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지노 게임아. 뭐 하니? 잘 지내?
문득 궁금해진 아이가 있었다. 길고 긴 겨울 방학. 모두가 겨울잠에 빠지는 그때, 평소에도 눈에 밟히던 카지노 게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담임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용기를 내었다. 혹시 답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하고 고민하는데 무색하게도 금세 답이 도착한다.
- 네. 쌤! 잘 지내요! 저 요새 복싱도 배워요.
휴- 정말 다행이다. 그제야 안심된다. 학년 초에 아이들과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기고선 쉽사리 회복하지 못했던 아이다. 남학생, 여학생 모두 하고도 잘 지내는 것이 어려워 학년 말엔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냈던 아이.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모두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 늘 제 자리에 혼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던 아이였다. 정연이는.
개인적인 삶도 힘든 아이였다. 1년 동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자꾸만 갔지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었다. 그런 카지노 게임가 잘 지내고 있다고 하니 한시름 놓은 기분. 방학 동안 움츠러들고만 있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복싱이라니! 몸을 움직이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또 상대에게 여러 번의 잽과 한 번의 어퍼컷을 날릴 수 있는 복싱을 배운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칭찬을 듬뿍 해주고 싶었다.
- 복싱 같은 거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좋지! 샘도 일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연락한 거야.
- 와!!
- 무튼 방학 잘 보내고 쉬어. 종종 글도 쓰고.
-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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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3년째 열네 살들만 가르치지만 언제나 그들의 세계는 어렵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있는 내게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소통방법은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녀석들에겐 전부인 그런 일, 우리에게는 사소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하나의 사건 때문에 카지노 게임는 학기 초부터 갈등을 겪었다.
아직도 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갈등이었다. 마음이 급했고, 실수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와의 관계가 어려웠던 것 같은 정연인 조금 욕심이 났던 것 같고, 지나친 부분도 있었다. 어른들의 세계라면 정연이의 사과를 받아주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을 텐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솔직하고 때로는 냉정했다.
3월 초에 시작된 사소한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정연이는 그 친구들에게 사과를 한 것 같으나 예전처럼 친해지긴 어려웠다. 한번 생긴 마음의 벽을 허물기 힘든 듯 보였다. 심지어 20명 중에 단 7명만 여학생인 상황. 짝수로 무리를 지으려는 여학생 특성상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지자 어느 곳에도 끼어 지낼 수가 없었다. 이미 아이들은 그룹을 지었고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었다. 정연이가 다가가면 스르륵 헤어지거나 대놓고 무시했다.
한 번은 모둠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제비 뽑기로 같은 모둠을 뽑는 중이었는데 어떤 아이가 카지노 게임와 같은 모둠이 되었다. 그것을 알자마자 교실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지 말아라, 그게 뭐 하는 짓이냐, 하며 더 큰소리를 내며 상황을 무마시켰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카지노 게임의 마음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국어 시간에 ‘멘토‧멘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꽤 공부를 하는 카지노 게임가 자연스럽게 멘토가 되었는데 카지노 게임의 멘티가 되어 두 달 동안 함께 활동을 해야 하는 아이 두 명이 대놓고 불만을 표현했다. 요점은 ‘싫다.’는 것이었다. 싫어요, 선생님, 그냥 저 혼자서 수업 들을래요. 한 번 정해진 것은 돌이킬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하는 모든 과정을 카지노 게임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말 내 마음에 사무쳤던,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그때는 학년 말이었고 학급비를 사용해 피자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20명의 아이들이 4명씩 삼삼오오 짝을 지어먹으면 그만이었다. 모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누군가가 소외될 수 있으니 챙겨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두 명, 혹은 여섯 명까지도 모여서 피자를 먹고 있는데 정연이만 혼자 교실 앞자리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물었다.
- 너 피자 안 좋아해?
그러니 정말 너무나 속상한 답이 흘러나온다.
- 아니요. 그런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안 먹으려고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정연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저들끼리 피자를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너희들 눈에는 혼자 앉아있는 이 아이가 보이지 않느냐, 고 혼을 내려다가 담임도 아니고 그들의 관계도 잘 모르는 내게 섣불리 그런 말들을 쏟아 냈다가 추후 더욱 불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말을 참았다. 피자를 먹고 싶지만 먹을 사람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이었다. 한 판을 다 가져다가 먹기도 그렇고 설령 그런다고 하더라도 피자 한 판을 들고 제 자리로 가는 순간,
“야. 너는 뭔데 피자 한 판을 다 가져가냐?”
라고 말 할 것이 분명한 학급. 싸우는 것 대신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불처럼 타올라 뜨겁든 따뜻하든 상대에게 존재를 알리는 방법 대신, 가만히 앉아 그림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택했다. 그러면 누구도 저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지 않을 것이므로.
순간 상대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녀석의 앞에 앉아 함께 나누어 먹어야겠다고. 비록 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너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옳은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내게는 최선이었다.
- 카지노 게임아! 쌤이랑 같이 먹자.
- 네?
- 야. 이 녀석아. 이거 학급비로 다 같이 나눠 먹는 거야. 이런 건 먹는 거야. 일단 먹고 생각해. 으~ 배고파.
-? (놀란 얼굴)
- 치즈? 불고기? 어떤 거 먹을래?
- (한참을 망설이다가 기어갈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저는... 치즈요...
정연이가 말한 피자 한 판을 손에 들고 학급 아이들에게 선전포고했다.
- 어이! 친구들! 이거 쌤이 먹을 건데 한 두 조각 먹는다! 내가 너네 부담임이고 국어쌤이고 학년부장쌤인데 이 정돈 먹어도 되지?
하니 그 누구도 말이 없다. 접시에 두 조각 담아 정연이 앞으로 이동해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피자를 말없이 먹으며 난, 그날 정연이가 다른 아이들이 피자를 먹는 동안 그린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한 정연이는 제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우 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여우 인간이 상대방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인데 만화로 구성하여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소재도 참신하고 구성력도 좋고, 무엇보다 그 힘든 시간을 스스로 견디고 있었던 것이 애틋하여 마구마구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2주 후에 방학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도 난, 교실 맨 앞에 앉아 홀로 그림 그리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다가 말을 걸어 주면 그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아 봇물 쏟아내듯이 말하던 모습까지도. 수업 시간이 끝나 쉬는 시간이 되면 홀로 앉아 있거나, 짐 정리를 하는 내 앞으로 찾아와 이런저런 말을 걸고 싶어 했던 카지노 게임. 하지만 어쩐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 때로는 무기력해 보이기도 했던 카지노 게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늘 한편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그 아이의 성격도 문제라고 말했다. 성격이 소심했고,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거칠 때가 있었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에 비해 어린 면도 보였다. 한창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보기엔 유치한 일들도 종종 했으니까. 마음속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내는 데도 미숙한 적이 많다. 들키지 말아야 할 감정을 부득불 종이에 적고 잃어버리고, 다른 친구들이 그것을 보고. 그러면서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되고.
맞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카지노 게임도 잘한 것은 없다. 감정적인 대응, 미숙한 표현 방법 등으로 관계를 그르친 경우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과연 카지노 게임만의 잘못일까. 카지노 게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그리고 그 아이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물 때면 밥을 먹다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져 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래서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게 되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가끔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적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나는 카지노 게임 살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아. 카지노 게임 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던, 어둡게 침전하며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 옛날의 나로.
사진: Unsplash의Bogdan Yukhymch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