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절규
멈추면 보일줄 알았다.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하는 순간은 깊게 몰입이 되면서 잡념이 들지 않았다. 기질적으로 자극을 추구하고 탐색적인 편이라 새로운 과제가 생기면 호기심이 발동하고 흥분이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워크홀릭이라는 말도 들었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야근을 하고 있었고 주말 출근도 불사했다. 물론 회사에서 나오라고 하거나 촉박한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느라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컴퓨터 화면 속의 마우스도 쉬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모니터빈화면에화살표 움직이며 마우스를 만지작 거렸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떠는 것처럼 말이다.
멈추면 쓰러지는 두발 자전거처럼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했다. 퇴사를 한 후에도 자기 계발을 하며 부지런하게 무언가를 했고 출근하듯 자주 도서관에 갔다. 그날은 진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막 물러간 따사로운 봄날에 한가로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기어가 고장 나서 바퀴가 잘 안 굴러간 탓일까? 옷을 많이 겹쳐 입어서 답답했던 것일까? 가슴이 타는 통증까지 느껴지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간신히 진정했다. 그날 너무 놀란 나머지 결국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그날의 증상이 공황발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고 했건만, 왜 난 마음이 명료히 보이지 않고 오히려 혼란스러운 공황이 왔을까?
먼저 고통을 직면해야 했다.
네덜란드의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 가그린 <절규는 카지노 쿠폰과 공포를 표현한 그림의 대명사다. 작품 속에는 한 남자가 다리를 걷다 말고 멈춰 서서 귀를 막고 있다. 공포에 질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다. 그를 공포스럽게 만든 다리 주변의 풍경은 마치 자연재해라도 일어난 것처럼 핏빛으로 표현되어 있다.
뭉크는 이 그림에 대해 친구들과 길을 걷던 중 하늘이 피로 물들고 마을이 불타면서 자연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기록해 두었다. 뭉크가 실제 환각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마치 자연이 자신을 덮치는 것 같은 심리적 공포를 느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뭉크의 심리적 상태는 자연의 풍경조차 안식을 주지 못하는 두려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절규 외에도 뭉크에게는 카지노 쿠폰, 절망, 공포 등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그의 작품에 단골 주제였다.
<카를 요한의 저녁에서도 <절규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카를 요한의 저녁에서는 한무리의 군중이 영혼이 빈 것 같은 공허한 얼굴을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옷을 잘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중산층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군중들 옆에 한 남자가 반대편으로 걷고 있다. 쏟아지는 군중들을 뒤로한채 홀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홀로 역주행하고 있는 남자는 모두와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것에 대한 카지노 쿠폰, 혼자 떨어져 나온 것에 대한 외로움, 목적지를 잘 찾고 있는지에 대한 혼란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절규와 <카를 요한의 거리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배경이 압도적인 환경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큰 재해로 뒤덮여 있거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 속에 있다. 그림 속 배경은 삶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질서, 사회의 규범과 제약이 자연이라는 상징물이 되어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그 배경은 어둡고 두렵고 압도적인 공포로 그려졌다.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무리를 지은 사람과 홀로 있는 사람이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의 얼굴은 공허하고, 홀로 있는 사람들은 우울하고 위태롭다. 삶의 고민을 회피하며 무리를 이룬 이들에게는 공허와 환멸이, 삶을 고민하고 직면하는 이에게는 카지노 쿠폰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뭉크는 삶의 카지노 쿠폰이라는 주제에 왜 그렇게 천착했을까?
카지노 쿠폰은 나약한 감정이 아니었다.
뭉크는 인간의 실존적 카지노 쿠폰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평생 고민했다.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함께 자랐다. 5살 때는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였고, 엄마처럼 의지하였던 큰누나 소피도 몇 년 후 결핵으로 사망한다. 남동생은 20대 나이에 요절했으며, 여동생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요양원에서 사망한다. 어린 시절 뭉크도 몸이 허약해서 학교에 잘 다니지 못했다. 외부의 사람들과 떨어진 채 죽음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라난다.
뭉크는 평생을 카지노 쿠폰, 우울, 망상, 알코올 중독 등의 정신이상 증세로 고통받았고 심리적 어려움은 그림의 주제가 된다. 그는 외부의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쓰듯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카지노 쿠폰뿐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 질투에 사로잡힌 괴로움, 상실로 인한 외로움과 우울,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등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깊은 감정들로 가득하다.
