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회사 밴드 동아리에서 첫 공연을 마치고 그날의 희열이 기분 좋게 남아있어 겨울 시즌도 등록했다. 여름 공연 때는 내가 노래를 부르는 곡도 많지 않고, 사람들이 친구들을 이렇게나 많이 초대할 줄 몰라서 나도 신이만 불렀는데 유일하게 그 점이 아쉬웠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겨울에 공연하면 꼭 초대할 테니 와달라고 했고 마침내 그 겨울이 왔다.
금요일 저녁 7시 신논현역 근처. 이 네 단어만 봐도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과 밤거리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기꺼이 친구들이 초대에 응해준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미팅을 마치고 저녁 5시쯤 회사에서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지하철은 벌써 퇴근인파로 붐볐다. 다들 일찍 마치시네. 패딩과 코트, 백팩과 핸드백 틈에 끼어서 휴대폰도 꺼내지 못하고 차렷 자세로 서있었다. 이번엔 기타가 없어서 다행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다들 리허설에 한창이었다. 악기를 세팅하고 무대 뒤쪽 음향실의 음향 감독님과 사운드 체크를 진행했다. 노래와 연주가 수준급이라 차례가 다가올수록 목이 바짝 말랐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자니 공연 때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살짝 축이는 정도로 조절했다. 리허설 무대에 올랐다. 잘 나가다가 도중에 음이 나가는 실수를 해버렸다. 갑자기 확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리허설 팀이 최종 체크에 접어들었고, 무대 앞 바닥에 의자가 깔렸다. 그때 공연장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하늘로 삐쭉 솟은 삐삐 양갈래 머리를 한 두 살배기 은우를 안고 청제오빠가 들어왔다. 캄캄한 지하 공연장에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두 부녀가 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은호와 민지의 행방을 물으니 바로 위 편의점에 있을 거라고 했다. 달려가보니 바나나를 고르는 은호가 보였다. 여름에 함께 울릉도에 다녀온 후 바로 스페인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거의 네 달만의 만남이었다. 멀리 경상남도 진주에서 차를 타고 달려온 친구 가족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손을 꼭 잡고 공연장으로 내려가니 막 무대가 시작할 참이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우리 팀이 바로 다음 순서여서 나는 대기실 근처에 서있었다. 관객석에서 음악을 듣기에는 너무 어려서 오빠가 안고 무대와 멀리 떨어진 출입구 쪽으로 갔고, 은호는 민지와 관객석 한가운데 앉아 음악 소리에 맞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쨍한 초록색 맨투맨을 입은 작고 귀여운 아기가 분명히 태어나서 처음 들었을 노래에도 박자를 타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기특하던지 무대보단 그 뒷모습에 눈이 가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내 유진과 석현 부부도 도착했다. 은호 민지 석현 유진이 나란히 앉아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
관객석 1열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를 들으며 무대에 올랐다. 분명 여름 공연과 사뭇 다른 느낌. 친구들이 보고 있으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편안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재밌게 봐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이 목소리는 떨렸지만 마음만은 차분하게 첫 곡을 시작했다. 겨울의 잔잔하고 따듯한 감성이 담겨있어 선곡한 데이먼스 이어의 Yours에 이어 두 번째 곡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인 자우림의 Stay with me였다. 평소처럼만 부르자고 다짐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친구들이 같이 즐겨주는 표정 하나하나가 다 선명하게 보여서 더욱 든든했다.
N-flying의 Flashback까지 부른 후 드디어 마지막 곡. 밴드의 묘미인 떼창을 할 수 있는 곡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서 멤버들과 고심한 끝에 선정한 플라워의 애정표현이었다. '널 만나 흔들리는 내 맘을 들킬까 두려웠었어'라는 가사가 있는데 마침 눈앞에 이 캄캄한 공연장에서 햇살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은호가 보여서 은호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같이 손 흔들어주고 노래 불러주는 친구들이 보여서, 동시에 반년 간 준비한 무대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후련해서 방방 뛰고 싶었지만 음정이 흔들릴 게 뻔했으므로 꾹 참고 끝까지 잘 마무리했다.
무대를 마치고 함께 무대를 준비한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공연장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퇴근하고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꽃다발까지 준비해 주었다. 공연장 앞에서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근처 칼국수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모두가 앞다투어 잘했다는 칭찬을 건네주었다. 내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던 은호는 흠칫흠칫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모 너무너무 멋있어!'라며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이내 '이모 너무너무 사랑해'라는 고백까지 연달아 퍼부었다.
순간 이런 순수한 칭찬과 진심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일까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잘한다. 잘 어울린다. 멋지다. 상대로부터 종종 이런 칭찬을 들으면서, 물론 그것 역시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건넨 말일 수 있지만, 괜스레 '그냥 인사치레겠지만 기분 좋게 듣지 뭐.' 하며 그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지만 은호가 건넨 말은 단 하나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4살 아이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예쁨 그 자체로 느껴져서 한 치의 오차 없이 감동이 느껴졌다. 덕분에 나 역시도 어떤 계산과 의심 한 톨 없이 '고마워, 사랑해.'라고 답할 수 있었다.
