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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an 17. 2025

농민

25년 1월 17일 금요일

오랜만에 구역모임에 나갔다. 한동안미사참석을지 않고 있어서구역모임안내를 받고도나가지 않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 남편의 한 마디에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도, 준비하는 사람은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야 기운이 나는 법인데... 웬만하면 나가지. 올해 마지막 모임인데."


'준비하는 사람의입장'이라는말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도시는 어떤지 몰라도 시골에서는 구역장, 반장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아주 애를 먹는다. 시골의 고령화는 성당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유년부, 청년부가 없다.

결혼 소식은 신춘문예 같고 부고소식은 주간지 같다. 지금 구역장님은 3년째 맡고 있다. 나도 이전 구역장을 5년을 맡았다. 공동체 유지의 기본 조건은 참석이다. 잘하는 것은 뒷문제다.


"오늘 3 구역 식구들이 많은 것을 보니모임이 있군요." 미사를 시작하던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옹기종기앉아 있던 구역식구들이 소리 없이 웃었다.


미사가끝나고 난 뒤 짧게 구역회의를 했다.

일 년 회계 보고와 구역장 교체 건이 올랐으나'연임없이한 번만 한 구역장은 없었다'는 마디에 순순히 연임을 하겠다고 해서 쉽게 회의가 끝났다.

모두 기분 좋게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은 20여분 떨어져 있는 이웃마을에 있는 고깃집이었다. 구역 식구들이 테이블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숯불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왔다. 내 맞은편에는 요한 카지노 게임가 앉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뵙는다.


"카지노 게임, 오늘은 얼굴이 참 좋아 보이세요. 건강 많이 좋아지신 거죠?"


"그랴, 요즘은 괜찮아." 카지노 게임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카지노 게임를 처음 만난 것은 카지노 게임가 육십 즈음이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의 검은 피부는 처음부터 타고난 것처럼 늘 까맸다. 논일과 밭일을 하지 않는 겨울에는 카지노 게임 피부가 좀 희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겨울에도 변함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도 카지노 게임는 늘 바다에 나가 낚시를 했다. 들 바람과 바닷바람이 스치고 간 카지노 게임 얼굴은 봄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늘 같았다.

카지노 게임는 건강을 타고난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나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한결같았다. 아침이면 오토바이 뒤에 약통이나 삽을 싣고 들로 나가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낚싯대를 싣고 바다로 나갔다. 가끔 집 앞 수로에서 건져 올린 참붕어를 가져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바다에서 낚아 올린 망둥어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또 어느 해 겨울에는 동하를 한 봉지 가져다주고는 마당에 서서 담배를 맛있게 한 대 피운 뒤 돌아가셨다. 언제나 변함없을 것 같은 카지노 게임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4년 전이었다.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뭐, 이제 나이 먹어서 조금씩 고장이 나는 거지 뭐. 병원 다녀서 이젠 괜찮아."


카지노 게임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은 아픈 곳을 잘 말하지 않는다. 늘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다던 카지노 게임가 꽤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굴이 많이 부어 있는 것을 보고서였다. 피부암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립선과 어깨 근육에 생긴 종양 등 카지노 게임의 건강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저러다 일어나시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더랬다.

오랜만에 만난 카지노 게임의 얼굴이 예전에 보았던 까만 카지노 게임 얼굴이다. 익숙한 카지노 게임 얼굴을 다시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술도 여러 잔 마시는 것으로 괜찮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요한 카지노 게임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꾼이다. 우리 동네에서 나는 카지노 게임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자신 있게 수 있다. <텃밭일기에서 쓴 '이야기 1'과 '이야기 2'를 들려주신 주인공이기도 하다. 배고프고 고생되었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법도 하건만, 카지노 게임는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직접 겪은 것과 들은 것들을 조합하여 생생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런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에는 역사와 사람이 중심에 있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카지노 게임가 글을 썼더라면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카지노 게임 얼굴을 뵌 것만으로도 구역모임에 나가길 잘했다 싶다. '날씨 하고 노인의 건강은 장담' 할 수 없다는 옛말처럼, 이제는 구역 식구들 대부분이 장담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은퇴가 없는 그들의 하루하루는 한결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삽을 들고 논으로 나가고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한다. 하늘도 미소 짓게 하는 순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읽었던 자료가 기억에 남았다. 죽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의사도 성직자도 아니라고 했다. 죽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농부라고 했다. 나는 단번에 고개를 주억 꺼렸다. 농부는 그런 사람들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 저항할 수 없다는 것,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그들은 안다.


죽음조차도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농부들이 최근 크게 화가 났다. 좀체 논밭을 떠나지 않는 그들은 논밭 쓸던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진군했다. 그리고 남태령에서 발이 묶였다. 팔 차선 도로를 경찰차가 앞 뒤로 막아선 것이다.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 응원봉을 들고 달려온 시민들이함께했다. 권력 없는 자들이순한 자들을 지켰다.

농민은 안다. 트랙터에 숨겨져 있는 무서운 힘을. 그러나 그 밤, 그들은 힘을 빌리지 않았다. 논을 갈고 밭을 가는 트랙터는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농한기를 맞아 다리 뻗고 쉬어야 할 농민들이 쉬지 못하고 있다. 5천만 명의 0.01프로도 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참 무뢰들이다.





이 글은 12월 24일에 발행된 글이다. <텃밭일기 2에 썼던 글이었는데, 분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실수를 했다. 망설이다가 수정을 한다.

글을 읽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30회 완결을 목전에 두고 있어 바로 잡고, 새로 시작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를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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