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길, 삶의 균형이라는 자전거
<잘 넘어지는 것이,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
"조심해~!. 멈춰야지...? 잠깐! 브레이크!, 거봐~~~ 그러니까 넘어지잖아..."
빨간색 자전거를 처음 사준 날, 딸아이는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를 타면서도 자주 넘어졌어요. 보도블록 턱을 지나다가, 오르막길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넘어지기 일쑤였어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뒤를 졸졸 따르며 제가 외치는 소리를 전화 너머로 듣고 있던 해외에서 지내던 친구가 하는 한 마디 소리에 잠시 생각도, 잔소리도, 발걸음도 멈춰 서고 말았답니다.
'야... 넘어지지 않을 순 없어,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잘 배우다 보면 자전거를 잘 타게 되는 거 아니냐?'
삼십 대 중후반의 제게 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욕심껏 속도를 내고, 물건과 사람을 싣고도 넘어지지 않으려 잔뜩 힘주고 살아가던 저는 네발 자전거로도 툭하면 넘어지는 일곱 살 딸과 닮았던 거죠. 우린 모두 자전거를 탄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네요. 80을 훌쩍 넘긴 부모님은 아직도 왼쪽 사진 속의 아이를 바라보던 제 마음처럼 조마조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이중적입니다. 잘 타기 위해서는 잘 넘어져야 하는데 둘 중 하나만 해주길 바라는 거죠. 스스로에게도 그래왔을지도 모릅니다. 온 세상이 휘청입니다. 한번 크게 넘어지려다가 기어코 국민과 헌법의 힘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봄, 오랜만에 다시 자판을 두드려 꺼내는 오늘의 이야기베개는 '자전거'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신체의 확장이기도 하고 속도와 편의성도 좋고 무엇보다 균형이라는 인간의 능력과 재미를 가장 잘 구현하는 놀이기구이기도 하니까요. 아... 자전거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여덟 살 시절이 떠오르네요. 눈물과 웃음의 자전거 이야기... 오늘도 대화 상대는 똥강아지 1,2입니다.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 자전거?
이봐 똥강아지 1,2... 너네 요즘 자전거 정말 신나게 타고 다니더라, 걸어가도 3분밖에 안 걸리는 집 앞 편의점도 꼭 자전거를 타고 가야 되냐? 그리고 헬멧 쓰고, 안전등 불 켜고, 무조건 횡단보도나 차 보면 멈추고... 또... 여하튼! 자전거가 그렇게 좋냐?
똥강아지 2. 응! 당연하지~! 자전거가 훨씬 빠르고 편하니까~ 재밌고!
똥강이지 1. 음... 내 자전거엔 바구니가 있어서~ 물건 담아 오기 편해~
그래 인간이 처음 자전거를 만들어서 탄 다음에도 아마 너희들과 같은 말을 했겠지?... 그래서 말인데 최초의 자전거는 페달과 체인이 없었어~ 흐흐... 그렇다면 과연 자전거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외계인, 초능력 등장 금지!
똥강아지 1,2 그냥 킥보드처럼 발로 땅을 박차고 갔겠지... 왠 초능력?
아... 이젠 다 컸네 재미없게... 여하튼 너희들도 가끔 그렇게 타니까... 말이야 아빠도 몸집보다 큰 어른 짐자전거라고 불리던 화물운반용 자전거를 탈 땐 한쪽 발을 페달에 올리고 다른 발로 땅을 구르다가 휙 뛰어올라서 자전거를 탔어... 여하튼 자전거를 만든 사람은 정말 대단한 것 같지? 230년 정도 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셀레리페르가 최초의 자전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 언뜻 보면 아빠 어릴 적 타던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퀴 달린 목마 같은 모습이기도 해... 여하튼 인간들은 열광했지~ 오늘날 자전거가 만들어진 시초로 볼만해... 단점은 방향을 못 바꾼다는 거랑 브레이크가 없다는 거지...
