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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Feb 27. 2025

32 내가 누구게?

찢어진 심장. 다가오는 위기!

지훈과 연주는 무대의 주인공 같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친구들은 마치 연극을 마치고 떠난 주인공들이 커튼콜을 위해 무대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처럼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는 소리가 있었다.
챙! 소리와 함께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구석에서 카지노 쿠폰이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소주잔을 내려놓고 다시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다.


그제야 친구들은 제각기 하고 싶은 말들을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아무도 몰랐다 카지노 쿠폰이 소주잔을 비우는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소주가 이렇게나 달구나…. 단맛밖에 안 난다. 얼마나 마시면 정신을 놓을 수 있을까? 언제쯤 내 머릿속에서 신지훈이라는 놈이 잠시라도 사라질 수 있을까? 제발 나가줘라 제발.’


그렇게 수련은 아무 말 없이 비워진 잔을 채우고 또 채우면서 지훈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려 노력했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경고도 자기 안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다 필요 없었다. 온통 그의 생각뿐이다 지금 그를 떨어낼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괴물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만큼 아팠다.

그러나 호프집 문을 나서자마자 지훈과 연주는 서로 엎치락뒤치락 엉켜 격정적인 스킨십 중이다.


연주가 벽에 붙어 긴 다리를 들어 올려 지훈의 하체를 휘감아 당기자, 그녀의 아찔한 미니스커트가 말려 올라가고 요란한 팔찌들이 찰랑거리는 두 팔은 지훈의 목덜미를 감싸 깊이 끌어안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지훈의 입술에 포개지는 연주의 입술.
고작 호프집 계단에서 펼쳐지는 장면치고는 너무도 격렬하고 치명적인 순간이라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찍었다면 이 장면은 무조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그들의 뜨거운 숨결이 맞닿기 바로 직전.


지훈은 거침없이 한 손으론 목에 감긴 연주의 두 팔을 떼어 잡고 한 손으론 연주의 턱을 움켜쥐었다.

연주가 뻐끔거리는 입술 사이로 헐떡거리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끈적하게 물었다.


! 너 이런 쪽이야? 거칠게 하고 싶어?.”


그를 삼켜버릴 듯 강렬하게 치켜뜬 커다란 눈은 몹시도 그를 원하고 있다.
그러자 지훈이 커다란 손에 잡힌 그녀의 두 팔과 얼굴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아!야! 너 뭐 하자는 거야? 이거 안 놔? 너 계약 잊었어?.”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악다구니를 쓰는 연주의 귓가에 지훈은 분노를 꿀꺽 집어삼킨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 가라앉은 분노를 담아 물었다.


“계약은 네가 잊은 거 같은데,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말을 마친 지훈이 그녀의 얼굴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제야 독기 어린 눈을 풀고 연주가 말한다.


“알았어! 일단 이거 놔! 놔, 놓으라고. 애들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나가서 얘기해.”


***
냉랭한 분위기의 지훈의 차 안.

둘 다 차 앞유리가 뚫어져라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먼저 연주가 입을 연다.


“어이가 없는 건 나거든. 겨우 받아준 거 아니었어?

내 맘? 제대로 시작하는 거 아니었냐고?.”


“뭐라는 거야? 나는 네가 왜 거기 있냐고 물었어.”


지훈의 너무나 차갑고 따가운 말투에 흠칫했던 연주였지만 다시 도끼눈을 뜨며 묻는다.


“아까는 뭔데? 애들 앞에서 아니, 수련이 앞에서 나 차려입은 거 까지, 칭찬하면서 애인처럼 굴었잖아, 그건 뭔데?.”


“내가 언제?.”


속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1초도 고민 없이 앞만 보며 대꾸하는 그를보고당혹스러움에 순간 머릿속을 헤집어더듬거리며 겨우 입을 여는 연주.


“아까, 다 보는 데서 나더러 충분히 예쁘다고 했잖아. 내 허리까지 안고 손도 잡고, 처음이잖아. 그런 거. 나한텐 다 처음이었다고 네 칭찬도 네 스킨십도!”


그런 연주의 증언을 구둣발로 짓이기듯 바삭바삭 부숴주는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게 받아쳐 내는 지훈의 대답.


충분하다고는했다. 너 지금 충분히 요란하게 차려입었어. 아니야? 허리? 말도 안 돼. 네가 잡은 손 뿌리치느라 네 등 떠민거야.그것도 손가락 두개로! 소름끼치도록 정확히닿은 건 정확히 일곱 번째 등뼈였어. 손? 잡긴 했어. 너 데리고 나와야 했으니까. 여기까지! 네가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어?.”


