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내게 귀 기울여주는 누군가
4년 전인가 무료 카지노 게임 치료 센터에 방문했다. 이곳저곳 많이 생겨난 무료 카지노 게임 치료 센터는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서 간 건 아니었지만 겸사겸사 내 이야기도 들어주시겠단다. 대략 30분 남짓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원래부터 마음 약한 소리를 하면 지는 거라 생각했고, 사연팔이라는 생각도 종종 들고, 내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는, F면서 오히려 T인가 싶은 구석이 있었던 나는. 굉장히 불신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렇게 말한들 나아지는 게 있을까. 현실은 그대로인데.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어.
그런데 그 30분 동안 괜히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 사실 지금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가족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자꾸 꺼낸다. 그 질문들에 내가 대답을 꺼내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좀 더 길게 상담했더라면 내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다 꺼내놓을 수 있었을까.
너무 낯선 기분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 해도 상대방은 100%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게 분명한데, 내 생각과 감정을 꺼내놓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꺼내 놓아도 상대방은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주의 깊게 들으면서 내게 필요한 질문들을 던져준다. 단지 듣는 척이 아니라 내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있다고, 공감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 당시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여러 번 더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낯설고 생경한데 뭔가 이해받는 기분과 후련한 기분.
글쓰기를 시작하고 가끔 그런 기분이 든다. 내 생각을 글로 썼을 뿐인데 후련한 기분.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늘여놓기. 토해 내듯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누구 하나 귀 기울여 주지 않지만 괜찮다. 그저 막연히 떠다니는 생각과 바람, 망상, 후회와 질문들을 글자로 만들어 놓고 나면 개운하다. 목놓아 울거나 악을 쓰며 소리치고 난 기분 같다. 어떤 방법으로든 꺼내 놓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여버린 감정의 찌꺼기들은 고여서 썩어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눈물도, 고성도 아닌 글자를 선택했나 보다.
이렇게 쓰느니 친한 지인이나 가족 누구에게라도 터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은 불안하다. 내가, 내 마음이 과연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런 생각을 왜 해?라고 반문받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부족한 게 많은데, 내가 1인분의 역할은 하고 있는 걸까. 내 이야기가 충분히 흥미롭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혹여나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별종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의 어디까지 보여줘도 될까. 나조차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타인에게 그걸 원하는 건 조금 이기적인 욕심 아닌가. 아니 과한 욕심일 것 같은데.
무료 카지노 게임보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항상 바른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지 않았고, 종종 옳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며,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기분에 휩쓸리고 지독히 이기적이면서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미움받기 싫고 사랑받고 싶다. 노력하지 않고도 실력이 좋아서 날로 먹었으면 좋겠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든다. 부지런보다는 게으른 편이며 위악을 떨지만, 진짜는 그 보다 더 위선적인 편이다.
온전히 들어주는 상담사가 없다는 것은 이런 글쓰기의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아닌 나만 일방적으로 나에 대해서 털어놓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끝은 그날그날의 기분과 감정, 분위기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우울한 날에는 나의 단점에 대해 한없이 파고들고, 활기찬 날엔 뭐든 할 수 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혀 나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 그날의 내가 된다.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적당히 맞장구도 쳐주고 땅굴을 파내려갈 기색이 보이면 적당히 말려줘야하는데. 나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나는 적당히가 없다.
나도 안다. 매일매일의 내가 같을 수 없고 하나의 말로 나를 표현할 수 없고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다는 걸. 아이에게 착한 아이라고 하면 아이는 그 착한 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릴 수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으로 인해 좌절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모두 너야. 너는 착한 아이지만 가끔은 나쁜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것도 나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이기 때문에 한결 같을 수는 없다는 것. 정말로 너는 괜찮은 아이라고.
