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준 Nov 16. 2024

아버지의 백과카지노 쿠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차게 활용된 카지노 쿠폰이었노라 우기고 싶은~

뉴 밀레니엄 시대에 태어난 청년들은 백과카지노 쿠폰(百科事典)을 모른다. ‘백과카지노 쿠폰이라고 불리는 책’을 알 필요가 없어진 시대가 된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던 지난 세기의 사오십 년 동안 시대의 역할을 다 하면서 빛나게 존재해 있다가 인터넷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 문화와 물건을 생각한다. 그중에 어느새 슬금슬금, 혹은 돌연히 사라진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단연 백과카지노 쿠폰을 들고 싶다.

웬만큼 사는 가정집 서가엔 금박으로 장식된 두툼한 책등을 나란히 하고 가지런히 꽂혀 공간의 품격을 높여주던 백과카지노 쿠폰이 있었다. 펼쳐지길 기다리며 묵묵히 접혀 대기하던 이 카지노 쿠폰들은 90년대 언젠가부터 집집마다 처치 곤란한 전집이 되었고 세기가 바뀌자 헌 책방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폐지로 넘겨야 하는 퀴퀴한 종이 뭉치가 되었다.


우리 형제들, 특히 나에게는 백과카지노 쿠폰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백과카지노 쿠폰은 드라마틱하게 출현했다.

초등학교 3,4학년쯤의 기억인데 백과카지노 쿠폰을 처음 보던 날의 풍경이다. 퇴근하는 아버지의 자전거 짐받침에 두툼한 봉투가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두껍고 묵직한 책 한 권이 담긴 딱딱한 갈색 종이 갑을 봉투에서 꺼내 놓으셨다.

“모두 이리 와서 봐라. 백과카지노 쿠폰이 나왔다. “

세계백과대카지노 쿠폰 제1권이었다. 아버지는 총 12권으로 발간될 새로운 차원의 백과카지노 쿠폰을 큰 맘먹고 예약 주문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 ‘너희들이 클 때까지 두고두고 볼 책이니 책장 넘길 때 찢어지지 않게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이르셨다.

자식들도 아직 어리고, 교원 봉급으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을 꽤 비싼 책의 구매 예약을 아버지께서 왜, 어떻게 하셨는지 커서도 물어보지 못했지만, 할 수 없이 저지르셨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어머니의 언짢은 표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박봉이라도 정기적인 급여수입이 있는 직장인은 가느다란 인연의 지인들로부터도 이런저런 부탁으로 시달릴 일이 있던 시절이었다. 귀가 얇으셨거나 아니면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필수품으로 예견하셨을 수도 있다.


한 달에 한 권씩 순서대로 발간 예정인 백과카지노 쿠폰의 첫 번째 권을 아버지께서 받아온 그날, 밥상의 그릇을 치운 후에 밥상에 펼쳐 놓은 백과카지노 쿠폰 위로 형제들의 머리통이 서로 부딪혔다.

‘ㄱ-가’부터 시작하는 백과카지노 쿠폰은 호기심으로 충만한 형제들의 획기적인 보물창고이자 아주 폼 나는 놀잇감이었다. 초등학생에게 백과카지노 쿠폰은 그냥 신기하고 두꺼운 책이었을 뿐 무엇인가 모르는 것을 찾아보기 위한 카지노 쿠폰 일 수는 없었다. 고학년인 작은형에겐 맨 앞장부터 외울 듯이 읽어나가야 할 새로운 참고서였고 동생들도 백과카지노 쿠폰에 실린 컬러 사진과 삽화를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보는 대로, 읽는 대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그대로 쑥쑥 머릿속에 들어오는 시기에 두서없이 세계의 온갖 지식이 형제들의 머릿속에 가나다 순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교육적으로 바람 직 했을지는 모르겠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가끔씩 내 입에서 나오는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지식에 놀라는 것은 백과카지노 쿠폰에서 머릿속으로 다운로드해서 장전해 놓은 잡학 조각들이 두서없이 발사되는 오발 사고였고, 수준에 맞지 않는, 엉뚱한 흰소리로 치부될 주장을 펼쳐 바보가 되는 부작용도 종종 경험하게 했다. 그중에 기억나는 것 하나가 ‘쟁기질을 하는 동물’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모두들 '소' 할 때 큰소리로 '말도 쟁기질합니다' 했다가 논쟁이 붙었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말이 쟁기질 하는 것을 백과카지노 쿠폰에서 사진으로 봤기 때문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선생님은 말은 달려 나가기 때문에 멍에를 메고 쟁기질은 할 수 없다고 정리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말도 쟁기질을 합니다'며 중얼거렸다. 애들은 모두 웃어대며 놀렸고 선생님은 고집 센 녀석이라며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거라 하셨다.


