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Dec 28. 2024

카지노 게임 탄생

서재 털기 6번 –홍대선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2023-

명석이 추천해 준 책 중 나머지 하나는 홍대선 님이 지은 ‘카지노 게임 탄생’이다. 나는 그를 ‘1미터 개인의 간격’과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로 먼저 만났다. 타인과의 경계 설정이 어려울 때 자주 펼쳐봤던 책들이다. 특히 ‘1미터 개인의 간격’은 가독성과 전달력이 탁월했다. 반경 1미터 안을 각자의 고유한 영토로 존중하고 매일같이 그 안을 정비해야 한다는 그의 조언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좋아하는작가의 새 책을 알게 되어 나는 무척 기뻤다. 카지노 게임사가 아닌 카지노 게임 탄생을 다뤘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최근 여의도 선결제 문화와 질서정연함의 끝판왕(세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 그가 말하는 “카지노 게임인이라는 미스터리”에 빠져들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인은 외국인이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해 평생에 걸쳐 할 욕을 단 하루에 완수할 만큼 카지노 게임과 카지노 게임인을 저주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을 비하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반드시 응징하고 외국에 나가 성공한 카지노 게임인을 전 국민이 응원한다. 애국심과 희생정신이 강하지만 없는 척 연기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모순투성이 카지노 게임인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원인은 환웅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환웅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택한 땅이 하필 한반도였다. 극단적인 기후와 척박한 땅으로 유명한 한반도는 우리 선조들을 고생길로 내몰았다. 뚜렷한 사계절은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신체엔 치명적이었고, 척박한 땅에선 소출이 나빴다. 황량한 겨울과 봄을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먹고사는 일에 경쟁이 심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상대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동집약적인 농사 과정에선 품앗이가 필수다. 내가 남들의 논에서 일해주듯 남들은 내 논에서 일해준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웃이 중요했다. 협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우리의 조상은 ‘젖동냥’이나 ‘김치 동냥’에 인심이 후했고 가장 큰 가축이었던 소를 잡을 땐 마을 전체의 잔칫날이 되었다.


한반도가 가혹한 환경이라는 점은 주변국의 사정으로도 증명된다. 우리는 한족, 거란, 여진, 만주, 몽골, 일본으로부터 수시로 침략당했다. 전쟁의 위협은 계속됐기에 외적에 맞서 모두가 결집할 수밖에 없었다. 평시의 품앗이는 전시의 고통 분담으로 이어졌고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사고가 자리 잡았다.

카지노 게임 탄생은 이런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엄청난 결집력을 발휘하고 자기희생의 면모가드러나는 것은 한반도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먹고살기 위해 부대끼고 씨름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국채를 대신 갚고 금을 모으고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드는행위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이례적인 질서, 2년가량 지속되었던 일본상품 불매운동, 코로나 사태의 훌륭한 대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책에는 고구려부터 시작해 조선까지 주요 전쟁과 영웅, 임금과 백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카지노 게임인의 특성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 다양한 사건들을 신선한 단어로 재밌게 풀어낸다. 어찌나 몰입감이 좋았는지, 오랜만에 제대로 국사 공부를 한 기분이다. 이런 국사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전체 평균 2점을 깎아 먹을 정도로 국사에 무지한 고등학생 바람이는 카지노 게임하지 않았을 터였다.


글쓰기가 부쩍 어려워진 요즘이다. 책을 읽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는 중이다. 혹여 시를 읽으면 감성이 자극될까, 쓰고 싶은 열망이 살아날까 싶어서 필사도 시작했다. 오래전 쓰다만 공책을 펼치고 연필로 꾹꾹 눌러 적었다. 류시화의 시 ‘기억한다’를 베끼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 제목으로 시를 쓴다면 기억의 목적어는 무엇이 될까?


류시화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나에 대한 기억이 너를 타오르게 하거나 상처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나는 끝끝내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기억하고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기억한다. 쩝.


생각해 보니 좀 슬퍼서 오늘은 기억의 대상을 바꿔야겠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엄마의 손, 첫 데이트 때 봤던 영화 쉬리, 버스 창틈으로 들어와 무릎 위에 내려앉던 은행잎, 겨울밤의 반짝이는 불빛, 아카시아꽃 단내, 여름 바다 무지개 그리고 그대……


그대를 생각하며 2024에 안녕을 고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