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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30. 2024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의 저질 체력 탈출기

“그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좀 해봐.”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우울증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라’는 말만큼 듣기 싫은 말이 없다는 걸. 우울증은 죽고 싶은 마음이다. 아니 서서히 죽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침대에 누워 세상과 단절된 채 그냥 서서히 죽고 싶은 이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는 없다. 게다가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즐거웠던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늘 너무나도 하기 싫은 숙제 같았다. 그것도 건강해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을 빼기 위해서 해야 하는 숙제. 20대 때 헬스를 하긴 했지만, 헬스가 재밌었던 적은 없다. 헬스로 몸이 건강해져서 삶의 활력을 느껴본 적도 없다. 오히려 헬스장은 나에게 자해의 공간이었다. 너무나도 보기 싫은 뚱뚱한 나를 마주해야 하는 공간. 그 보기 싫은 나를 마주하며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공간.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했는데도 여전히 뚱뚱하거나 아니면 다시 뚱뚱해진 나를 마주해야 하는 공간. 헬스장에 가면 화가 났다. 덤벨을 집어 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화를 집에 와서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먹으며 풀었다. 평생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지 않고 음식만 먹고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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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싫어할 만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살을 빼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아니면 ‘자기관리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의 맥락 속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그 두 가지 의미밖에 연결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전자는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다이어트로 처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시작하기에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감성이었을 테고, 후자는 내가 자기관리를 위해 사십여년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거르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감성이었을 테다. 다이어트와 자기관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기에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울할 때 누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라고 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던 이유도 그래서다. 사실 내가 우울증에 빠졌던 이유는 사랑받기 위해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하기 싫은 일(공부와 일)을 참고 견디며 해와서였다. 더 이상 참고 견디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나는 모든 것을 놔버린 채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라는 말이 비난이나 강요처럼 느껴졌을 수밖에. 그 말은 의무에 지쳐 퍼져버린 나에게 너 그렇게 퍼져 있으면 사랑받지 못할 테니 다시 다이어트와 자기관리(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하라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물론 그 당시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권했던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닫혀버린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형성된 채로 그저 ‘하기 싫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나는 대체 어떻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술자리에서 조금 더 오래 놀고 싶어서였다. 기적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좋았고 그들과 노는 게 재밌었다. 하루 종일 그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하고 밤이 되면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마시며 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딱 한 가지 문제만 빼고. 술자리가 세 시간이 넘어가면 어김 없이 허리가 아팠다.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집에 가기 싫어서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쌓여갈수록 마음 한구석에서 현타가 왔다. 기립근이 없어서 세 시간도 제대로 못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다섯 시간은 앉아 있을 수 있는 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관절에 고질적인 염증이 있어서 제대로 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할 수조차 없던 상태였다. 동네 수영장에 아쿠아로빅을 신청했다. 아쿠아로빅은 관절이 좋지 않은 할머니들이나 환자들을 위해 물 속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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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물속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제꼈다. 흡사 클럽을 방불케 하는 열기가 그곳에 있었다. 재미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걸 그때 처음 느껴보았던 것 같다. 아쿠아로빅은 몸에도 무리가 가지 않을뿐더러 심리적 장벽도 매우 낮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다. 당시 나는 몸도 마음도 잔뜩 위축되어 있던 상태라 누군가에게 내 뚱뚱한 몸이나 허우적대는 움직임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쿠아로빅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니 그런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두달 정도 즐겁게 아쿠아로빅을 다녔다. 어느 날 이 반에서 가장 젊은 분과 내가 스무살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고장난 내 몸을 어떻게든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문 PT를 시작했다. PT를 불러 집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했다. 