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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pr 15. 2025

[직면] 시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공법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은 억압된다.


회사를 퇴사할 때 붙인 이유는 다양했다. 회사에는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아이들 돌봄 문제로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가족 문제 앞에 퇴사를 만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사퇴 처리를 했다. 친구들은회사 생활에서 견디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가정과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주변에서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 대해 나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조차 분명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당시의 내 삶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더는 할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엉뚱한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다. 그렇게 떠밀리다시피 회사를 나왔다. 살기 위해, 살아오던 방식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고의 폭이 좁아져 있었다. 아마 그때 우울이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우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우울은 항시 무기력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병든 아버지를 돌봐야 했고, 어린아이들을 길러야 했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런 의무감이 나를 멈추지 않게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중독으로 우울감을 누르고, 퇴사 후에는 양육을 하며 우울감을 눌렀다. 계속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감정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꽉 막아두었다.


그렇게 막아둔 입구에 틈이 생긴 것은 소설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였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였다. 일상의 삶에 스며든 폭력에 관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한 달간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억압되었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내가 누르고 싶었던 감정과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따라 들어갔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받았던 폭력의 통증이, 그리고 누군가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방임했던 무기력함이, 그리고 나 역시 폭력을 행사했던 죄책감이 폭도가 되어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한 번에 일어난 기억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마치 밀면 밀수록 계속 일어나는 각질처럼 기억은 계속 번져만 갔다. 대놓고 상처 입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상처는 상처를 알아보곤 한다. '상처'와 관련한 책과 영화 등을 보면 마음이 쓰였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도 그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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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추천침상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는 프리다 칼로 (출처. https://www.fridakahlo.org)


2016년에 찾게 되었던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전시장의 그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프리다 칼로 앞에서는 감히 나의 고통 따위를 들먹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의 성장에 문제가 생긴다. 걷기가 불편했지만 여러 겹 양말을 신고 신발 높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녔고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학교에 가던 어느 날, 18세의 그녀는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에서 쇠봉이 척추와 자궁 그리고 다리를 관통하는 큰 사고를 입게 되고 회복되기까지 2년여의 세월이 걸린다.


그녀는 회복의 시간 동안 침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대 초반, 평생의 사랑이자 고통이 되었던 디에고 리베라(1886-1957)를 만나게 된다. 디에고는 심각한 여성 편력이 있었으며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 외도하면 결혼생활을 위태롭게 했다. 게다가 그녀는 세 번의 유산, 35차례의 수술을 겪으며 반복되는 고난을 만난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의 반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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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헨리 포드 병원, 1932 (우) <칼로 몇 번 찔렸을 뿐인데, 1935, 돌레로스 올메도 미술관, 멕시코


<헨리 포드 병원은 남편 디에고와 함께 미국 디트로이트에 머무를 때 그려졌다. 이때 프리다는 간절히 원하던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자궁과 골반이 약해 그만 유산을 겪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카지노 게임 추천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린다. 혈흔 가득한 침대에 프리다가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고 그녀의 배 위에 있는 손은 6개의 핏줄 같은 붉은 줄을 잡고 있다. 침대는 황량한 사막에 놓여 있다. 그녀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유산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 느낄 소외감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남편 디에고의 외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울 정도였다. <칼로 몇 번 찔렸을 뿐인데는 남편과 여동생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그린 그림이다. 그림뿐 아니라 제목에서도 그녀가 겪었을 만성적 카지노 게임 추천에 대해 말해준다. 칼로 단 한 번만 찔려도 치명적인 것이지만 이것을 그녀는 여러 번 찔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몇 번의 칼부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현은 그녀의 카지노 게임 추천이 남편 디에고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는 물감으로 액자에 피 묻은 흔적을 만들어서당시 심정이마치 살인 건의 현장처럼 끔찍하고 절망이었음을 현했다. 액자위에 힌 혈흔의 표현은 조금 씩 덧 칠해진 것이라고 한다. 아마 감정의 해소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부서진 기둥, 1944, 돌레로스 올메도 미술관, 멕시코


