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진기행을 다시 읽고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靑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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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카지노 쿠폰의 이정표를 보며 지독한 안개와 그 속 무카지노 쿠폰청년을떠 올린다. 무진은 이렇다 할 평야도 없고 바다로 나가려면 몇십 리 뻘을 건너야 해 항구조차 없는 동네. 먹고 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쉽게 답을 내지 않는, 명산물이라고는 연일 산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배 보내는 안개뿐인 동네였다. 이런 애매하고 평가 박한 동네에 오륙만의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아 내는 곳. 오늘날 서울의 모든 동네 같은 모습으로 부끄러울 일 없는 곳에 무위의 청년을 두고 온 것이다. 그 어둡던 청년의 그곳을 다시 찾아든 이유는 오로지 무위의 카지노 쿠폰을 찾기위함이었는데, 끝내 길 뒤로 부끄러움을 남기고 떠나는 일은 일종의 쓸모가 되었다. 무위의 허무함일지라도 어떤 무용의 소용이 되는 그런 삶을 누구나 살아 내듯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 사는 일에 아무런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소설을 읽고 나서 앓지 않은 사람의 삶은 오롯할 수 있을까. 1박 2일의 짧은 일정에 기행이라는 이름이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곳에 두고 온 모든 윤희중이 품게 되는 속앓이가 늘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그 부끄러움은 그저 무위의 날을 보내던 내 안에 있는 청년을 만나서도 아니고, 그저 달아 오른 욕정에서 전보 핑계로 도망쳐서도 아니었다. 무진이란 애매하고 평가 박한 동네가 실제로 있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남아있음만이그저부끄러운 일이었다. 허무하게도.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는' 안개처럼 무카지노 쿠폰 허무함은 허상보다는 뚜렷하지만 실체보다는 흐릿한 모습으로 눈앞을 어질 어질 지나칠 뿐이었다. 햇볕이 주는 밝음과 서늘한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이 실어 나르는 소금기를 섞어 수면제를 만드는 상상은 윤희중만의 무위공상이 아닐 터. 사실 그 수면제는 다 만들어져 무위의 소용을 지운 채 삶을 던져 버렸는지도 모르지. 무진의 바닷가 그 술집 작부의 시체처럼.
내가 범한 것은 후배의 순진한 연정도 아니었고 어떤 개인 날이 떠오르는 순정의 순결도 아니었고 그저 안개를 벗어나 시끌벅쩍한 서울로 달아나려는 그녀의 조바심이었을 뿐. 그것이 무진의 안개를 벗어나며 심히 부끄러워진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심히 부끄러운 이유는 산다는 일이 짐짝처럼 무겁고 성가시게 느껴져, 사람이 살지도 않는 그저 관념 속에 있는 무진으로 옮기는 발걸음에 이유붙임이 없기 때문이었다. 살아 내는 일도 그만두는 일도 허무하지만 쓸모 있는 일. 그 무위의 소용에 대하여 한 번도 솔직한 적 없는 내 지난날의시계가 심히 부끄럽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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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나를 오늘의 나로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겠다는 다짐의 편지는 안갯속 그 무진에 찢어 버린 채, 그렇게 무위의 날을 청년의 시간이라 억지 가둔 채, 현실의 나를 부르는 곳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그 서글픈 허무한 인생의 비참함. 잠시 수면제 몇 알을 쥐어 삼킨 꿈속처럼 무진은 그저 작은 푯말에 안녕을 고할 뿐이다.
한 번만 더 긍정하기로 한 내 작은 일탈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앞날에 대한 예견일까 아니면 그 지루한 청년의 날들에 대한 기시감일까. 내 마음속 무진을 지웠다 다시 써내리다 또다시 지웠다 하는 뫼비우스 띠 위의 기행같이 돌고 돌아 나와도 새로운 문장 위에 머문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몇 번을 고쳐 쓴 문장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