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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17. 2020

카지노 게임, 이제 나는 남편있어서 캠핑 갈 수 있는데 어쩌지

캐나다가 왜 단풍국이라 불리는지 알게 되는 곳. 알곤퀸 주립공원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단풍 카펫을 잊을 수 없다. 공원 면적만 서울시의 10배라는데, 파란 하늘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단풍잎에 반해 꼭 이곳에 다시 오자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여름. 캠핑장비를 들고 다시 한번 알곤퀸을 찾았다.


알곤퀸 캠핑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 나를 내던지는 일이었다. 사람의 손길이라곤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캠핑사이트, 사슴과 곰이 사는 숲, 내 발 옆으로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다람쥐. 카누를 타고 호수에 호수를 옮겨 다니며 둥둥 떠다니면 내가 누운 곳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평안함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밤이 되자 더욱 상쾌해진 공기의 적막한 숲. 이따금씩 터지는 모닥불 소리 위로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고 생애 처음 본 은하수는 신비롭고 황홀했다.


"좋다.”


나지막이 내뱉고 나니 카지노 게임가 생각났다.

'한국은 아침이겠네.'

지구 정반대 쪽, 나보다 13시간 빠르게 하루를 시작했을 카지노 게임. 괜스레 '여로운' 안부인사 대신 손녀들 사진이나 보내드려야겠다 싶어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냈다. '여기에서 살고 싶어!'를 하루 종일 외치던 딸들의 행복한 얼굴이 사진첩 속에 가득하다. 캐나다의 자연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고 싱그럽고 생기 있는 표정. 이런 사진들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여보, 우리 애들은 참 좋겠어.

당신 같은 아빠가 있어서 이렇게 캠핑도 오고."


아빠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럴 수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4살, 사진 속 내 딸의 나이. 아직 덜 자란듯한 귀여움과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하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나이다.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이렇게나 예쁜 나이인데, 우리 아빠는 나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4살에서 멈춰버린 아빠와의 시간. 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아야, 니 대반동 바닷가 간 거 기억 안 나냐.

너 번쩍 들어가꼬 바닷물 만지게 해 주고 그랬냐."


왜 나만 아빠랑 찍은 사진이 별로 없냐고 투정하는 막내딸이 짠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잊지 말라고 그랬는지. 카지노 게임는 기억이 안 난다는 나에게 ‘목포 대반동 바닷가’를 부지런히도 말하곤 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살면서 아빠가 보고 싶거나 그립지는 않았다. 단지 아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 이럴 때는 정말 아빠가 필요한 거구나.' 하는 뼈 아픈 순간이 반드시 찾아왔다. 그럴 때면 떠올려 그리워할 얼굴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아픈 기억도 추억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데, 떠올리고 행복해할 만한 추억조차 없는 것이 그렇게도 서글펐었다.


캠핑을 하며 찍었던 우리 딸들 얼굴, 멋진 풍경, 그리고 잘 나온 가족사진 하나를 카지노 게임에게 보냈다. 한참 남편과 별을 올려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행복해하는데, 핸드폰 메시지 알림 소리가 났다. 카지노 게임의 짧은 답장.


“잘했다.”


왜일까. 짧은 답장 하나에 마음 한편이 미안하고 짠한 이유.


언젠가 카지노 게임가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물었었다.


"아야, 너 시방 캐나다 사는 거 힘드냐. 사돈어른이 너 고생한다고 걱정하시던디."

“왜? 카지노 게임는 내가 안 힘들 것 같아?”

“착한 남편이 있는디 뭣이 힘들대. 김서방이 힘들겄지.”


딸의 고단함은 몰라주고 사위만 칭찬하려는가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드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카지노 게임는 남편만 있으면 세상살이 어디든 힘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멀리 캐나다로 가버렸다고, 독거노인이 바로 내가 아니냐며 불평하는 카지노 게임에게 무어라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대답했다.


“내 나라에서, 내 언어로 사는 게 아닌데 힘들지, 왜 안 힘들어. 그냥 내가 한 선택에 책임지면서 사는 거야.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망설이다 뱉어놓은 말이 전화를 끊고도 계속 곱씹힌다. 나는 어쨌든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있지만, 카지노 게임는 아닐 텐데. 갑작스러웠던 남편의 죽음도, 6년 전 훌쩍 떠난 딸의 캐나다행도 결코 카지노 게임의 선택이 아니었는데. 선택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카지노 게임는 얼마나 단단해야 했을까, 얼마나 용감해야 했을까.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세상에 남겨진 자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떠나버린 행복한 딸을 지켜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몹시도 애잔해진다.


그 날,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한 알곤퀸의 밤에, 내가 보낸 가족사진을 보며 카지노 게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딸을 보며 아빠 없던 어린 나를 떠올렸던 것처럼, 카지노 게임도 나를 보며 남편 없이 남겨졌던 젊은 날을 떠올렸을까.


카지노 게임 말이 맞다. 이제 나는 착한 남편과 함께, 어린 시절 아빠와 못해보았던 것을 하나하나 해 보며 차곡차곡 추억을 쌓는 중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무겁다. 나의 결핍은 채워져 가는데 카지노 게임는 어디로부터 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카지노 게임를 생각하면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든다. 남들이 평범하게 가진 것들을 가지지 못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커버 이미지 출처: thedy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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