뭉크가 그린 감정들은 외면하고 싶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힘든 기억과 감정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뭉크는 자신의감정이 마구잡이 식으로 분출시키지 않았다. <지옥에서의 자화상은 연인이었던 툴라와다툼중에 손에 총을 맞는 사건 후그린 것이다. 계속되는 실연으로 인한 슬픔, 총기 사고로 인한 충격, 손을 다친 후 앞으로는 그림을 못 그릴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 같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 뭉크는 자신을 나약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맨몸으로 불길 속에서 휩싸여 있으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선명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뭉크가 표현한 감정은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내듯 하는 무절제한 분출이 아니라 캔버스안에서 나름의 조형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우울하거나 무기력하다면 수행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조절과 절제가 필요한 일이다. 고통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균형을 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뭉크는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해소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카지노 쿠폰과 사랑이 만나며 삶은 계속된다.
뭉크는 자신이 그린 작품들로 <생의 프리즈라는 주제의 전시를 연다. <생의 프리즈는 사랑, 삶의 카지노 쿠폰, 죽음과 관련한 대서사시이다. 이 전시에서 뭉크는 인간이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전시에는 <생명의 춤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해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의 배경은 평화롭고 따뜻하고 그윽하다. 바다 위에는 달이 떠 있고 달빛은 첫사랑과 만났던 해변의 달처럼 해안가 쪽을 깊숙이 비추고 있다. 춤추는 사람 중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고 있으며 남자는 감은 눈은 고민이 많아 보인다. 왼쪽의 흰색 옷을 입은 여자은 꽃을 꺾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있지만, 오른쪽의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는 먼발치에서 춤추고 있는 남녀를 지켜보고 있다. 뭉크는 이 한 장의 그림에 자신이 연애 경험과 감정을 담고 있다. 뭉크에게 인생이란 기다림과 소외,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 삶의 감정이 함께 어우러지는 하모니였다.
뭉크는 작품을 그리며 인생을 관조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얼핏 우울하고 슬픔으로 가득 차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삶의 절망과 두려움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임종을 그린 장면에서도뭉크가 그린것은죽은 사람이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남은자들의 슬픔이었다. 뭉크는 언제나 생명을 그렸다. 생명이 있기에 고통과 아픔이존재한다는것을 발견했고,그는 이러한 삶의 풍경응화폭에 담았다. 말년에 이르러 그의 작품은 더욱 밝아진다. 빛과 자연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신체적예술적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카지노 쿠폰 속에서도 다시 사랑을 만나며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지노 쿠폰은 좌절된 욕망이 만드는 심리적 상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카지노 쿠폰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심리적 에너지(리비도)가 해소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초적 욕구(원초아)를 정신적 의지(초자아)로 억압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했을때 생기는 비난이나 불이익 때문에 억압했던 욕구는 카지노 쿠폰 증상을 야기시킨다. 카지노 쿠폰은 일종의 신호이기도 하다. 원하는 방향대로 삶이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다.그러기에 이 신호를 잘 해석해야 한다. 그 해석의 시작은 인식과 수용이다.
과거에 내 사전에는 카지노 쿠폰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걱정이 많기는 했지만, 카지노 쿠폰, 초조, 긴장과 같은 감정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감정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카지노 쿠폰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잘 지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던 것이다. 회사를 나오고 간혹 직장 동료들이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해왔다. 진짜 내가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퇴사 후 나의 불행을 확인하며 자신은 무리 속에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잘살고 있다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매우 여유 있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엄청 카지노 쿠폰했다.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 길어져 가는 공백기가 내 숨을 조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은 좋았지만 가끔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한가하고 배부른 짓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실은 엄청 두렵고 암담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너무 무서워서 눈을 뜨지 못했다. 카지노 쿠폰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카지노 쿠폰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 카지노 쿠폰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돌보아야 한다. 그것이 카지노 쿠폰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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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병약한 신체와 신경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2만 5천여 개의 작품을 완성한다. 카지노 쿠폰에 잠식되거나, 떠밀려 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생명력을 회복해 갔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친절을 베풀어야 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아이를 사랑해야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을 보러 다녀야 하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수록 나의 카지노 쿠폰은 딱 그만큼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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