똥강아지 1,2 내리막길에선 천국행 특급열차네!
최신 브레이크와 기어가 달린 너네 자전거로도 내리막길은 조심해야지!!! 알았니? 아...아빠의 잔소리는 멈추질 않는구나... 미안! 여하튼 이렇게 재밌는 자전거지만 균형을 잘 잡지 않으면 넘어지고 말아 그래서 너희들이나 누나가 아주 어릴 때 타던 '네발 자전거'가 있고 또 아빠가 어릴 때 타던 심지어 2인승이었던 '세발자전거'도 있지... 아! 아빠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알지? 아침엔 네발, 점심엔 두발, 저녁엔 세발로 걷는 것은?... 그거 처음 들었을 때 '정답! 자전거!' 그랬다?
똥강아지 1,2 어? 우리는 버미(유기묘 출신 우리 집 야옹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침엔 느긋하게 네발로 걸어 다니고 우리 낮에 학교 갔다 오면 펄쩍 뛰면서 두 발로 놀고... 밤엔 자꾸 한 발을 떼고 고미(역시 유기견 출신 멍멍이)에게 냥펀치를 날리던데...?
어... 아... 그래 세상에... 정답이 어딨겠나. 암튼 자전거 이야기로 돌아오자 '피천득'이라는 분이 쓴 자전거 이야기 그림책이 있어 요즘은 '당근'을 통해서도 중고 자전거를 쉽게 구할 수도 있고... 또 조금만 무리하면 멋진 새 자전거를 살 수 있지만 예전엔 자전거가 귀했어, 그래서 아빠도 친구 아빠의 짐자전거를 그렇게 빌려서 타고 또 동네 형들이 타는 자전거 뒷자리에도 자주 얻어 타고 그랬지~ 재밌으니까. 자가용도 많지 않아서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멀리 이동하기도 했어.
똥강아지 2. 그러면... 그땐 자가용 대신 자전거가 많았겠네?
응 안장 앞에 아가가 앉는 자리 뒷좌석엔 엄마가 또 아가를 업고 아빠를 안고 타는 그런 모습도 흔했지... 아빠도 할아버지와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연못을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참 좋았어. 일곱 살 때였는데 할아버지 등을 꽉 잡고 자전거를 타고 갔던 날... 그게 자전거를 아빠의 아빠랑 타본 유일한 기억이었던 것 같아... 근데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 같이 생긴 곳에서 굴렀거든? 다치진 않았는데 기억이 없을 정도로 크게 굴렀고... 놀라서 허겁지겁 아빠를 챙겨보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네... 할아버지는 날렵하셨지만 이상하게도 '탈 것'을 운전하는 것엔 아주 별로였고 싫어하셨어 자동차 면허도 없었고 , 아무튼 그때 한 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피천득이란 분이 쓴 책에도 늘 뒷자리에서 자전거를 얻어 타던 주인공 남이와 친구 칠성이의 이야기야 아빠도 결국 동네 형이 심부름하며 타던 짐자전거를 탔던 기억처럼... 동화 속에서도 자전거 좋아하던 아이들의 꿈이 결국엔 조금씩 이뤄지는 이야기지
똥강아지 1. 헬맷은 썼어? 안 쓰고 막 탄 거 아냐?
어... 물론... 헬맷이 없었으니까... 못 썼어... 안 쓴 게 아니라. 암튼! 그래 꼭 써야지 헬맷은... 잔소리도 유전이구나... 응? 암튼 자전거는 신기해 둥글게 돌아가는 바퀴 덕분에 편하기도 빠르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균형을 잡는 일은 탈 줄 알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전엔 세상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니까... 너희들은 어떻게 한 두 번 만에 금방 자전거를 탔니? 아빠는 신기하더라? 아빠는 하루 종일 넘어지고 다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하닥 겨우 겨우 익혔거든...? 혼자 타다가 어디론가 날아가서 핸들에 명치를 찍혀서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던 날도 있었고... 아... 너희가 아빠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걸로!