첫 시간에 런지를 하는데 눈 앞이 새하얘지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PT가 집에 꿀이 어디 있냐고 묻더니 다급하게 꿀 한 스푼 퍼서 입에 넣어주었다. 당이 들어오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PT가 런지 한 세트를 못하는 건 체력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환자 수준이라고 말했다. 환자에서 정상인 범주로 들어가는 걸 일단 목표로 잡자고 했다. 한 번도 움직여보지 않은 몸을 움직이니 많은 저항이 뒤따랐다. 특히 근력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조금만 강도를 높혀서 하면 어김 없이 온몸에 열이 나면서 다음 날 몸살을 했다. 예전에는 그 구간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만두었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데 몸까지 아프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견뎌보기로 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시간은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했다. 꾹 참고 PT를 했다. 런지 삼 세트 할 수 있는 정상인이 될 때까지 5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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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정상인이 되었어도 PT 시간이 되면 일단 한숨부터 푹푹 나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좋아하고 싶었다. 평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너머 사랑하는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좋아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스승은 놀랍게도 지금 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해보라고 했다. 좋아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찾을 때까지 계속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바꿔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만두는 게 금기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그만두는 것은 포기나 태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었다. 스승은 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네게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무슨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든 일단 삼 개월은 해보고 재미없으면 그만두기로 했다. 필라테스와 요가를 했다. 각각 삼개월씩 했지만 둘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생각보다 정적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춤추는 사람들을 동경해왔기에 춤을 한번 춰보고 싶었다. 종목을 바꾸어가면서 다 춰봤다. 방송댄스, 라틴댄스, 스윙댄스, 폴댄스, 그리고 아프리카 전통춤까지 춰보고 알았다. 나는 몸의 모양을 디테일하게 다듬고 컨트롤하는 것에서 쾌감보다는 답답함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다음에는 클라이밍을 했다. 아버지가 암벽등반 하던 걸 어린 시절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밍은 재미있었지만 루트파인딩(돌의 모양과 위치를 보고 어떻게 등반할 것인지 전략을 짜는 것)이 싫었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는 데 머리 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이유로 주짓수도 삼 개월 하고 그만 두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기술들이 추가될수록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주짓수 도장을 오가며 보아왔던 크로스핏 체육관이 떠올랐다. 지하로 이어진 입구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지만 또 왠지 모르게 외면하고 싶었던 곳이다. 저곳에 내려가보고 싶지만, 결코 내려가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난 오랜 시간 크로스핏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 크로스핏을 알게 된 건 좋아하던 친구가 크로스핏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끔씩 나에게 기립근에 좋은 동작들을 알려주기도 했고, 자신이 드디어 머슬업(크로스핏에서 고난도 동작 중 하나)에 성공했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크로스핏 생각이 났다. 유튜브에서 크로스핏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하나 같이 몸 좋은 사람들이 어두운 체육관에서 웃통을 깐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무서워보였다. 내가 저 안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처음 크로스핏을 한 날 샤워를 하면서 토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SNS에 떠도는 각종 크로스핏 괴담들도 보았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 크로스핏에 대한 욕망을 외면한 채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부터 크로스핏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면서도 시선은 계속 크로스핏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짓수 도장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방향을 틀어 그 무서운 입구 아래로 내려갔다. “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환자 소리를 들을 정도의 저질 체력이었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등록을 했다. 첫 날이 되었다. 체육관에 가는데 무슨 전장에 나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비장했다. 크로스핏은 지금까지 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쉬는 시간이 아예 없었다. 정신 없이 몰아치다보면 50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재밌었다. 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 같은 게 느껴졌다. 힘겹게 무게를 들어올린 뒤 바벨을 바닥에 내던질 때의 쾌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며 소리를 악 질러대는 활력.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끝나고 땀에 쩔어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을 때의 소진된 느낌. 정말이지 크로스핏 같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나에게 맞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동적이고 폭발적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길어봤자 6개월을 했는데 크로스핏은 2년을 넘게 했다(그 다음엔 레슬링과 복싱처럼 더 동적이고 폭발적인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해방감이 좋아서 했다가 점점 몸 쓰는 것의 재미를 알아갔다. 그러다가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추석 연휴였다. 