전시장에서는 "세상에!", "어떻게...", "너무 불쌍하다." 등 프리다 칼로를 동정하는 관람객들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작품에 이르자 모두가 침묵했다. 전시실 마지막 구석에는 이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주변 벽은 어두웠고 작은 동굴처럼 연출되어 있었다. 그리고석굴의 제단처럼 마련된 공간에는 작은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다. <부서진 기둥이었다. 그림 속의 프리다 칼로의 몸은중심이 갈라져 있고 그 안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척추뼈를 묘사했다. 기둥은 심하게 부서져 있었지만,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흰색 교정기계가 이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부서진 몸에는 작은 못들이 박혀있어서 카지노 게임 추천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위축되거나 두려움 없이 무표정한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듯 정면을 보고 있다. 비록 눈물을 흘리고는 있지만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나를 비롯한 관람객들은 마치 성당에서 종교화를 보는듯한 모습으로 경건하고 숙연해졌다. 공감하기도 어려운 너무 큰 고통을 버티고 서 있는 모습 앞에서 감탄사를 내지를 수도 없었다. 어떠한 동정도, 어떠한 감탄도, 어떠한 놀라움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 고통을 그저 바라보고 감당할 수밖에는 다른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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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프리다 칼로와 같이 자신의 슬픔을 묘사한다는 것은 연약하고 무기력 상태여서는 불가능하다. 슬픈 감정과 기억을 표현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고통은 생생하게 재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는 고통을 직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은 억압되는 경우가 많다. 억압은 자아가 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심리적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억압시키지 않았다. 다룰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었다. 그녀는 교통사고가 난 후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그림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척추를 세우는 보조장치를 착용하며 지냈으며 침상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어나지 못하는 날은 누운 채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표현했다. 그녀는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고통을 기록하고 해소하고 치유해 나갔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현실을 회피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 그것이 카지노 게임 추천이면 카지노 게임 추천을 그렸으며, 그것이 절망이면 절망을 그려냈다. 인생의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기어이 붓을 잡고 그 절망을 직면했다. 붓을 드는 것은 또 다른 신체적 카지노 게임 추천을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인생의 카지노 게임 추천 앞에 신체적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응답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 끌려가지 않고 카지노 게임 추천 앞에 정면승부를 하려 했다. 불행한 사건을 마주하며 슬픈 기억을 소진 지키려 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직면이 가져오는 기쁨


<인생이여 만세, 1954, 프리다 칼로 미술관, 멕시코


고통의 직면 끝에 프리다 칼로가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일까? <인생이여 만세는 그녀가 죽기 며칠 전에 그린 그림이다. 수박 일곱 개가 각기 다르게 잘린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수박의 잘린 단면도 다르고 익은 정도도 모두 제각가이다. 그리고 아직 잘리지 않은 수박도 있다. 아직 잘리지 않은 수박은 수수께끼 같은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것 같다. 잘린 수박은 초록과 빨강이 대비를 이루며 강렬함을 준다. 이 강렬함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닮았다. 그녀는 잘린 수박조각에"인생이여 만세"라고 적어두었다.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빨간 속살은 인생을 찬미하고 있다. 연약하고 문드러진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그 순간은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직면한 자만이 누를 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나의 수박을 자를 수 있을 때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딱딱한 껍질에 싸여 자르기가 어려웠다. 사실 나의 문제가 수박처럼 자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돌덩어리같이 단단했고 출구가 없어 보였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도망가고 싶었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도 '고통'의 직면하는 심리상담이론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가지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는데, 구태여 과거의 힘든 기억을 캐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거사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과정의 어려움과 고약함을 무의식적으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에서, 도서관에서, 상담실에서 그리고 철학 수업에서 자기 속살을 내보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방어를 내려놓게 되었다. 그것이 변화를 거부하는 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도 그들의 마음처럼 저렇게 생생히 흐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흘러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라면, 나 역시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내 마음은 간절히 흐르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도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긴 여정을 지나오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나의 '카지노 게임 추천'과 만나고 있다. 시련을 극복하기보다는 시련을 잘 대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련이 말끔히 정리된 것이 아니더라도, 시련과 만나는 과정은 내게 기쁨을 준다. 나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나를 생생히 살아있게 한다. 훗날 "인생이여 만세"를 외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생생히 살아내고 싶다.


"오늘이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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