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계절을 지나며
안녕하세요, 문득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망설여졌어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께 드려도 되는 말일까, 잠시 생각했거든요. 지혜롭고 멋진 할머니 또는 영원한 언니로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주셨을지 모르는 당신이. 어디에 계시든 '안녕'하시길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들에선 보통 이니셜을 쓰는데 작가님 이름은 그냥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작가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요. 제가 사랑하는 책 <목마른 계절 이 책을 한 5번쯤은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유럽에 오면서,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이사 오면서 이 책을 다시 찾을 수 없어서 슬퍼요. 물론 이 책을 다시 살 수 있지만, 이젠 고인이 된 사촌언니가 직접 금색과 회색이 섞인 포장지로 감싼, 언니가 남긴 연필 자국이 있는 그 책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제가 처음 카지노 쿠폰을 알게 된 건 엄마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 엄마가 가끔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주셨는데 그 레스토랑 이름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였습니다. 카지노 쿠폰의 책 제목. 그 이름을 따라 읽으며 엄마 무슨 식당이 이름이 이래?라고 물었고 엄마는 책 제목이야..라고 얘기했어요. 아직도 하얀 벽돌 건물과 그 이름 앞에 서있던 저를 생생하게 기억해요. 그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은 기억에 없는 데 말이죠.
엄마의 책 중에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있었는데 전혜린 작가님이 번역하신 책이었어요. 그 책은 글씨가 세로로 쓰여있어서 읽다가 포기했고, 성인이 된 후에 다시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작가님을 잊고 지냈는데요. 저의 20대에 큰아버지의 딸, 사촌 언니가 대학생 때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언니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책들을 주고 갔는데요. 그중에 작가님의 <목마른 계절이 있었죠. 얇은 책이라서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언니는 그 뒤에 얼마 안돼서 영영 가버렸어요. 제가 처음 겪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기에 충격이 꽤나 오래갔던 것 같아요. 언니가 준 책들엔 연필로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언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내내 믿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지금은 세상에 없는 언니가 건네준 책을 꼭 쥐고 읽었어요. 그녀도 여러 번 읽었을 법한 그 책은 제게 아주 특별했죠. 아주 사적인 일기처럼 쓰인 글에서 느껴진 잔잔한 파동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어요.
이 책 덕분에 20대부터 독일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되었고, 슈바빙을 꿈꿨고 나도 언젠가 독일 또는 유럽에 살고 싶다.. 고 희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기 속엔 고통에 대한 묘사가 상당 부분 차지하죠.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번역일을 해서 힘들게 돈을 벌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도움을 받고.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평탄하게 흐르지 않고. 등등.
그런데도 그 어떤 고귀한 낭만 같은 것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어요. 카지노 쿠폰은 왜 그렇게 많은 진리를 알고 있었으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을까요? 왜 딸에게 전한 유언 같은 말이 '책을 많이 읽지 마'라는 말이었을까요. 카지노 쿠폰은 제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슬프다..'라는 편견을 갖게 해 주셨죠. 그래서 두려움에서 비롯된 제 무지함에 감사할 때가 있어요.
다시 한번 전혜린 작가님을 떠오른 건, 대학원 시절 제 작품 발표를 하고 나서였어요. 발표가 끝나고 질문을 받았는데, 한 괴짜 선배가 '그래서, 너의 최종 꿈이 뭐냐?'라고 물었어요. 집시처럼 세계를 좀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는 대답을 했고, 그 순간 왜 하필 '집시처럼'이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저도 몰랐어요. 교수님은 '집시'처럼 사는 건 좀 위험하니 다시 생각해 봐라..라고 해서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돌아보니 내가 그때 '보헤미안'을 실수로 말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목마른 계절 목차에서 '집시처럼' 챕터를 발견한 거예요. 무의식이란 정말 놀랍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 외국에서 (집시처럼) 고난의 나날은 아니지만 저만의 목마른 시간들을 잘 통과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들려준 계절들 속에 그 비슷한 외로움을 안고 때론 엉엉 울면서 어두운 거리를 걸은 적도 많았지만. 매 계절들을 제대로 보고 느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득 작가님이 제 가까이에 있다면 제게 어떤 말을 해줄까.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며 서로 '다 알아..'라는 눈빛을 주고받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고즈넉한 바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뮌헨의 거리에서 멀어져 가는 작가님의 목마른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충만해지는 생을 느끼게 될는지도요.
카지노 쿠폰, 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이건 제 판단이라기보다 제 가족 중 한 사람이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인데요.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중되는 무게가 꽤나 컸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패배'나 '비극'으로 보는 당신의 죽음을, 어떤 이들은 그조차도 카지노 쿠폰의 방식이었다고 말해요. 끊임없이 스스로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들 때문에 고독했고 죽음마저도 그렇게. 카지노 쿠폰의 죽음이 마치 너무도 깊은 고통 끝에 내린 ‘조용한 안락사’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제 오해일까요?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 수 없죠. 제 자신도 이렇게 복잡하고 복합적이고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카지노 쿠폰의 책만 알았던 제가 어떻게 카지노 쿠폰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제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지나며 당신의 글이 내내 저와 함께 통과해 왔으니까요. 작가님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당신의 글을 꼭 쥐며 하루를 잘 지나는 제가 여전히 팬심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부디 머나먼 곳에서 비로소 조금은 웃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풍요로운 세계의 한가운데서.
목마른 계절을 사랑하는
당신의 오랜 팬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