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을 두 달 치 처방받았다. 한 달 동안은 2주씩 나눠서 먹어보며 몸의 반응을 살폈다. 뭉치던 종아리도 한결 괜찮아졌다. 큰 부작용이 없어서 이번엔 두 달 치를 한꺼번에 처방받았다. 두 달 치를 한꺼번에 받아도 괜찮은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혈압약을 먹다 보면 가끔 혈압이 100 밑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자, 그런 날은 기록해 두었다가 일주일 정도 계속 낮게 유지되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혈압약을 먹으며 맞이한 봄은 처음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카지노 게임의 봉우리를 기다린다.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카지노 게임 봉우리는 추워서 바람이 부는 날 밤에도 조금씩 솟아오른다. 그 카지노 게임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 봄날이 기억난다. 우두커니 서서 한밤에 빛나는 작은 카지노 게임 봉우리를 멍하니 보았었다.
신혼시절이었다. 지금도 살고 있는 동네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살 때였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되는 여러 상황과 일들에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깼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서 그저 패딩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섰다. 누워 뒤척이며 잠을 더 청하기보다는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걷다가 본 한밤에 빛나는 목련 봉우리들.
그 차분하게 포근하게 스며드는 흰빛을 멍하니 걸음을 멈추고 보았다. 아직도 쌀쌀하고 추운 날 목련은 잎도 없는데 꽃부터 피우려고 하는구나. 그 순간 신기하게 보인 목련 봉우리를 몇 분 동안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솟아오르는 목련 봉우리를 보면서 무언가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해 봄은 새벽마다 목련 봉우리를 보게 되었다. 오늘은 얼마만큼 올라왔나 올려다본다. 그러는 사이 하루 동안 힘들었던 마음들이 무언가 포근하고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목련 봉우리를 그저 바라다볼 뿐인데, 무언가 토닥토닥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괜찮아. 매섭게 추운 눈 내리는 겨울을 지나 쌀쌀한 겨울의 끝에도 이렇게 꽃은 필 수 있어.'
연녹색의 잎이 무성해져서 푸르른 이후에야 꽃은 피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잎이 나오기도 전에 하얗고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목련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왜인지 눈물이 났다. 지금도 모르겠다. 목련을 보면 눈물이 나는 내 마음이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 그저 그 조용히 피어오르는 목련꽃에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추운 날씨에도 하얗고 큰 꽃을 피우는 목련이 가진 생명력에 감탄하고, 희망이라고 용기라고 의미를 붙인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괜찮다고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혈압약과 시작한 올해 봄. 한밤의 카지노 게임 봉우리를 보며, 이걸로 이번 주 브런치 글을 써야지 했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삶에 대해서 고민하던 내게 한밤에 카지노 게임이 주던 토닥임이 요새 더 생각난다. 아마도 그 시절처럼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에 들어섰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간에 피어나는 카지노 게임을 보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에 서 있는 나를 다시 보게 된다. 혈압약을 먹으며 내 몸이 노화하고 있고, 이제는 정말 노화를 잘 관리하며 살아가야 할 시간이구나 새삼 와닿는다. 어젯밤 한밤의 카지노 게임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 괜찮아, 다가오는 또 다른 시절도 잘 토닥이며 살아갈게. 춥고 쌀쌀하다고 해서 꽃을 못 피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차분하게 아름답게 피워줄게. '
내 인생이고, 내 삶이고, 내 시간이고, 내 몸이다. 아름답게 잘 살아줄 거라고 한밤의 카지노 게임 봉우리를 보며 생각한다. 추워도 쌀쌀해도 이쁘게 피워줄게라고. 혈압약을 먹는 몸이 되었어도 괜찮다고, 오히려 혈압약을 먹으며 정상 혈압이 되어서 몸이 이전처럼 피곤하지 않고 무겁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 몸도 내 살아온 삶도 고맙다고, 크고 소담스러운 카지노 게임 봉우리는 아니었어도, 그 나름 아름답게 피워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밤에도 한밤의 카지노 게임을 보며 말을 건네고 싶다.
' 하루하루를 조금 더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