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늘은 그녀가 가리킨 곳을 힐끗 보더니 몸서리를 쳤다. 나도 그곳을 보았다가 저건 아닌데 싶었다.
그곳은 바로 ‘귀신의 집’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귀신의 집 두 번째 이야기’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또 뭐냐고! 게다가 공포 영화도 안 보는 내가 저길 갈 리가 없잖아, 하는 표정을 강하늘이 짓고 있었다. 물론 나도 같은 표정일 것이다.
하지만 송희는 여전히 손을 든 채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입술도 삐쭉 튀어나왔다.
“아, 그래그래, 가자, 가! 하늘아, 가자, 가는 거야.”
“예? 하지만 저는…….”
강하늘이 뒷걸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나는 그의 얼굴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가야 해. 우리는.”
그의 슬픈 표정은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물론 그도 내 얼굴을 통해 자신의 표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송희는 벌써 신이 났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먼저 걸어갔다. 이제 막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아이처럼 말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걷는 우리 둘은 이미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빨리 오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울며 겨자 먹기로 뛰어갔다.
“쌔, 쌤, 방금 사람 비명카지노 게임가…….”
“그래. 누가 죽은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남녀 할 것 없이 들리는 비명카지노 게임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송희는 죽긴 누가 죽냐고, 얼른 안 들어가면 자기한테 죽는다며 강하늘을 끌어당겼다. 나는 방관자처럼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려는데 송희의 다른 손이 나를 꼭 잡고 있었다. 결국은 나도 그렇게 끌려갔다.
심장이 세 번은 멈췄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옥행 열차에 탄 기분이었고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수명이 점점 더 짧아지는 느낌이었다. 강하늘과 나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그런 전우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한단다. 일명 ‘거울의 방’이라고 미로 찾기인데, 스케일업을 했다며 자신 있게 걸어 놓은 문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떼어 내어 바닥에 묻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송희가 가장 먼저 씩씩하게 들어갔고 조금 뒤에는 강하늘이 거의 반 울먹이며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는데…… 정신 줄 아니, 마음을 비웠다.
암막 커튼 사이로 다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안에는 온통 벽으로 가득했다. 거울로 된 벽도 있었고 유리로 된 벽도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붉은빛과 푸른빛이 감돌았다. LED 조명과 뿌연 연기가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천장과 바닥은 암흑처럼 깜깜했다.
진짜 뭐 하나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우주 괴물 같은 거 말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가장 기분이 찜찜했던 건 이곳이 백색 소음으로 가득했는데 그 카지노 게임가 다른 카지노 게임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내 연기가 점점 짙어지더니 꼭 카지노 게임가 가득한 곳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짙은 카지노 게임 사이로 깜빡거리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불빛이 조금씩 드러났는데, 그것은 마치 카지노 게임 가득한 바다 한가운데서 희미하게 비치는 등대 불빛 같았다.
이쯤 되면 드라이아이스를 좀 줄일 만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카지노 게임의 농도가 계속해서 짙어지는 것이 LED 불빛마저도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이제는 무릎 아래 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온도가 낮아서 그런지 싸늘한 기분이 들었고 등골까지 오싹한 게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쿵! 하는 카지노 게임가 울렸다. 누군가가 벽을 쳤거나 혹은 벽에 부딪혀서 그런 카지노 게임가 난 것 같다.
미로를 헤매고 있는 동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왠지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고나 할까. 늪에 사는 악어가 나를 슬금슬금 쫓아오는 느낌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입을 쩍 벌리고 나를 확 깨물 것만 같았다. 바닥이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그 속에 진짜 악어가 있다고 한들 내가 알 길이 없었다.
여전히 카지노 게임는 치이이익 하는 백색 소음만이 가득했다.
거울인지 유리인지 모를 벽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한번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내 얼굴을 보고도 놀랄 수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벽을 따라 걷다가 카지노 게임가 살짝 걷히면서 유리벽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벽 건너편을 보고자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누군가의 손바닥이 탁! 하며 내가 얼굴을 대고 있는 유리벽을 치는 게 아닌가? 정말이지 이때는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조금 뒤 그 손바닥은 다시 카지노 게임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카지노 게임는 사그라질 듯하면서도 다시 살살 피어올랐다. 카지노 게임가 완전히 걷힐 때까지는 출구를 찾는다는 게 쉽지는 않아 보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친 적이 아직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거울 너머로 울리는 소리라든지 유리 너머로 비친 손은 몇 번이고 보았다. 하지만 이곳이 정말 넓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런 건지 좀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누가 갑자기 나타날까 봐 걱정인 게 아니라 누구라도 못 마주칠까 봐 걱정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쿵! 하는 카지노 게임에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