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선 Apr 04. 2025

과거의 카지노 쿠폰 만나러 가는 길

[가족과 관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딸아이가 넘어져 울 때

나는 어릴 적

무릎이 까져 울던 내가 떠오른다

딸아이가 서툰 글씨로 일기를 쓰면

나는 삐뚤빼뚤 글자를 배우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어떤 꿈을 꾸었고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들에 상처받았을까?


바쁜 하루 속에서

과거의 나는 점점 희미해졌지만

딸아이를 보며 다시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었을까?


그 질문을 안고

나는 오늘도 딸아이와 함께 웃는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카지노 쿠폰 만나러 가는 중이다


카지노 쿠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은 나 자신을 오래된 앨범 속 사진처럼 꺼내 들여다보게 된다. 딸아이가 넘어져 울 때, 나는 무릎이 까져 엉엉 울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딸아이가 서툰 글씨로 일기를 쓰면, 삐뚤빼뚤 글자를 따라 적던 내 어릴 적 손이 겹쳐 보인다. 아이의 하루하루는 낯설지만, 동시에 낯익다. 내가 걸어온 길을 아이가 다시 걷는 것 같아, 그 걸음을 조용히 바라보게 된다.


어릴 적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말을 들으면 상처받았고, 무엇에 웃었을까.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나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 하지만 아이를 통해 그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난다. 딸아이가 나를 닮은 표정을 지을 때,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문득 가슴속을 흔든다. “아빠, 나 이거 잘 안돼.” 조그만 손으로 연필을 쥐고 종이에 꾹꾹 눌러 쓰는 모습.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들여다본다. 글씨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지우개 자국들.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도 그랬다. 똑같이 틀릴까 봐 조심했고, 조금 더 예쁘게 쓰고 싶어서 지우고 또 지웠다. 연필 자국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때마다 괜히 속상했던 마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딸아이의 공책을 보며, 그 흔적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애썼다는 증거니까. 다 지우지 못한 그 자국들이 오히려 그 순간의 진심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어릴 적 내게 뭐라고 말해줘야 했을까. “괜찮아. 흔적이 남아도 돼. 그만큼 너도 많이 애쓴 거니까.” 그 말을 나는 나에게, 그리고 지금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


딸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하지만 그 손을 내미는 순간, 나 역시 어릴 적 그 자리에 있었던 기억이 스쳐 간다. 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붙잡고 울던 작은 나. 누군가 그 손을 잡아줬을까. 아니면 혼자서 울음을 그치고 다시 일어났을까.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아직 남아 있다. 아팠고 억울했고, 하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났다는 것.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아이 앞에서 또 한 번 배우고 있다. 나는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진 어른일까. 아니, 나는 정말 어른이 된 걸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는 그저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줄 알았다. 실수하지 않고,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실수를 반복하고, 어떤 날은 아이처럼 철없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아이 앞에서는 어른인 척하지만, 그 앞에서 배우고 있는 건 오히려 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아이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딸아이는 자란다. 그 성장의 속도는 종종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어느 날은 작은 물건을 나눠주며 “이건 아빠 거야.”라고 말하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눈치를 챈다. 나는 그 모습에 놀라고, 동시에 나의 자리를 되짚어보게 된다. 내가 해준 만큼 아이는 자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아이의 성장을 거울 삼아 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아이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말을 너무 인색하게 건넨다. 왜일까. 나는 여전히 나에게 너그러워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되는 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다시 나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사랑했지만,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이를 사랑하지만, 늘 다정하고 친절한 부모가 되지는 못한다. 때로는 피곤해서, 때로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야 후회한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닫는다. 부모가 된다는 건, 결국 실수하고 다시 돌아보고, 또 한 번 마음을 다잡는 일의 반복이라는 걸.


나는 문득 부모님이 나를 안고 재우던 밤이 떠오른다. 눈을 감으면 들리던 숨소리, 따뜻한 손의 감촉. 그때는 몰랐던 그 손길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품 안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실려 있었는지를, 그 하루의 고단함을 감싸며 나를 안아주던 마음을 이제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아이의 등을 토닥일 때, 나 역시 그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 이 작은 손, 이 가벼운 몸, 이 짧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는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난다. 그때의 나를 보듬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애썼다고,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현재의 나를도 이해하게 된다. 실수투성이의 지금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나며, 지금의 나를 배우고 있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를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이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아직도 자주 흔들리고, 여전히 어릴 적의 나를 닮은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배워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배움은, 아이의 하루 속에서, 나의 실수 속에서, 그리고 오래된 기억 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딸아이와 함께 웃는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나고, 미래의 나를 준비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