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주 Apr 12.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 안에 내가 소리치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

감정의 발작 버튼이 눌릴 때


감정의 동요가 심하게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한 통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휴대전화로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메시지의 표현은 정중했고 간곡했으나 내용은 강렬했다. 글의 요지는 나로 인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웠다. 한편,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연락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해도 불쾌한 기분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사에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 조심함이 지나쳐서 망설이거나, 지나치게 준비하거나, 아니면 때를 놓쳐 버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나는 신중함이 지나쳐서 문제였기에, 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했기에, 나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높은 도덕적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부도덕한 사람이 되어 이 사회에서 내쫓길 것 같은 공포가 들었다. 그런 공포는 죄책감을 만들었다. 누군가의 작은 불만이라도 듣게 되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밤사이에 찾아온 메시지는 경찰서로부터 날아온 소환 통보 같았다.

누명을 쓰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착한 아이 가면을 쓰지 않고 있는 성질을 다 부리고 싶었다. 그동안 내 속으로 태우던 에너지를 분출하며 나를 힘들게 하는 모인 것들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해방감이 들었지만 금세 두려워졌다. 내가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 나조차도 부담스러운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낯선 에너지가 불편하고 무서웠다.


이런 불편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감정의 발작 버튼이 눌렸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나를 보며 "왜 길을 막아?"라고 하거나, 혹은 "이거 왜 안 치워?" 하는등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잘잘못에 상관없이 기분이 나빴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괴상하리만치 만치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

내면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에서 괴물이 깨어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프란시스코 데 고야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 1799년경,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메시지를 읽고 불편했던 이유는 나의 부정적인 측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가 있지만, 드러나서는 안 되는 부정적인 ''가 있다. 바람직한 ''가 강할수록 부정적인 ''를 억압시킨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고 부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사회적,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과 욕망을 억압시킨 것이다.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어린 시절 교육에서 생겨난다. 집이나 학교에서 원하는 모습을 할 때는 칭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혼이 나거나 비난을 당하게 되면 부정적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양육자의 가치관에 따라, 학교 선생님의 기준에 따라,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잘 인식하지 못했을 때는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닮은 누군가가 이유 없이 싫거나, 나의 특정 모습을 지나치게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의 억압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이 된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무의식 중에 감추려고 시도한다. 감춰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대인관계에서 드러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발작 버튼이 눌렸다면 그것은 내 안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자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 보내는 신호이다.이번에도 내 안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고, 자신의 존재에 귀 기울여 달라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내 마음속 풍경은 고야의 <잠자는이성은 괴물을 깨운다의 모습 같았다. 나를 통제하던 이성이 잠들던 사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야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이성'은 평소 내가 알고 있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며,'괴물'내 안에 있지만미쳐 인식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에서 '이성'은 아직 '괴물'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마음은 그로테스크한 풍경으로 뀌게 된다.


고야의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변덕들)'이라는 판화집에 실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다. 판화집에는 부패한 성직자들, 겉과 속이 다른 부덕한 사람 등 인간의 어리석음을풍자적으로 묘사화집이다. 대체 고야는 인간 안의 어떤 어둠을 본 것일까?



어둠의 끝은 어디인가?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부조리한 인간의 내면을 그린 화가이다. 그는 인간 내면에 있는 인식하기 어려운 어둠과 광기에 대해 그렸다. 고야가 처음부터 이와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국왕 카를로스 3세와 후대 국왕에게도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다. 귀족들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는상당기간 명성을 누렸다.하지만 고야는 누드화 스캔들로 인해 종교 재판에 부쳐진다. 당시 스페인의 종교 재판은 강력하고도 포악했다. 종교재판을 받으면 마녀사냥을 당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야는 종교재판의 위기에서 성직자들의 타락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프랑스-스페인 전쟁을 통해 수많은 죽음을 보며 인간의 잔인함을 목격하게 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캔버스에 유채(회벽에서 옮김), 1820-23, 146 X 83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후 고야는 1819년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불리는 집을 매입한다. 고야는 1819년부터 1823년까지 집에 칩거하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린다. 검은색이 주로 사용된, 이른바 검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연작을 14점 남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캔버스가 아닌 벽면에 벽화로 그려졌다. 벽에 검은색을 바른 후 그 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린 것이다. 캔버스의 배경색에 따라 상상하는 것들이 달라진다. 검은색 도화지는 좀 더 무의식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을 자극한다알려져 있다.고야는 집의 이름처럼 자신 역시 병으로청력이 상실된 상태였다. 그는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의 심연으로 깊숙이 내려가 검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그리며 인간에 대해 고민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 내용은 놀랍고 기괴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는 마녀와 악마, 죽일 듯이 싸우는 결투 장면, 무덤에서 나온 것 같은 패인 몰골, 공포에 질린 표정 등 어둡고 음산했다. 14점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중 가장 섬찟하고 무서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라고 이르면 붙여진 작품이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에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시체를 먹고 있다. 시체를 먹는 사람의 눈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이 그림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사투르누스를 그린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투르누스 신화는 자식 중 한 명이 자신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이를 막기 위해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한 명씩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는 스페인 권력자의 민중 착취라는 해석, 죽어가는 노인이 젊은 생명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는 해석,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 등이 있다. 다양한 해석의 공통점은 바로 힘이다. 기존의 권력은 힘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고야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는 인간에게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광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야가 살던 18C 스페인에서는 오랜 시간 의지했던 종교타락했고, 시민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에서는 스페인을 침공하여 양민을 학살했다. 종교의 시대에도 신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고 새로운 사상인 계몽주의도 선량하지만은 않았다. 종교도 계몽주의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었다. 인간 세상에는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둠도 함께 존재했다. 고야는 자신이 묵도한 인간사의 모순적 측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는 추악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악함을 그렸다.



