의 철학에 깊이 매혹되었다. 『우상의 황혼』과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니체는 기독교를 ‘노예 도덕’의 온상이라 비판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 곧 **초인(Übermensch)**의 도래를 역설카지노 쿠폰. 에녹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배운 인내와 순종, 절제와 복종이 실은 노예 도덕의 사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는 니체의 언어로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카지노 쿠폰.


특히 『도덕의 계보』에서 제시된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의 구분은 그에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외부의 가치에 종속된 채 살아왔는지를 직시하며, 처음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을 가슴 깊이 새겼다. 동시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그는 **‘영원회귀’**라는 무시무시한 카지노 쿠폰 심연과 맞닥뜨렸다. “이 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너는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 — 이 질문은 에녹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그 물음 앞에 매일 무릎 꿇었고, 아직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빛고는 에녹에게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이 첫 불꽃을 지핀 장소, 신을 의심하고 인간을 다시 발견하게 된 운명의 무대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 소년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배운 구원의 공식은 더 이상 그의 삶을 설명하지 못했다. 에녹은 자기만의 신을 찾아야 했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자기만의 진실로 존재해야 했다.


그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고, 말은 줄어들었으며, 카지노 쿠폰는 점점 고독해졌다. 그러나 그 고독은 슬픔이 아니라, 탄생의 고통이었다. 그는 태어나고 있었다. 누구의 뜻도 아닌, 자신의 존재로부터.


그 즈음, 에녹은 학교의 고전 인문 독서 동아리인 ‘연필로 명상하기’에 가입했다. 이 동아리는 매주 한 권의 고전을 정해 함께 읽고, 글을 쓰고, 사유를 나누는 느슨하지만 깊이 있는 공동체였다. 동아리의 지도 교사는 철학과 문학을 넘나드는 깊은 교양을 지닌 인물이었고, 학생들에게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성』**이었다. 에녹은 처음 몇 장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 속에서 막막함을 느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사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계, 닿을 수 없는 권력의 심연, 그리고 그 앞에서 무력하게 방황하는 개인의 형상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카지노 쿠폰. 주인공 ‘K’는 성에 도달하려 애쓰지만, 끝내 거기 도달하지 못한다. 에녹은 그것이 곧 신의 침묵, 존재의 부재, 혹은 진리의 부조리함을 상징하는 듯 느껴졌다.


이어 읽은 『변신』은 그에게 더 직접적인 충격이었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 가족은 그를 두려워하고 외면하며, 결국 그가 죽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에녹은 ‘변신’이 단지 환상적인 소설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가 규정되는 인간의 본질적 고립을 드러낸 실존적 고백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잠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정상'과 '순응'이라는 기준에 맞춰 살아야 했던 또 하나의 그레고르.


이 동아리에서 그는 사르트르, 까뮈,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처음 접했고, 그들의 책은 그에게 세상의 논리 바깥에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창이 되어주었다. 특히 까뮈의 『시지프 신화』는 그에게 어떤 환멸과도 같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돌을 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돌을 끌어안으며 웃을 수 있어야 한다.” — 그는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고, 매일 아침 교실에서 읽곤 카지노 쿠폰.


이후 에녹은 혼자서도 카프카의 단편들과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독파하기 시작카지노 쿠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 복잡한 용어들 앞에서 그는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심연과 맞닿는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주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관통해 나가는 무언의 투쟁에 가까웠다.


‘연필로 명상하기’는 그에게 단순한 지적 탐구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침묵과 맞서는 방식이었고, 동시에 자신 안의 고독과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 최초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카지노 쿠폰 타인의 목소리 없이 생각하고, 존재를 묻고, 살아 있는 언어로 자신을 쓰는 법을 배워갔다.


‘연필로 명상하기’에는 독서와 사유뿐 아니라, 매년 가을이면 전통처럼 이어지는 또 하나의 의식이 있었다. 바로 고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재학생 대상 연극 공연이었다. 연극은 단순한 발표나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고전을 단지 읽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살아내는 과정, 즉 사유를 육화하는 예술적 의례였다.


그 해 가을, 동아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공연작으로 선정카지노 쿠폰. 에녹은 처음에는 무대 뒤 기술 담당으로 참여했지만, 배우의 공백으로 인해 뜻밖에도 오이디푸스 역할의 대타로 지목되었다. 그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동아리 선배의 한 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오이디푸스는 신에게서 진실을 도망치지 않아. 네가 지금 찾고 있는 것도, 결국 그 진실 아니야?”


대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에녹은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운명을 하나씩 해독하는 듯한 체험을 카지노 쿠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오이디푸스. 그의 죄는 무지 속에서 행해졌지만, 그 죄는 신탁 속에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에녹은 연습을 거듭할수록 오이디푸스가 단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찾던 진실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는 거울 앞에서 이 대사를 수십 번 반복했고, 진실을 향한 욕망이 곧 파멸로 이어지는 서사의 구조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는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신화의 상징과 구조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을 거듭카지노 쿠폰. 그리고 자연스레,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오이디푸스 왕』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의 근거가 된 작품이었다. 카지노 쿠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 입문 강의』를 구해 읽기 시작했고, 인간 무의식의 작동 방식과 욕망의 구조, 억압과 회귀라는 개념이 그에게 새로운 내면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그는 어느 일요일 늦은 밤, 혼자 교실에 남아 무대 위에 섰다. 조명이 꺼진 무대에서 홀로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독백을 읊조리며, 마치 신전 속 제사장처럼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비극은 단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이 끌려가는 내면의 여정, 즉 자신을 마주하는 길이라는 것을.


카지노 쿠폰에게 있어 『오이디푸스 왕』은 고대의 텍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연극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자기 탐색의 의식이자 고백이 되었다. 그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왜 신을 거부하고, 또 왜 신을 갈망하는지. 그리고 진실을 향한 욕망이 왜 곧 자신의 눈을 찌르게 되는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이후 에녹은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무의식에서 상징계와 실재계의 문제로 카지노 쿠폰를 확장해나가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체할 수 있는 심층적 인간 이해의 토대를 모색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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