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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츠므츠 Apr 22. 2025

같은 카지노 게임

마치 우리를 몰래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곰인형과의 거리가 조금도 멀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희진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희진아, 우리 뛰어야 해.”


카지노 게임가 무슨 소리인가 하며 뒤돌아보려는 순간 나는 크게 외쳤다.


“희진아, 달려!”


나는 카지노 게임의 손을 붙잡고 냅다 뛰었다. 저 앞에 축구부실이 보였다. 나는 카지노 게임를 데리고 그쪽으로 향했다. 달리면서 간간이 뒤돌아보았는데 역시나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뒤따라오는 곰인형의 긴 팔과 긴 다리의 동작이 너무나도 커서 보통 때라면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아주 살벌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뒤돌아보지 마!”


희진이가 뒤를 돌아보려고 하자 내가 소리를 질렀다.


만약 곰인형이 뛰어오는 모습을 그녀가 보기라도 한다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아파하고 또 힘들어했지만 나는 최대한 그녀를 끌어당겼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탓인지 자욱이 낀 안개가 자꾸만 우리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꾸역꾸역 축구부실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축구부실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갔다. 그러고 나서 문에다가 귀를 갖다 대었는데 숨소리와 빗소리에 가려서 그런지 다른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단 진정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 우산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조금 전에 희진이의 손을 잡고 달렸을 때 내가 우산을 어디엔가 던져 버렸나 보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만 그만큼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숨을 가다듬으며 옆을 쳐다보는데 비에 젖어 있는 카지노 게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빗방울이 맺혀 있는 카지노 게임의 기다란 속눈썹은 마치 축구공이 골대를 향해 휘어지며 날아가는 듯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거칠게 숨을 쉴 때마다 들썩이는 카지노 게임의 어깨와 가슴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하필이면 교복 색깔이 흰색이라 그런지 비에 홀딱 젖은 지금은 투명색이 되어 있었다.


꼭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한 듯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자 나는 재빨리 시선을 올려 그녀의 속눈썹에 맺혀 있는 빗방울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빗방울이 톡 하고 떨어지면서 그녀의 입술 끝에 걸렸다. 그러고는 연분홍빛의 작은 입술 속으로 들어가려 하자 나도 모르게 그것을 삼키고 말았다.


음! 하는 작은 신음이 귓가에 울렸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뒤에는 백색 소음이, 마지막으로는 빗소리가 들렸다.


“아……!”


카지노 게임가 화들짝 놀라 몸을 뒤쪽으로 젖히다가 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많이 놀랐는지 토끼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두 눈이 깜빡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얼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카지노 게임가 쳐다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축구부실 창문 너머로 곰인형의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정말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나 또한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를 곰인형이 의식했는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망할 기계음으로 축구부실을 가득 메웠다.


“I love you.”


갑자기 지진이 났는지 축구부실이 마구 흔들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곰인형의 얼굴이 앞뒤로 세차게 움직였다.


내 생각에는 저 곰인형이 컨테이너로 만든 축구부실을 붙잡고서 마구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한 채 말이다. 마치 닭장에 갇힌 기분이랄까. 곰인형은 파르르 떨고 있는 우리의 반응을 보면서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루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카지노 게임를 달래고 또 달랬다. 우리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서로를 꼭 끌어안으면서 이런 상황을 버티려고 애를 썼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우리가 지쳐서 잠이 든 건지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기절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눈을 떴을 때 축구부실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빗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아기처럼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한겨울의 이불보다도 훨씬 더 따뜻하고 보드라운 카지노 게임의 체온과 감촉이 느껴졌다.


우리는 곰인형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문이 있는 벽 구석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때문에 아직도 그것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몸을 기울여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그녀를 깨우기가 싫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속마음이 밖으로 새어 나왔는지 그녀가 잠에서 깼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입술로 내려갔다. 시선이 다시 올라왔지만 우리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지 얼굴이 화끈거렸고 심장이 마구 날뛰기 시작하였다.


“그루야.”

“희진아.”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해.”

“아냐, 너부터 말해.”


카지노 게임는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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