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훈이는,
유심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카지노 게임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워낙 조용하고 얌전하기에 그 아이의 카지노 게임속에 있는 울렁임까지 알아 채기는 힘들 것이다. 나 역시, 어렵다. 섬세하게 감정을 느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훈이 같은 경우는 어렵다. 자기표현도 잘하지 않는 데다가 워낙 조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훈이의 카지노 게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지훈이처럼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훈이와 나의 과거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조용한 아이이기 때문에 겪을 일들 정도는 충분히 그릴 수 있다.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한 번 내는 적이 없던 나는, 항상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아이였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이란 사고를 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올 때뿐이었던 1990년대 학교를 다닌 나는, 더더욱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조용하니까, 차분하니까, 말을 잘 들으니까 말을 건넬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 여러 가지 고민과 번뇌가 있었지만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도 힘들다고 느끼지조차 않았다. 으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반짝반짝 빛나는 외향적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부럽다고 느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수차례 좌절했다. 소위 말하는 텐션을 끌어올려 밝은 척을 해봐도 태생이 진지하고 차분한 나는 그런 모습이 어색했다.
교사가 된 후에는
조용한 아이들이 더 눈에 밟혔다. 혹시 카지노 게임속에, 미처 꺼내지 못한 슬픔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쌓여가는데 운을 떼지 못해서, 그 카지노 게임에 짓눌려 삶을 버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카지노 게임에 부러 말을 걸고 친한 척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경계를 풀고 다가와 주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조언을 해주며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13년이 넘는다. 지훈이 역시 마찬가지로 카지노 게임이 쓰인 것이 사실이다. 제 자리에 앉아 책상 서랍 밑에 드로잉북을 숨기고 몰래몰래 그림을 그리는 지훈이. 지훈이에게 그림은 말로 전하지 못한 카지노 게임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임에 분명하니까. 그걸 막기 전에 카지노 게임을 나누고 싶었다.
결국 내 방법은 카지노 게임.
주말에 짬을 내어 지훈이에게 카지노 게임를 썼다. 몰래 전하고 나니 카지노 게임이 개운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내진 못했으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잘 정리했다. 어쩌면 나의 지레짐작일 수 있으나 시험이 다가오며 점점 힘들어 보이는 지훈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선생님이 보내는 조언이라면 와닿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따로 불러내어 카지노 게임를 건네니 적잖이 당황한다. 몰래 보라는 말을 끝으로 지훈이를 돌려보냈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지훈이와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서로를 대했다. 지훈이는 몰래몰래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런 지훈이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편하게 수업을 했다.
내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 지훈이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세상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카지노 게임이 드는 그 순간.
제 옷자락 끝이라도 잡고 힘을 주고 싶었던,
그 옛날 자기 모습이 생각나서 토닥토닥 격려해주고 싶었던,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교실에 앉아있는
말없이 조용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생각의 우물을 지닌
나의 학생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낮추지도
내면에 가두지도 말자고.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조금씩 밖으로 나오자고.
그래도 된다고.
조용하다는 것은, 사고 치지 않고 얌전해서 다루기 편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흐르고 넘쳐 그걸 고르고 고르는 중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안다고.
(추신: <지금 우리 학교는의 '조용한 아이의 딜레마 (2)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