연주의 얼굴이 시뻘겋다 못해 터질 지경이 되었다. 긴 손톱으로 뭐라도 박박 긁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이제 공식적으로 커플이야 나 기사도 낼 거라고 했지? 남자 친구가 그 정도 표현도 못 해? 이건 계약위반이지.”


연주도 지지 않았고 지훈도 질 생각이 없었다.


“계약? 내가 많은 거 바랬어? 카지노 쿠폰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지? 그날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지? 카지노 쿠폰이도 카지노 쿠폰이 아버지처럼 만들 셈이야? 얼마나 더 괴롭혀야겠어? 어? 그만 좀 하라고! 네 말대로 다 하고 있잖아. 다!전화한통 도 마음대로 못했어.근데 버젓이 수련이앞에 나타나?


차분하고 냉정했던 지훈도 가슴속에 뭉쳐있던 응어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애꿎은 핸들을 부술 듯 두드리며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지훈의 반응을 보고 오히려 시뻘겠던 얼굴에 찬물이라도 부은 듯 금세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 입술을 꿈틀대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틀어막는 연주였다. 보고 싶었던 장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얼굴이었다.


“너! 카지노 쿠폰이 집에서 자고 온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래서 갔어. 너 한데 경고하는 거야. 못해서 안 하는 거 아니라고. 때마침 고맙게도 카지노 쿠폰이가 이런 무대를 열어줄 줄이야. 보미나 너나 나를 너무 하수로 본다. 너희들은 내 손바닥 안에 있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미와 지훈은 오래전에 만나 이 일을 의논한 적이 있었고 이제 와 굳이 그때 일을 꺼내고 싶은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딱 한 사람 연주 빼고.


연주는 지훈에게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고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 지훈을 갖는 것뿐이었다. 카지노 쿠폰을 사랑하고 있다는 지훈의 한결같은 거절에 연주의 병이 도졌다. 악화됐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언제나 일등이었고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졌던 그녀가 어린 시절 첫사랑 지훈을 카지노 쿠폰에게 빼앗겼다고 착각했다.


지훈이 죄책감에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다고 연주는 착각하고 있었다.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다고, 무엇하나 카지노 쿠폰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지금도..

착각이 매우 지나친 망상장애. 즉 정신병이다.

연주야 말로 진정한 미친년이다.

“뭐 하고 있어? 나 안 바래다줘? 설마 여기서 수련이 기다릴 생각은 아니지? 수련이 한테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할 건데? 우리 공식적으로 커플인 거 수련이 한테도 예외는 아니야. 아니! 수련이 만큼은 절대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아야 해.”


“....”


“왜? 그것도 못해? 그럼 그냥 다 없었던 걸로 해. 그때로 돌아가! 20년 전으로 돌아가라고! 내가 돌려놔 주겠다니까!.”


쉼표하나 허투루 내보내지 않고 아득아득 씹어 뱉어내는 그녀의 말들이 지훈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그저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는 맹수같이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었다. 지훈은 속절없이 목덜미를 내어주고 겨우 숨만 붙어 쌕쌕거린다. 그런 그를 아프게 잠시 바라보다 다시 독기 어린 눈으로 다짐하듯 혼잣말하는 연주.
“그거면 돼.”

연주를 집 앞에 내려주고 지훈은 곧장 차를 몰고 다시 카지노 쿠폰이 있었던 장소로 가고 있다. 그러다 연주의 말들이 떠올라 카지노 쿠폰의 집으로 차를 돌린다.
만나면 뭐라 말할 것인가,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래도 지훈은 카지노 쿠폰을 기다리고 카지노 쿠폰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다.


그때 그들을 잊은 친구들이 카지노 쿠폰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지만, 카지노 쿠폰은 아무 소리도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훈의 전화가 계속 울리자, 카지노 쿠폰은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연수라는 남자 친구가 카지노 쿠폰의 소주병을 움켜쥐고 말한다.


“수련아, 왜 이렇게 많이 마셔? 괜찮겠어? 정말 걱정돼서 그래.”

그제야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연수를 본다. 지훈이 아니다.


“쫄보가 정말 갔나 보네. 이렇게 남자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은 거 보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카지노 쿠폰이 혼자 키득거리며 웃다가 청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옥가락지를 꺼낸다.


“응. 정말 괜찮아 정신줄만 잘 잡고 있으면 돼. 내가 놔도 이게 있으면...”


