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무겁던 그 카지노 게임에 부쳐
언젠가 한강 작가의 장편 하나를 읽었다고 하자,
그 작가의 필력은 초기 단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후배가 호기롭게 말했던 게 기억났다.
주말에 서점에서 작가의 단편집 ‘여수의 사랑’을 샀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93년에서 94년까지 쓰였다고, 띠지에 적혀있었다.
소설 내용들 사이로 문득문득 지독히도 무더웠던 94년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문장들이 튀어나왔다.
나도 고3 카지노 게임을 맞아 웃통을 벗고헐떡이며 문제집을 풀던 카지노 게임이 난다.
누군가는 그 카지노 게임날에 땀을 닦으며 자신의 소설을 써 내려갔구나,
한 걸음씩 불확실한 걸음을 딛었구나 생각하니,
같은 땅에서 조금은 가까이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문학이란 그저 가공의 일들이 아니고,
내 몸을 더듬어보면 발견할 수 있는 뭉친 응어리이고
내 머리를 뒤적여보면 나올 법한 공통의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깨닫게 된다.
94년 7월 초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나와 친구들은 수능을 안치러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헛된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지독한 카지노 게임이 찾아왔다.
7월 중반 이례적으로 짧은 장마가 끝나고,
기록적인 열대야가 시작되어 전국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 당시 에어컨은 사실 독서실이나 학교 독서실에나 설치되었고
학교 독서실에서는 그마저 저녁이 되면 꺼버리곤 했다.
1층 위에 마당이 있는 옛날 건물에 살던 우리 가족은 선풍기 여러 대를 놓고 앉아 헐떡이고 있었는데,
밤엔 오히려 집 안보다 마당이 선선했던 탓에,
나는학교 독서실에서 돌아오면 등목을 하고 마당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공부가 잘되진 않았다.
11월 수능을 앞두고 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했을 뿐이었다.
매일 새벽 두 개의 도시락을 담고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고,
학교에선 매주 두 권의 연습장을 가득 채워 제출하도록 했고,
자기 전에는 라디오에서 DJ의 목소리와 음악을 들었다.
주말엔 독서실 간다는 핑계로 나와 몰래 교회에 가곤 했다.
방학을 맞아도 갈 곳은 학교 독서실 뿐이었다.
우린 내신 석차대로 자리가 배정돼 있었고,
커다란 방 가장 안쪽 구석 자리부터 문과 1등과 이과 1등이 마주 보고 앉았다.
방 중간에서나와 마주 앉은 문과 녀석은 러닝 바람으로의자에 기대어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묘한 승리감과 패배감을 동시에 느꼈다.
밤 10시가 되어 학교 독서실이 문을 닫으면,
우리들은 우르르 교문으로 몰려나왔고
그 앞에는 과목당 100만 원을 호가한다는 학원차들이 석차 높은 친구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전쟁 같은 거 안 나는 거야?
누군가 말을 하면 우린 카지노 게임밤을 말없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