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 : 200자 원고지 17장
첫사랑이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쓰는 말인 줄 알았다.
공부와 담쌓고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내게, 느닷없이 대기업을 퇴사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촌형의 행보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여파로 내 마음엔 호주로 떠나고픈 열망이 자라나게 되었다. 이후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군생활 도중 영어를 공부하고, 전역 후엔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거기서 난, 나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감히 나 따위가 사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품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예뻤고 몸매도 좋았다.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평소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알바 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아침 일찍 수영을 마친 후 출근하는 나의 일상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라는 말을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서 들었다. 우린 전생에 다시 만나잔 약속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게 지냈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걔가 남자친구를 그렇게 좋아한 건 처음 본다."라며 말했다. 난 무료 카지노 게임와 손 잡고 다닐 수 있단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만을 위한 노트를 사 매일 일기를 적을 정도로 무료 카지노 게임를 사랑했다.
그런데 무료 카지노 게임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호주 워킹 홀리데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덕분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와 떨어지긴 싫었지만 몇 년 동안 준비한,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기회를 저버릴 순 없었다. 그나마 출국 날짜를 최대한 미루고 미뤘다. 그럼에도 무료 카지노 게임와의 관계가 짙어질수록 야속한 세월은 가속도가 붙는지, 헤어짐의 순간은 금세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이상 미루면 가뜩이나 비싼 비행기 값이 두 배로 불어났기에 영혼을 깎는 심정으로 한국을 떠났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재밌었다. 해외를 경험할수록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고들 하더니, 내 머릿속에서도 미묘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번은 맨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봤는데, 그 장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나 자신에게 놀란 적이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이상한 사람 정도로는 생각했을 텐데 호주에선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런 내면의 변화를 몸소 느끼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녀와의 연애전선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희한하게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서 그녀는 내게 더 잘해주는 듯했다. 먼저 카톡하는 일이 잘 없고, 본인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은 더더욱이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일일이 사진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연락해 준 덕분에 난 그만큼 안심하고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제넘는 행복을 취한 데에 대한 값을 치를 때라도 된 듯, 악몽보다 악몽 같은 순간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나의 현실을 좀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계기는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의 연락은 날이 갈수록 그 간극이 우주가 팽창하는 만큼이나 멀어졌다. 늦어도 2시간 이내엔 답장이 오곤 했던 게, 어느 순간부터는 2시간은커녕 6시간이 지나도 한 번 올까 말까였다. 마음이 멀어진 건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벌어지고 있는 상황만으로는 누가 봐도 마음이 멀어진 사람처럼 무료 카지노 게임는 굴었다. 연락이 왜 이렇게 늦어지냐고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워서 그러질 못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연락 안 한다고 보채는 남자친구가 될 것 같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나마의 희소식은 있었다. 겨우 반나절에 한 통 도착하는 답장의 내용이 너무 쌀쌀맞진 않다는 점. 비록 예전에 비해 내용이 많이 짧아졌긴 했지만. 어학연수 기간이 반 년 조금 더 넘게 남아서 그녀를 만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리고 참아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이나 그녀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국제전화나 카톡밖에 없는 이런 환경에서 관계가 틀어진다면 속수무책으로 버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그동안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연락을 잘 못했다고. 조금 더 기다리면 상황이 괜찮아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사랑한다고.
연락이 없는덴 나름 이유가 있겠지라는 희망과, 당장에 차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 불길함이 1:9의 비율로 차 있던 마음의 전세가 드디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그렇지. 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잘만 사귀던 우리 관계가 느닷없이 끝날 리는 없었다. 안 그래도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게 장점보단 단점이라고 여겨왔는데, 그 버릇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맘고생을 하느라 그리 앓게 될 줄이야.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연락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한 달이 더 지났다.
국제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또 한 달이 지나갔다.
무료 카지노 게임와의 추억은 한낯 꿈이었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알바하러 가고, 알바가 끝나면 해가 질 때까지 바깥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벤치 같은 곳에 앉기라도 하면 무료 카지노 게임 생각이 하염없이 차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작정하고 울게 아니라면 지칠 때까진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하늘에 달이 걸리면 Bottle shop에서 미리 사놓은,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선사하는 대가로 값이 가장 싼 와인의 힘을 빌려 그날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렇게 두 달 동안을 반 좀비처럼 지냈다.
결국 난 비자의 남은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행기로 18시간을 날아가 한국땅을 밟자마자 고속버스로 4시간을 이동하여 집에 도착했다. 짐도 풀지 않고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도 않은 채로 무료 카지노 게임를 찾아갔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덤덤하게 나를 맞았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이유 없는 이별통보라는 비수를 내 가슴에 꽂았다.
석 달이 지났다.
여전히 난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대체 언제부터 어쩌다가 그리 떠나가게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무릇 첫사랑이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여하게 될 훈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경우엔 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영원한 나의 첫사랑이 되어버렸다. 이번 생애 그녀만큼 커다란 고통을 내게 안겨줄 인연은 더 이상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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