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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Nov 20. 2023

카지노 쿠폰 당신은 당신의 문을 열어야 해요

벌써 1주기라니

“흰머리야, 경우 형이 오늘 아침에 눈을 감으셨단다.”

“야 꽁지머리! 너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야?”

“누가 아니라냐. 네가 찰랑머리한테는 알려 줘라. 이 형은 통 기운이 없다.”

꽁지머리는 두드리던 자판을 밀어버렸다.

“꽁지머리야, 이게 무슨 말이야? 경우 형이 돌아가시다니.”

“그렇지? 너도 안 믿기지?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경우 형은 국문과의 기인奇人이었다. 통이 크고, 발이 넓어 공대, 농대뿐만 아니라 문리대와는 거리가 상당이 떨어져 있던 상대까지도 휩쓸고 다녔다. 국문과를 다니는데 왜 공대까지 가서 그 어려운 공대 전공과목 수업을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공대에 홍일점 여학생이 있었는데 말술을 마신다는 그 화통함이 경우 형을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때에는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공수부대에 잡혔는데 운 좋게도 그 군인이 술친구였기에 풀어주었다는 뒷이야기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휴학을 밥 먹듯이 하였기에 14학기를 다니고 9년 만에 졸업했었다. 시험을 보다가 작품이 떠오르면 시를 써놓기도 하고, 시험지를 내던지고 나가버리는 탓이기도 했다.

카지노 쿠폰 형이 졸업을 못했던 것은 전공필수과목인 <소설창작론학점을 못 받았기 때문이었다.답안 대신소설의 첫머리를 써놓은 시험지를 들고나가는 경우 형을 교수님이 붙잡았다.

“자네 이번에도 시험지를 제출 안 하면 올해도 졸업 못 하네. 앉아서 답안을 쓰고 나가게.”

“교수님, 소설창작 수업끝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좋은 작품이 떠올라서 쓰려고 하는데 교수님이 막으시는 겁니다. 나가서 쓰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렇게전공필수인 <소설창작론은 2년 동안 경우 형을 대학생으로 붙들어 놓았다.


경우 형은 시골의 폐가에 들어앉아 2년 동안 소설을 쓰다가 갑자기 교수님을 찾아가 얌전히 수업을 들었고, 시험까지 잘 보고 졸업을 하였다. 경우 형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대해 모두들 궁금해했으나 형이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저희가 형님이랑 밥 먹은 게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믿어지지 않아요”

꽁지머리는 형수님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니까. 저녁 식사 잘하고 당신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침에 가보니까. 흑흑흑 책상에 엎드린 채…….”

“평소에 아픈 곳도 없다며 건강하다고 늘 큰소리쳤었거든요.”

찰랑머리가 경우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형수님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한 번 봐.”

형수님은 두꺼운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익혀 보았었던 경우 형의 낯익은 글씨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늘 세상과 맞서 살아왔다. 세상은 늘 나에게 비수를 들이대었는데, 상을 향한 나의 주먹은 언제나 빗나가기 일쑤였다. 작품은 써지지 않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 남은 건 패배의식뿐이다.’


'서정주를 키운 게 시가 아니고 바람이었듯이,나를 키운 건 <소설창작론이었다. 그리고 혜경이었다. 그것들은 나를 흔들어 깨운 라벤터laventer(파울로 코엘료의 언금술사에 나오는 지중해에서 부는 강력한 동풍)였다. 나는 살아야겠다.'


‘대학을 졸업해야겠다.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어야겠다. 그것은 혜경이가 말하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세상의 문을 열어야겠다. 김 교수님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세 명의 늙은이들은 가슴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경우 형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었던 이유가 형수님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알다시피 형님이 좀 유별나잖아. 우리는 정말 운명적으로 만났었지.”

형수님은 꽁지머리가 따라 준 술잔을 들어 한 번에 마시고 나서도 한참을 말이 없었다.


경우 형은 시골의 폐가에 들어앉아 써지지 않는 소설과 강렬하게 맞싸우고 있었다.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었으나 형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소설을 써 들고 김 교수님에게 가려고 했다, 그러나 형은 가슴을 찔러오는 예리한 아픔에 뭉개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경우 형은 시골 고등학교에서 국어 강사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에는 교원자격증이 없어도 강사라는 이름으로 교단에 설 수 있었다.


“당신들 중에 나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끝나고 남아도 돼.”