내 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프란시스코 데 고야 <곤봉 결투 캔버스에 유채(회벽에서 옮김), 1820-23, 125 X 261 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가 '귀머거리에 들어간 것처럼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만나러 나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실제로 얼마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 밥벌이하고, 가정을 꾸리고 하는 일들 외에는 모임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내게 동굴이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들, 나의 어려움들, 내가 놓쳤던 중요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자기기만의 껍질이 벗겨지는 쓸림을 견뎌내고, 자기혐오로 막아놓은 입구를 열면서 나의 어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많이 듣던 말은 "얌전하게 굴어!", “나대지 마라등이었다. 완벽하게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실수하면 비난을 받을까 봐 불안해했다. 나를 드러내서 혼이 날 바에는 몸을 사리고 조심하는 편이 나았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끈질기게 완주해 내는 쪽으로 개발이 되었다. 반대로 내 목소리를 내고 나를 드러내는 것은 미숙했다. 나를 노출한다는 것은 비난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표현하고 싶어 했지만, 비난이 두려워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며 사는 내게 누가 지적을 하면 바로 억울함이 밀려왔다.


이런 울화와 위축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되면 나는 자기기만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자기기만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나오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 역할을 했다. 누가 나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미리 철저하게 대비했다. 남들의 부탁에 거절하지 않착하고 순하게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나를 미워하지 못하게 하려고 괜찮은 척 굴며 나를 혹사했다.


내 안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무조건 비난하기도 했다. 이것은 자기혐오였다. 비난받는 일이 생기면 죄책감을 느끼고 내 탓을 했다. 이것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인정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심리였다. 는 실수하거나 혹여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수하는 나, 부족한 나, 취약한 나에 대해 너그럽지 못했다. 죄책감은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발생한다기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자신을 꾸짖는 행위에 가까웠다.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비난이었다.


자기기만과 자기혐오는 모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존재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만나려고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한 인식은 나를 불안하고 두렵고 심지어 분노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흔들리는 감정들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에너지로 느껴졌다. 이 에너지는 글을 쓰는 힘이 되었다.


내 안의 불편하고 다글 거리는 감정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나는 글을 쓰거나 미술관을 헤매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의 한계를 마주했다. 글을 쓰며 지난 일들을 성찰했고 원하는 삶을 적어 나갔다. 그리고 쓴 내용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힘을 느끼게 되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 치부했던 감정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이 꿈틀대고 있었다.



어둠을 이해할 때 더 인간다워진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보르도의 우유 파는 아가씨, 1825~27, 캔버스에 유채, 76 X 68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의 검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연작을 보며 고야는 어둠의 심연에 갇혀 집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고야는 말년에 프랑스 남부 지역에 있는 보르도로 이주하여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는 보르도 지역에서 본 것들을 기록했고 거리의 부랑자들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검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닌 부드럽고 푸근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보르도의 우유 파는 아가씨는 고야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다. 부드럽고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으며 꾸밈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보인다.


고야는 검은 연작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직시하려고 했지만, 비관주의나 허무주의로 흐르지 않았다. 고야는 인간에 대해 끝내 낙관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의 아름다움은 내면의 어둠을 직면했을 때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아름답게 살아가려 애쓰는 것이 인간다움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직면하고 나서 평소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점점 더 긍정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싫어했던 나의 까칠함은 때로는 누군가의 가려운 부분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집요함은 열정이 되어 사랑을 향해 돌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 괴물은 내가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사랑할 때 더욱 강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나니 얄미운 타인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못생기고 어두운 마음에도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어른이라면 어린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무턱대고 꾸짖지 않는다. 우선 실수 앞에 당황하고 놀랐을 마음을 돌보아 준다. 그리고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하는지 잘 타일러 준다. 내면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도 아이를 기르듯 돌봄이 필요하다. 잘못된 행동이라고 무작정 혼내지 않고 먼저 안심시켜 주는 것이다. 잘해보고 싶었던 마음을 격려해 주고, 멋지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믿어 주는 것이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만나며 사랑을 배우고 있다. 내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낙관을 배우고 있다. 이제 차가운 동굴을 나와 따뜻한 남쪽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삶을 향해 계속 나아가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