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비가 오잖아!”
“어차피 다 젖었잖아!”
밖으로 나가려는 카지노 게임 손목을 잡았다. 무릎에 발랐던 빨간약은 마치 그녀가 흘리고 있는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록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닦아 주지 못했지만,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닦아 주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가릴 것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건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그건 내가 축구를 할 때 땀을 닦고 던져둔 것이다. 다른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걸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것밖에 없어서. 좀 더럽긴 하지만.”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냄새나고 더러운 수건을 꼭 끌어안은 채 속이 비치는 교복을 가리고만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비가 그치기는커녕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소나기라고 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고 오늘따라 유난히 축구부실이 더욱 좁게만 느껴졌다.
나는 무거워진 입을 아주 힘겹고 조심스럽게 열었다.
“미안.”
“뭐가?”
“뭐든.”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이다음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요란을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말을 이어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희진이가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저기 있잖아. 축구를 시작한 이유가 뭐야?”
“축구? 아, 그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려고.”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많이 놀란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공놀이를 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어쨌든 축구를 시작한 이유는 그랬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려는 이유는 묻지 않았으니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넌 공부 말고 좋아하는 거 없어?”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에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뭐야,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그럼 공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그건 비밀이야.”
“비밀이라고?”
“궁금하면 너도 공부 열심히 해 봐.”
그녀는 마치 나를 약 올리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쳤다고 공부를 하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난스럽던 카지노 게임 표정이 사그라들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아쉬워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네가 축구를 해 보는 건 어때?”
카지노 게임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고 입술은 삐쭉 튀어나왔다. ‘그건 불가능하잖아’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더는 할 말이 없어지자 나는 괜히 천장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대체 비는 언제 멈추는 거야!”
“얼른 멈추었으면 좋겠어?”
“그거야…….”
창백했던 카지노 게임 얼굴이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얼굴도 카지노 게임 얼굴처럼 붉게 물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는지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숨소리는 마치 볼륨을 높인 듯 아주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뒤 우리는 축구부실을 구석구석 열심히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카지노 게임을 하나 발견했다. 다만 살이 부서지고 녹이 슨, 아주 엉망진창의 카지노 게임이었다. 꼭 지금 우리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괜찮을까?”
“아마도?”
나와 희진이는 망가진 카지노 게임을 집어 들어 펼쳤다가 그 앙상한 모양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것없는 카지노 게임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왜냐하면 이 카지노 게임 때문에 우리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카지노 게임 때문에 우리는 절대 만나지 말았어야 할 무언가를 만나고야 말았다.
“어어! 아, 놓쳤다.”
고장 난 카지노 게임이 손에서 쏙 하고 미끄러지더니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때문에 희진이와 나는 비를 홀딱 맞으면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때 갑자기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우리는 서로를 와락 껴안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빗소리는커녕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 세상은 오직 단 한 사람, 희진이만 존재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천둥소리가 한 번 더 울리고 나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카지노 게임!”
저 멀리 날아가던 카지노 게임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벤치 옆에 있는 나무 쪽으로 빙그르르 굴러갔다.
“내가 가져올게!”
희진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을 가듯 카지노 게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동안은 성난 코뿔소처럼 쌩쌩 달리던 축구쟁이 친구들의 달리기만 봐 왔다. 그런데 토끼처럼 저렇게 총총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였다.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나도 발걸음을 떼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번쩍이더니 하늘이 깨질 정도의 커다란 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것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멀쩡하게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