크로스핏 체육관이 4일을 쉰다고 했다. 그런데 3일을 넘어가자 불현 듯 ‘아,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고 싶은데 연휴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날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한 나의 감성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처음 인지한 날이었다. 그 전까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적어도 3일을 안하면) ‘하고 싶은 것’이 된 것이었다. 그 자각이 들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한 여유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늘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만두게 될까봐 두려웠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언제나 나에게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적어도 3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안 하면 나는 다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 믿음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한 두려움을 대폭 줄여주었다. 내 몸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시작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슬픔을 견딘 끝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나에게 ‘체력’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이제 더 이상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세 시간도 못 앉아 있는 추태를 보이진 않게 되었다. 오히려 충분히 놀고 나서 뒷정리까지 다 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또 무언가를 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 체력이 괜찮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등산이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같은 활동적인 일을 하자고 하면 체력이 딸릴까봐 일단 걱정부터 했다. 그런 나를 읽은 친구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보다 훨씬 정적인 일만 나에게 권유하거나 아예 활동적인 일은 나와 함께 (하고 싶은 데도 불구하고) 하려고 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친구들에게 무리하게 맞추면 결국 체력이 딸려 짐이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실제로 내 짐을 친구가 들어주었던 적도 있었고 체력이 떨어져 예민해지는 바람에 친구가 계속 내 눈치를 봐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크고 작은 민폐의 상황들이 체력이 좋아지면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내 짐을 내가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을 하든 등산을 하든 나에게 필요한 짐은 내가 스스로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체력은 나의 구원이 되어주었다. 이혼을 하고 짐을 빼는 날이었다. 나는 이미 별거 중이었고 원래 함께 살던 집에서 내 짐만 정리하여 빼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짐을 싸러 가는 날 남편은 집을 비워주었다. 반나절 만에 내 짐을 모두 싸서 현관에 쌓아두면 다음날 이삿짐 센터에서 짐을 옮겨주기로 했다. 짧지 않은 결혼 생활이었기에 짐도 적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가장 마음이 힘든 순간에 가장 빡세게 몸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아마 그때 체력이 없었으면 나는 금세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금세 자기연민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크로스핏을 한다고 생각했다.


양손에 짐을 하나씩 들고 거실에 옮길 때는 파머스 캐리(양손에 덤벨을 들고 이동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한다고 생각했다. 버릴 짐들을 큰 쓰레기 봉투에 담아 쓰레기수거함에 던질 때는 월볼샷(크고 무거운 공을 위로 높게 던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니 점점 땀이 나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즐겁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할만은 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열심히 몸을 쓰며 짐을 정리했다. 가져갈 짐들을 이사 박스에 담아 현관 한 구석에 쌓아두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쌓여있는 이사 박스들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 들었다. 힘들고 슬플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내 짐은 어찌 되었든 내가 잘 정리했다는 것에 대한 작은 뿌듯함이었다. 그날 체력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체력은 슬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약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마지막 저지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전 친구들이랑 한라산을 다녀왔다. 체력과 별개로 나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는 최대한 짐을 줄이려고 한다. 하루종일 매고 다녀도 어깨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줄여서 작은 배낭에 매고 다닌다. 그래야 나의 짐을 누가 대신 들어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체력과 별개로 나는 기력이 센 사람이 아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정력적으로 해낼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삶도 최대한 간결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해야 하는 일과 마음 써야하는 사람의 범위를 함부로 넓히지 않으려 하고 그 안에서도 우선순위를 잘 지키려고 한다. 그래야 삶에서도 배낭이 너무 무거워 주저앉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나를 구원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라산을 내려오는 길에 처음으로 느꼈다. 그날 사실 난 체력이 조금 남았었다. 그래서 눈에 들어왔을 테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방전된 얼굴로 숙소까지 운전을 하고 있던 한 친구의 모습이. 내가 운전을 잘했다면 그날 내가 대신 운전을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알았다. 체력이 남으면 내 짐을 내가 지는 것뿐만 아니라 너의 짐도 조금은 나눠 질 수 있겠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내 짐은 가볍게, 내 짐은 스스로. 그리고 남은 힘으로 조금이라도 너의 짐을 나눠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강건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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