소년들에게 백과카지노 쿠폰을 펼쳐 읽으며 노는 것은 빛나는 지적(知的) 해찰의 시간이었다. 진귀한 물고기와 처음 보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가득 찬 페이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나라들의 울긋불긋한 국기들, 외국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들도 죄다 보여주는 것이다.

‘ㅎ-하’으로 시작하는 12번째 책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가져올 다음 권을 한 달 한 달 기다리느라 일 년이 훌쩍 갔다. 시들만 하던 지식 습득열은 매번 다음 권이 도착할 때마다 새롭게 다시 불이 붙었다.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샘’이라는 그림의 천연색 사진을 통해 형제들과 많이 다른 소녀의 누드를 신비하게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 달에 가져온 백과카지노 쿠폰을 몇 번씩 섭렵한 형제들은 어린 활자 중독자들이었다. 책이 귀하던 때 아버지의 백과카지노 쿠폰 구입은 결코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었고 오히려 아들들을 위해 가치 있는 펀드에 성공적인 장기 투자를 하신 셈으로 고해드리고 싶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백과카지노 쿠폰으로 다시 찾아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백과카지노 쿠폰의 결정적인 설명에는 한자(漢字)가 섞여 있게 마련이었는데 형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도 옥편(玉篇)까지 찾아가며 기를 쓰고 가르쳐 주었다.

그 백과카지노 쿠폰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화려하고 방대한 규모의 백과카지노 쿠폰이 여러 종이 나오고 개정판도 계속 나왔지만 우리 집에서 처럼 그렇게 알차게 활용되고 학습 교재가 된 백과카지노 쿠폰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로도 드물 것이라고 믿는다. 어릴 적 왜 그러셨는지 일 삼아 백과카지노 쿠폰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작은형도 이제는 안 계시니 백과카지노 쿠폰의 생각과 함께 더욱 그립다.


시대가 바뀌면서 소리 없이 사라진 것 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 조카들에게 과거 회귀적인 고리타분한 꼰대 어른으로 비칠까 켕기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세계 대백과카지노 쿠폰, 동아원색 대백과카지노 쿠폰, 브리태니커 백과카지노 쿠폰 등 한 시대 어지간한 집에는 한 질씩 모셔져 있던 백과카지노 쿠폰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게 된 것은 어쩌면 시대 전환기의 상징적 사건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백과카지노 쿠폰을 담은 CD ROM마저 짧은 수명으로 사라졌고, 인터넷 포털의 사각형 창이 모든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된 시대, 챗지피티가 친절하게 답해주는 인공지능시대를 우리가 살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형제들도 차례로 가정을 꾸리고 나도 아날로그의 끝물이던 80년대 후반 32권이나 되는 동아 세계 대백과카지노 쿠폰을 거액을 들여 할부로 들여놓으면서 아차 싶었다. 미래를 보는 눈이 없었으니 안 사도 될 것을 샀다는 후회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버지의 백과카지노 쿠폰을 한 달 한 달 기다려 한 권씩 받아 보던 때가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일시에 책장을 꽉 채우는 전집으로 들어앉은 위풍당당한 백과카지노 쿠폰은 ‘ㄱ 가’부터 읽어 나갈 엄두를 낼 수 없는, 필요할 때만 해당 항목만 찾아서 확인해 보는 그냥 방대한 카지노 쿠폰일 뿐이었다. 그 두툼한 32권은 가족 일상의 구경꾼처럼 거실벽의 일등석에 나란히 서서 아이들이 펼쳐주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백과카지노 쿠폰도 십여 년 만에 집을 줄여 이사하면서 아쉽지만 공짜 폐지로 쓰레기 수거장에 아파트처럼 쌓아놓고 버리고 가야만 했다.


눈을 감고 아득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1970년 새해 아침에 배달된 동아일보를 방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 놓고 신문 가에 빙둘러서 형제들이 앉거나 엎드려 들여다보고 있다. 신문 전지 크기로 ‘삼십 년 후 세계’에 대한 과학적 상상이 만화로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와 온 형제들이 신문에 가득 그려진 공상의 세계를 토대로 우리 수준의 상상의 나래를 부록처럼 덧붙여 재미있게 떠들었다.

참으로 아득한 오랜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지만, 자가용과 티브이가 집집마다 있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 가는 그림,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달에 수학여행 가는 그림, 로봇이 심부름하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 모두의 손에 들린 휴대폰은 정작 그 상상 만화엔 없었다. 그리고 ‘인류 지식의 보고 백과카지노 쿠폰’이 가정집에서, 도서관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언급도 없었다.

사람들 마다 손에 백과카지노 쿠폰을 쥐고 다닐 줄 누가 알았겠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