출근한 지 보름후에 열린 환영회 석상에서 경우 형은 앞에 앉아 있는 여선생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었다. 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이란 말인가. 그러나 경우 형은 늘 이런 식이었다.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봐. 그 무례하고 불한당 같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마음을 파고 들어와 버리는 거야. 어쩌면 보름 동안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축적이 되었던 게지. ”

“거기까지는 저희가 잘 알죠. 형님이 형수님을 만난 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행奇行들이 국문과에서 전설처럼 회자膾炙되었으니까요.”

찰랑머리가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노트를 보면 형님이 김 교수님을 찾아간 것은 다 형수님 때문이었다는 건데요.”

“형수님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군요. 형님을 좀 밀어냈다던가. 뭐 그런.”

흰머리와 꽁지머리가 누가 먼저랄 것도 끼어들었다.

“많이 밀어냈지. 아주 심할 정도로.”


경우 형은 회식 자리가 파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혜경을 자신의 거처인 폐가로 데려갔다. 그 음습하고, 스산한 방에서 경우 형은 혜경의 옷을 벗겼다.

“내 옷을 벗기는 거야 아무것도 아녜요. 그보다는 당신을 휘감고 있는 오만과 편견을 먼저 벗으세요. 그것이 당신을 덮고 있는 한, 당신은 도망자일 뿐이고,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당신의 문을 열어야 해요.”

“오만과 편견? 내가?”

“내가 그 터널에서 힘겹게 빠져나왔던 사람이에요. 내가 오늘 당신을 따라 여기에 온 것은 당신이 그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혜경은 경우 형을 받아들였고, 경우 형은 혜경을 파고들었다.


“형님은 형수님 앞에서 무너졌군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누구에게 무너졌다는 것을 늘상 감추고 있었고.”

“무너졌다기보다는 자신의 카지노 쿠폰 조금 열었다고 해야지. 그 사람은 마음이 너무 여린 사람이야. 겉으로는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게 다 자신을 감추려는 몸부림이었.”

“형님은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씀씀이도 컸고.”

꽁지머리는 대학연극반 시절 동고동락했던 6년 선배인 경우를 떠올리며 물었다.

“찢어지게 가난했어. 홀어머니가 아들 둘을 어렵게 키웠는데 고등학교 때 자기 형이 감당하지 못할 사건을 일으켜 감옥에 가면서 그 사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문을 닫아버린 거야. 형이 출소 후 머리를 깎고 출가하면서 그 사람의 문은 더욱 견고해졌던 거야.”

“그럼 우리가 본 것은 빈 껍질이었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 사람의 일부인 거지. 말하자면 중심이 아닌 변죽이었다고 할까.”

형수님의 얼굴에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아까 노트를 보니까. 김 교수님에 관한 내용이 더 있더라고.”

꽁지머리가 소주잔을 털어 넣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 뭐라고 썼는데?”

“뭐, 잘못했다는 반성문이야?”

찰랑머리와 흰머리가 궁금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김 교수님을 뵈었다. 교수님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자네는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이 먼저야. <소설창작론 학점은 지금이라도 줄 수 있네. 그러나 소설은 자신과 자신의 걸음을 덜어내고, 또 완전히 빠져나와야 쓸 수 있네. 나를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지. 이제 발걸음을 떼었으니 잘한 거야.‘


혜경이 말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교수님이 말씀하신 ’자신과 자신의 걸음을 덜어내‘는 것이 과연 해답일까. 산으로 들어가 버린 형이 남겨놓은 시간들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꽁지머리는 벌써 일 년째 품고 있는 생각의 덩어리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형을 짓누르고 있는 무게가 대단했네. 그 무게로 인해 형이 소설을 쓸 수가 없었구나. 나도 빨리 그 무게를 벗어버려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은둔의 세상으로 가야 할 텐데. 죽기 전에 마무리해야 하는데.”

꽁지머리가 근엄한 분위기를 풍겨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고, 경우 형의 명복이나 빌자.”

흰머리가 너스레를 떨면서 판을 흔들었다. 가라앉는 분위기를 추켜올리려는 심산이다.

“형님이 노트를 남긴 것은 꼭꼭 싸매두었던 자신의 세상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겠지? <소설창작론 수업받은 거 말이야.”

꽁지머리는 술잔을 들다 말고,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경우 형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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