최근의 나는 조금 우울했다. 바쁘게 일을 안 해서 그런지 주변사람들의 행동 하나, 언행 하나에 온갖 의미를 붙여가며 나를 힐난했다. 아무도 나에게 비난하지 않았지만 작은 근거를 찾아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필요를 증명해야 하는 걸까. 필요 없는 사람은 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리고 전혀 이상하지 않게 한 쪽으로, 그것도 더 안 좋은 쪽으로 방향이 정해지자 온갖 근거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좀 조용히 하는 게 어때,라고 해 봤지만 쉽게 수그러들 무료 카지노 게임이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면 좀 괜찮아질까. 우울하고 속상하고 자책무료 카지노 게임 감정을 다 쏟아내면 후련해질까.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감정은 전염이 잘되어서 이렇게 털어버리고 나면 그 파편에 맞은 사람들도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그런 민폐를 끼쳐도 되는 걸까. 내가 쓰레기통이 되기 싫다고 주변사람을 쓰레기통으로 만들면 안 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카페에 올라오는 수학문제를 풀 때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어려운 문제를 풀수록 더 좋아지는데, 어릴 때는 스트레스받을 때 정석을 푼다는 친구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런 기분이라면 나도 정석을 하나 사야겠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신날 것 같은데 왜 이럴까. 나는 집순이라 약속 없이 사람 안 만나고 집에만 있는 게 좋은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내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이 있었나.
자존감이 좀 깎여나간 기분. 문득 깨달았다. 카페에 올라온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서가 아니라 그 후로 올라오는 감사 인사에 자존감 조금 회복되는 걸. 이리저리 문제를 찾아 떠돈다. 집안일로는 도저히 회복이 안 되는 부분. 회사 다니는 동안에는 고객 때문에 힘들고, 일이 많아 힘들고, 같이 일무료 카지노 게임 사람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 그때도 자존감이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나.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렇게 잘려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혼났던 기억보다는 잘한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커리어도, 직주근접도, 월급도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무료 카지노 게임 직장이었지만(퇴직 결정 3 대장) 그래도 잘한다는 소리를 주기적으로 들어서 오래도록 다닐 수 있었나 보다. 책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 말고 15년간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났다는 자존감. 잘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 덕분이었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지난 2년간 잘게 갈려나간 것 같다. 그 잘한다는 칭찬을 회사를 그만두고 못 듣게 된 것 같다.
집안일, 특히 요리와 정리, 청소가 대부분인 집안일은 도무지 적성에 맞지가 않는데. 어떻게든 붙잡고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해보려고 한다고 버둥되는데 잘 안된다. 자잘한 포기들이 모여서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나니,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쫑긋 거리다가 혼자 주눅이 든다. 나에게 비난도 없고 칭찬도 없고. 그럭저럭 유지되는 일상.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가 떠오른다. 이게 맞는 건가. 아직 노력이 부족한 걸까. 나이 40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자기 확신은 안 생기는 걸까. 잘하고 있나.
맙소사.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야 만다. 아이들도 칭찬을 듬뿍듬뿍해줘야 무료 카지노 게임데. 어쩌면 맨날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 잔소리들을, 아이들은 적성에 맞지 않은 걸 꾸역꾸역 가져다 재단무료 카지노 게임 것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조금씩 꾸준히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잘려나가고 있었을까.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금세 웃는 얼굴이 되는 아이들에게 왜 나는 무서운 표정으로만 잔소리를 퍼붓고야 마는 걸까. 그게 꼭 필요한 일이었나.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한다는 것들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나. 그냥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욕심과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어쩌면 나 때문에 아이들도 자기 확신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게 온전히 귀 기울여줄 누군가를 찾을게 아니라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야 했는데. 아이가 이야기하면 아이 말에 꼭 귀 기울여주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제대로 엄마가 되지 못하고 내 기분과 감정이 우선인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주변에 무신경해지는 걸까. 겉모습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속마음까지 바라보는 관심을 줘야 하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보기엔 전혀 잘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어쩌지.
어쩌긴.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