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더니 책을 뽑아 들고 왔다. 두 권의 책을 건네주며 눈을 반짝였다.
“둘 다 굉장히 재밌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이야.”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책 중 하나가 김현경 님이 지은 ‘카지노 게임, 장소, 환대’이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카지노 게임이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본문 첫 페이지의 문장 ‘어떤 개체가 카지노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31p)’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취지에서의 ‘환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장소’. 작가는 두 개념의 역사적 의미를 통해 기성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다. 인종차별, 달리트, 히잡,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절대적 환대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고대 로마에서 아버지가 인지하지 않은 아이는 죽거나 버려졌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조건적인 환대는 현대사회의 필수 요소다(209p 참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직관적으론 알고 있었으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던 불평등과 그 원인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가졌다. 자연적 사실로서의 인간과 공동체에서 권리를 가지는 지위로서의 카지노 게임이 구분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자기를 위해 나서줄 제삼자가 없을 때 인간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깨달았다. 고립과 소외로 발생하는 폭력 노출의 위험을 통해 카지노 게임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카지노 게임’은 ‘사회’를 전제한 개념이다.사회는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가진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뜻한다. 달리 말해 사회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과 조우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물론 상호작용의 의례는 언제나 위반과 중단의 가능성을 내포하므로 사회의 경계는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58~59p 요약).
이런 관점에서 흑백 분리를 내세운 짐 크로우 법, 나치의 반유태인 법안, 인도의 불가촉천민에 대한 종교적 규정, 재일조선인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조선 국적으로 남게 한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카지노 게임의 개념이 내포하는 ‘인정’과 ‘장소성’의 차원을 너머 ‘사회적 삶의 연극성’ 측면도 다룬다. 전통사회가 역할과 명예에 중점을 두고 카지노 게임다움을 판단했다면 현대사회는 개인의 정체성을 제도화된 역할에 의지하지 않고 역할로부터 자기를 해방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한다. 이에 남들에게 보이는 공적인 자기를 진짜 자기로 인정하지 않는 현대인은 세계와 자아의 불화를 겪는다. 하지만 고립된 개인은 타자의 인정과 지지 없이 존엄을 유지할 수 없기에 역할의 수행과 무관한, 카지노 게임 대 카지노 게임의 순수한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규범으로 불화를극복한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는 행위, 버스를 기다리면서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태도, 길을 물을 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례는 자아를 억압하는 외적인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83~104 참조).
위와 같은 상호작용 의례를 통해 우리가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그의 인격이다. 다시 말해 그의 안에 있는 “사회적인 것”인데, 이 인격은 초기의 사회화를 통하여 개인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보단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타인의 협조에 힘입어 확인되는 그 무엇이다. 개인은 다른 카지노 게임으로부터 카지노 게임대접을 받음으로써 매번 카지노 게임다운 모습을 획득하기에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개인은 다른 참가자들의 카지노 게임다움을 확인해 주고, 카지노 게임이 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지해 줄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이는 개인이 남들이 자신을 카지노 게임으로 대우해 주기를 기대할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15~116p 요약).
다만 의례적 교환의 장에서 배제되거나 제한된 대우를 받는 존재도 있다. 배제된 존재로서 재소자는 입소 절차에서 사진을 찍히고, 번호가 부여되며 소지품 검사를 당한다. 두발 규제와 제복 착용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허용받지 못한다. 낙인은 주로 신체적 이상이나 정신적 결함, 특정한 인종‧민족‧종교에서 발견된다. 낙인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 통합 의례로 고아들에게 키스하는 연예인,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정치인이 미디어를 통해 방영된다. 이런 현상은 관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념과 양립할 수 없지만 현대 사회는 이를 부인한다. 그러나 낙인자와 정상인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기만이 결국 우리를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할 것이다(117~127p 참조).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관심은 ‘사회’라는 단어에 머물렀다. 사회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환대라고 했다. 구성원을 절대적으로 환대하고 그들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해야만 사회가 성립한다. 환대의 선행하에 타자가 도덕의 범위로 들어오고, 도덕적인 영향 아래 놓이게 되므로 법의 정당성도 인정된다(242, 247p 참조).
‘어떻게 카지노 게임이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인격의 신성함으로 끝난다. "사회의 조건은신성함의 선언에서 나온다"는관점에 동의하면서통찰력이 돋보이는 구절을 인용해 본다.
어느 사회에서나 혼인은 숨겨진 카스트 제도가 드러나고, 자기기만적으로 부인되었던 신분 의식이 표출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68p).
나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였던, 공적인 공간에서의 이 같은 배제가 사적인 공간에서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77p).
우정은 동등성을 전제하므로, 우정을 만드는 모든 교환은 두 카지노 게임 사이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78p).
개인 공간에 대한 침범은 최종적으로 몸에 대한 침범으로 나타난다. 몸은 자아의 마지막 영토이자, 나머지 영토들 -“개개의 인간 존재를 둘러싼 가상의 구”-에 대해 개인이 행사하는 주권의 원천이다(203p).
‘카지노 게임, 장소, 환대’는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내용이 깊고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나의 리뷰는 부족하지만 무척 훌륭한 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