빙글거리며 반지를 바라보던 카지노 쿠폰이 말끝에 얼굴을 구기며 반지를 부서져라 손에 움켜쥐고 던져 버리려다 울먹거리며 부들거리는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싼다.
카지노 쿠폰이 울음을 터뜨리자, 친구들은 당황하고 그렇게 술자리는 조용히 마무리되어간다.

카지노 쿠폰의 집 앞에서 카지노 쿠폰을 기다린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카지노 쿠폰의 전화기는 꺼져있고 지훈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넥타이를 풀고 목걸이의 걸린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들어올 입구만 바라보고 있다.


“술 많이 마시면 안 되는데, 그래도 오늘은 반지를 가지고 나갔을 테니까.”


그때, 택시에서 내려 땅만 보며 터덜터덜 걸어오는 수련을 봤다. 생각할 틈도 없이 지훈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미 그는 수련을 붙들고 있었다.


“김수련 괜찮아?.”


어쩌면 집 앞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다. 수련은 집에 오는 내내 전원을 켜지 않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집 앞에 있어 달라고. 할 말이 있지 않냐고. 변명해야 하지 않냐고, 싹싹 빌라고 말하고 싶었다. 마침 등장한 지훈이 미치도록 반가웠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 있다고 내 사람이라고. 다시 믿고 싶었다.


그래도 말은 곱게 나가지 않았다.


“아이씨 너 뭐야? 연주랑 같이 나가더니 왜 전화질이고 남의 집 앞엔 왜 서 있어? 스토커야? 나 신고한다?.”


카지노 쿠폰의 어깨를 붙들고 허리를 숙여 카지노 쿠폰의 얼굴과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지훈의 짙은 눈망울엔 거짓 없는 간절한 애정과 걱정이 담겨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카지노 쿠폰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카지노 쿠폰은 있는 힘껏 지훈을 밀쳐내려고 해 봤지만 단단한 지훈의 팔 안에서 나풀거리다 결국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 지훈이 카지노 쿠폰을 바스러지도록 끌어안고 겨우 짜낸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


잠시 카지노 쿠폰은 반항도 멈추고 그의 말을 가슴으로 들었다. 힘없이 두 팔을 늘어뜨리고 그가 전하는 말을 온몸으로 전해 들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들어야 할 말이 많았는데…. 벌써 다 들어버렸네.”


아팠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을 슥슥 그어대고 있는 거 같았다. 쓰라렸다. 찢어진 심장을 타고 내린 뜨거운 눈물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찢어진 심장에 상처가 벌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누구의 심장일까?


지훈이 카지노 쿠폰을 놓아주었을 때는 자신의 가슴팍이 뜨거워졌다고 느껴서였다. 카지노 쿠폰의 눈물로 지훈의 가슴팍이 흠뻑 젖었다.


눈물범벅인 카지노 쿠폰의 하얀 얼굴이 더없이 처량하고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말없이 바라만 보다 그만 카지노 쿠폰을 놓쳐 버렸다. 상처받은 작은 새는 있는 힘껏 날갯짓하여 도망가 버렸다.


지훈은 허공에 멈춰 선 조각상처럼, 한 손으로 심장을 틀어쥔 채, 다른 손으로 간신히 무너지는 몸을 버텼다. 어깨는 들썩였고, 숨조차 거칠게 갈라졌다.


“아.. 아파. 심장이…. 찢어지고 쪼개지는 거 같아. ! 너무 아파..”
지훈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
카지노 쿠폰은 오늘 일생에 처음으로! 기억이 존재하는 날 가운데 처음으로! 양치하지 않고 침실로 바로 들어간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무리 취했어도 샤워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자는 것은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만 하는 그녀의 불변의 법칙이었다.

큰일이다. 그녀에게 매우 큰일이 일어날 것을 이러한 이변이 앞서 일러준다.


비틀대며 침실로 들어선 그녀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어 화장대 위에 거칠게 내려놓고 침대 위에 풀썩 엎어졌다.

“몰라.. 정신줄 놔버려. 몰라 저딴거 이제 필요 없어.”

벗어놓은 스타킹처럼 흐물거리며 늘어져 있던 카지노 쿠폰은 어느새 관속에 들어간 시체처럼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자고 있었다.


번쩍!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카지노 쿠폰의 안광이 전등처럼 번쩍 켜졌다.
그리고 곧 전원이 들어간 기계인형처럼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녀를 스치는 화장대 위에 에메랄드빛 옥가락지가 처량하게 흐느끼듯 바들거리며 그녀를 부르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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