식당에 도착해 만두와 칼국수 등등을 시켜놓고 자리에 앉으니 은우와 은호 남매는 인생 첫 밴드 공연에 꽤나 흥이 올랐는지 그 자리에 가만있지를 못하고 앞다퉈 재롱 대결을 펼쳤다. '오빠는 멋지게 앉아있어야지.'라고 하자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은호는 내 옆의 자기 자리로 살포시 돌아오더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무슨 노래?'하고 물어보니 '오 마이달링~'이라고 답했다. 마지막 곡인 애정표현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오 마이 달링 마이 달링 널 품에 안으며~' 후렴구를 불러줬더니 애꿎은 다리를 꼬면서도 가사를 따라 불렀다. '은호야 노래 너무 잘하는데?' 놀라워했더니 쑥스러웠는지 의자 뒤로 슥 숨어버렸다가 다시 훅 튀어나와서 '한번 더!'를 외쳤다. 다시 불러줬더니 다시 따라 하는데 어쩐지 발음이 이상했다. 귀를 가까이 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오 마이 달님 마이 달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달링이 달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꿔도 이상할 게 하나 없거니와 어쩐지 이 아름다운 밤과 더 잘 어울리는 가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단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만났다. 주말이면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일어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해와 함께 기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침부터 실내 놀이터에서 걷고 뛰고 구르기를 몇 시간을 하다가 밥을 먹고 수원화성으로 갔다. 은호에게 화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 그대로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날씨여서 일단 근처 카페로 피신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영이와 이제 태어난 지 6개월이 된 도아 공주도 왔다. 자는 아기는 따뜻한 유모차에서 재우고, 이제 막 깬 아기는 유모차 밖으로 꺼내 꺄르르 까꿍 하며 놀아주고, 혼자 뛰어놀 수 있는 아기는 과일 맞추기 퀴즈로 놀아주면서 틈틈이 우리 얘기도 하다가 육아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래도 화성은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걸어가는데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자 바람이 더 매서워졌다. 은호와 나는 화성 앞에 있던 편의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엄마들은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오기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바로 편의점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화성에 올라가 보았다. 성벽에 뚫린 구멍이 뭐냐고 물었다. 옛날에는 이 구멍에 대포를 넣어서 괴물들을 다 죽였어. 괴물들은 지금 어딨어? 지금은 다 도망갔지. 왜 도망갔어?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괴물들을 물리쳤으니까. 그 사람들은 안 무서웠대? 무서워도 가족이랑 친구들을 지켜야 하니까 다 같이 손을 잡고 대포를 쐈지.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은호가 갑자기 말을 잃었다. 은호야 왜? 물어보니 너무 춥다고 해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더니 과자가 먹고 싶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모가 사 줄 테니 골라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기 상반신보다 조금 작은 감자깡을 고르면서 엄마에겐 비밀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알았어 그럼 엄마 몰래 먹자.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카지노 게임 사이트. 계산을 하고 화성뷰가 일품인 통창 앞 식탁에 앉았다. 과자를 나눠먹고 있는데 은호가 영상을 보여달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무슨 영상? 하고 물었더니 어제 내 무대 영상이었다.
은호는 내 휴대폰을 아예 빼앗아 가더니 유진이가 찍어준 영상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가 휴대폰 액정으로 후드득 떨어질 것 같았다. 음정이 틀린 곳은 없는지, 무대 매너가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이 친구가 뭐라도 될 상인지 통찰해 보려는 흡사 잘 나가는 프로듀서처럼 보였다. 감자깡을 집어 먹던 손길도 멈춘 채 집중하고 있길래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 남겨두고 대신 감자깡을 먹고 있었다. 잘 보고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정말 머리통이 휴대폰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뭐야? 하고 보니 그새 졸고 있었다. 소리도 못 내고 꺼이꺼이 웃고 있는데 민지 차가 도착카지노 게임 사이트. 뒤에 차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은호를 깨워봤지만 그 찰나에 어찌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감자깡과 가방과 은호 패딩과 은호를 들쳐 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민지가 은호를 받아 겨우 차에 태웠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은호가 다시 깼다. 운전 중인 엄마에게 이모랑 감자깡을 먹었다고 바로 자랑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가 조수석에 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은호 때문에 은우 카시트와 은호 카시트 사이에 끼여 앉아 고개를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며 한참을 아기들과 떠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동 하게 튀어나온 배를 밀면서 온 거실을 쏘다니다가 겨우 걸음마를 떼서 이모들에게 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제는 온 마을이 자기 땅인 양 휘젓고 다니고 날아가는 새를 손으로 가리키며 '째째'라고 부르고,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문장을 하루종일 구사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자기 옆에 계속 앉으라고 하는 날이, 카시트 속으로 겨우 눈만 가리면서 자기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는 날이 금방 지나가겠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아이들을 보고 있어도 그리웠다.
쫑알쫑알 말소리가 끊이지 않던 드라이브를 마치고 집에 도착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른 7명과 아이 3명이 지영이 집 거실에 모여 바글바글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제 도아와 은우, 은호까지 아이들 셋이 모이니 침묵이 허용될 여유가 없다. 소란 속에서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어른들은 때로는 아이들보다 더 신나보이기까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이들 밥 챙기랴 목욕시키랴 재우랴 아직 해치울 일들이 많이 남은 저녁이지만 불행 따위가 끼어들 틈 없이 가득 행복한 밤. 오마이달님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