똥강아지 2. 그래? 그냥... 몇 번 타니까 타지던데?
똥강이지 1. 응! 타는 건 가능... 좀 익숙해지는 건 시간이 걸리지...
그랬구나... 한 동안 자전거가 안 타질 때 그땐 젊었던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 본인도 자전거는 탈 줄 모르시고 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시면서... '그 자전거가 말이야...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넘어질 거 같으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그러면 된다~' 그렇게 알려주셨어. 맞는 말이지... 그런데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면 가운데 가만히 있는 것도 가능하고 말이야
똥강아지 1,2 어! 우리도 그랬어 넘어지려는 반대쪽으로 몸을 움직여서 균형을 잡으면 안 넘어지지~
그래 멈출 때 멈추고, 어느 한쪽으로 휙 안 쏠리고 규칙 잘 지키는 거... 자전거 타는 게 세상 사는 거랑 비슷하다~ 그렇지?
똥강아지 1,2 응! 그러니까 아빠도 늘 엄마 눈치만 보지 말고 우리 의견도 좀 들어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거 아냐? 아무리 엄마가 최고 권력자라도 말이야...
그렇지? 하하... 권력... 그래.. 그렇다!! 하하... 이 녀석들 민주시민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구나! 그래~ 넘어지지 않고 두 다리로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고... 그 자전거의 모습은 우리 민족이 힘들 때도 큰 희망이 되었어 자전거 영웅 '엄복동'이라는 분 덕분이지 일제 강점기에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해 한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줬지 그분도 부자나 자전거가 많은 분이 아니라 자전거 가게의 점원이었데...
똥강아지 1,2 자전거계의 손흥민이었구나... 아니 지드래곤이었나? BTS?
글... 쎄... 다? 비슷하지 뭐~ 넘어지지 않고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자전거는 정말 즐겁고 설레지만 결국 자전거는 안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자 자전거를 타는데 가장 중요한 건 뭘까? 한 명씩 말해보자
똥강아지 2. 균형? 권력?
똥강아지 1. 안전! 음... 가격대?
다 맞다. 이놈들... 아빠가 너희들 자전거라면 아주 능수능란하게 잘 타는구나 요놈들! 그래 안전도 가격도 그리고 균형도 중요해! 봄이니 늘 함께 타던 호수공원 코스 한 바퀴 재밌게 신나게 쌩쌩 돌고 오자~! 단 아빠의 안전지시는 잘 따라야 해 알았지?
똥강아지 1,2 응! 안전!
<말과 마음에도 균형이 필요하네요?
아빠 엄마가 말씀해 주시던 '보릿고개' 이야기처럼 자전거가 귀해서 '짐자전거'를 몰래 탄 꼬맹이의 이야기는 참 와닿기 어렵겠다... 싶었어요. 보릿고개 이야길 듣고 그럼 '라면'이라도 드시지 그랬어요?라고 했다는 이야기처럼... 자전거가 왜 귀했어?라고 하면 국민 실질 소득과 공산품 생산과 가격을 다 읊어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요즘 같은 봄날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셋이서 거리를 달릴 때 느끼는 마음은 묘하죠.
아이들은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 같다는 성취감과 성장의 느낌을 받을 거고... 저는 벌써 우리가 같이 자전거를 타고 공원 라면을 먹는구나...라고 시간의 마법을 느끼겠네요.
문득 묵묵히 대학 입시라는 위태로운 자전거를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타고 있는 언제나 가장 소중한 공주님 '큰 딸'이 생각납니다. 다시 그 녀석이 일곱 살이던 밤 동네 골목길로 눈을 감고 이동합니다. 그때 했던 말들을 주워 담고 이렇게 이야기해 봅니다.
"괜찮아!! 넘어져도 돼!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처음엔 어려워도 곧 잘 탈 거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늦은 밤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그 아이의 귓가에도 이 목소리가 들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