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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10. 2020

야, 이 카지노 게임!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감수성이 풍부했다. 사소한 일에도 생생한 행복을 느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남들보다 뜨겁게 울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남들에게 쉬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니, 사실 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카지노 게임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나의 카지노 게임는 너무 일찍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바쁜 사람이 되었다. 삼십 대 초반, 아직 너무 젊은 나이. 사고로 남편을 잃은 카지노 게임는 아빠와 카지노 게임 역할 모두를 감당해야 했다.


매일 아침, 카지노 게임는 긴 줄에 단단히 묶은 집 열쇠를 내 목에 걸어주셨다. 차가운 열쇠 목걸이를 내 티셔츠 안에 넣어주신 다음에는 꼭 내 가슴팍을 두드려 열쇠를 확인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잘 놀다가도, 카지노 게임처럼 티셔츠를 더듬어 열쇠가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버스 벨이 손에 닿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작은 키에 까치발을 들고 팔을 한껏 뻗었다. 그것도 불안할 때는 일찌감치 벨 위에 손을 얹어두었다가 누르곤 했다.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도착하면 오직 나의 온기만이 가득한 목걸이 열쇠를 꺼내 스스로 현관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 식탁에 남겨놓은 카지노 게임의 쪽지를 따라 혼자 간식을 챙겨 먹고, 학원에 다녀오고, 저녁을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어른 없이 길을 걷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나이. 그때부터 그렇게, 아무도 없는 집을 향해 혼자 버스를 탔고, 혼자 걸었다.


카지노 게임를 기다리며 사부작사부작 놀다 보면, 어느새 아파트 베란다 큰 창의 크기만큼 짙은 어둠이 깔렸다.그때부터 나는 얼음이었다. 리모컨을 들고 거실벽에 내 등을 바짝 붙여 앉았다. 절대로 거실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등 뒤가 비어있으면 내 뒤에 귀신이 올까봐 무서웠다. 일을 끝낸 카지노 게임가 학원을 마친 오빠를 데리고 집에 올 때까지는 울리는 전화도 받으러 가지 못한 채, 오로지 리모컨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야, 이 카지노 게임!'


마음속에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가 어린 내게 가르쳐줬던 말. 평소에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딸이 걱정되어서였을까. 카지노 게임는 너무 화가 날 때는 큰 소리로 카지노 게임를 외치라 했다. 같이 연습해보자는 카지노 게임와 함께 “야!!! 이 카지노 게임야!!!!!” 하고 한껏 소리 지르다 웃음이 터졌던 말. 카지노 게임와 함께 숨 넘어가도록 웃으며 왠지 마음이 후련해졌던 그 말.


교육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어느 전공수업시간에 교수가 물었다. 화가 나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을 하는 학생에게 어떤 지도가 필요하냐고. 질문을 듣자마자 카지노 게임가 가르쳐 준 그 말이 머리를 스쳐갔다. ‘야, 이 카지노 게임!'


교수는 아이의 분노가 애정에 대한 결핍 때문이라 했다. 애정을 향한 치열한 내면의 싸움이 결국 공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맞다. 아이가 내뱉던 욕은 마음속 깊은 외로움을 대변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와 오빠를 기다리며 리모컨으로 버티던 그 시간에,화가 난 것도 아닌데 카지노 게임가 떠올랐던 이유. 내가 느끼던 감정이 무서움이라고만 하기에는, 텔레비전 앞에서 혼자 삼키고 넘긴 감정들이 너무나 뜨거웠나 보다. 교수의 질문 속 아이처럼, 그 뜨거웠던 감정은 무서움이자 서러움이었고, 외로움이자 분노였다. 때로는 너무 빨리 가 버린 아빠인지, 아니면 지금 내 옆에 없는 카지노 게임인지, 아니 사실은 아무도 원망할 수 없기에 누구를 향해야 할지도 몰랐던. 그런 대상 없는 원망이고 분노였다.


카지노 게임는 남들보다 뜨겁게 울던 나의 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 카지노 게임와 가끔 카지노 게임를 외치며 마음을 털어내버리지 않았다면, 나도 교수의 질문 속 아이처럼 삐뚤어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를 혼자 집에 두어야 했던 카지노 게임 마음이 오죽했을까? 어린 딸이 카지노 게임를 기다리며 만들어 놓은 허술한 양말 인형, 카지노 게임의 주부생활 잡지를 꺼내보고 따라 만든 찰흙 꽃, 아빠가 막내인 나만 제일 조금 보고 가버렸다며 혼자 단정하게 써 놓은 일기 숙제. 언제나 '우리 착한 딸.' 하며 칭찬해 주던 카지노 게임의 얼굴이, 이제와 복잡 오묘한 표정으로 새롭게 읽힌다. 카지노 게임가 되어보니 알겠다. 집안 곳곳에서 카지노 게임를 기다리던 딸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카지노 게임는 어린 내가 얼마나 기특하고 안쓰러웠을까.


그 시절이 무섭고 외로웠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테다. 카지노 게임는 나보다 무섭고 외로웠을 것이며, 나보다 서럽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기특하고 안쓰러운 딸을 위해 끝까지 그 뜨거운 감정을 이겨낸 카지노 게임에게, 이제는 내가 카지노 게임를 외쳐주고 싶다. 이번에는 또 한 번 함께 힘껏 외친 뒤, 부둥켜안고 울며 서로의 세월을 위로하고 싶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의 잡지를 보고 따라 만든 찰흙 꽃. 카지노 게임는 우리 딸이 초1 때 혼자 집 지키며 만들어놓은 꽃이라며, 내가 시집갈 때까지 이 꽃을 장식장에 보관해 두셨다.



*커버 이미지 출처: 123r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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