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춘기 아이들을 대하는 법
"이번 여름 방학에는 어딜 갈까?"
"아무 데나."
"가보고 싶거나 궁금한데 없어?"
"......"
"응? 가람아! 너는 가보고 싶은 데가 없냐고?"
"방콕"
"응? 뭐, 방에 콕 박혀있고 싶어?"
"정답!"
"아~ 진짜! 장난하지 말고~"
"진심, 레알~ 개 귀찮아!"
일 년에 두 번의 방학과 두 번의 명절 그리고, 아이의 생일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전남편과 나의 약속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나서부터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지켜졌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는 나름 엄마의 장단에 맞춰 신나게 놀아주는 시늉이라도 했던 아들이 슬슬 엄마 아빠와 같이 가는 여행에 재미를 못 느껴선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귀찮아하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번 여름엔 애 아빠가 휴가 일정을 맞추지 못해서 아들과 둘만의 여행을 가야만 했는데, 이 녀석이 도통 협조를 해 주지 않았다.
주말이면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같이 있고 싶다고 울던 어린 아들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 2의 아들에게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벌써 귀찮은 일이 된 걸까? 싶은 마음에 많이 섭섭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 아들에 대해 고민도 나누고, 서운했던 마음도 털어놓으며 아들이 왜 그런 걸까? 생각해 보았다. 내 얘길 듣던 친구가 딱 한마디 했는데, 바로 접수가 됐다.
"야! 너 중학교 때 주말에, 방학 때 부모님이랑 놀러 다녔어?"
"맞네! 너희들이랑 늘 붙어 있었네~이야~ 울 엄마도 이렇게 서운했겠구먼?"
그랬다! 개그콘서트가 슬프다고 울던 꼬맹이는 어느새 사춘기 김정은이 무서워서 전쟁도 못 일으킨다는 중2가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가람이는 단 한 번도 주말에 부천에 내려오기 싫다거나 이번 주엔 엄마한테 안 갈 거야!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늘 금요일 밤이면 아기 때부터 쓰던 노란색 트렁크에 갈아입을 옷가지를 넣어두고 내가 데리러 가는 시간까지 핸드폰에 들어갈 기세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를 만나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 쫑알쫑알거리던 아이는 없고 의자를 뒤로 팍 젖히고 반쯤 누운 자세로 핸드폰 게임만 하는 불만투성이 중2 청소년만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여러 가지 이유도 있었지만, 아들의 사춘기 때문에 삶의 터전인 부천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직은 함께 살 집을 얻을 능력이 안 되었기에 내가 아들이 지내는 시댁과 가까운 곳에 살면 주말에 꼭 엄마집에 오지 않고 친구를 만나 놀거나 친구들과 여행을 다닌데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나도 덜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고, 애 공부, 학원 등을 참견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람이는 내가 서울로 이사를 가서도 매주 집에 왔다. 내가 데리러 가지 않아도 자기가 버스를 타고 엄마 집에 와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와서 내게 툴툴거리고, 내 잔소리를 무시하며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갔다. 나는 슬슬 가람이 눈치를 살피게 됐다.
"학교 생활은 어때? 너는 왜 친구도 안 만나?"
"나, 친구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끝이었다. 걱정이 됐다. 정말 친구가 없는 것인가? 도통 남자아이인 아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나는 어느 날 같이 공부하는 친구 중에 아들 또래의 범진이에게 살짝 물었다.
"선생님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데, 요즘 도통 나랑 말을 잘 안 한다? 친구에 대해 물어도 친구 없다고 그러고... 그래서 선생님 너무 고민 돼"
범진이는 중3이었는데, 그 친구의 대답에 나는 폭소가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중2면 한창 사춘기 시작할 나이잖아요. 개 폼 잡고 고독한 척하고, 저도 엄마한텐 얘기 잘 안 했었어요. 내년엔 조금 나아질걸요. 카지노 게임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이해하세요. 다 괜찮아져요. 그냥 두시면 돼요."
"아~ 그냥 두면 되는구나!"
"네! 뭐라 하고 잔소리하면 더 짜증 나고 하기 싫어요. 조금 크면 괜찮아져요"
"그래! 이야~ 중3은 확실히 다른데? 너 개 멋있다?"
"에이~ 뭘요"
"근데, 범진아! 엄마들은 너희가 아직도 어린애 같아서 걱정을 하게 되거든? 너는 다행히 지났다니까 얘기하는데, 엄마들도 너희를 품에서 떠나보낼 준비가 필요하니까 가끔은 엄마의 섭섭함도 헤아려드려~^^"
"네! 근데, 우리 엄마는 너무 바쁘셔서 잔소리하실 시간도 없으세요."
"그러셨구나! 엄마 잘 챙겨드려~ 너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잖아!"
"네~ 알죠"
"엄마의견도 묻고 상의 같은 것도 해 주고"
"선생님도 아들이랑 이런 얘기도 편하게 해 보세요"
"그래, 그래야겠다. 고마워!"
그리고, 그해 여름 나는 아들과 전주로 여행을 갔다. 둘 다 맛있는 걸 좋아하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한 번 떠나보자! 하는 생각으로 한옥마을 근처에 숙소를 잡고 며칠은 텐트 칠 곳을 예약해 둔 뒤 전주로 떠났다.물론 아들은 여행 내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나 역시 아이들이 커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때가 있다.잘 풀던 교재를 밀린다거나, 수업 중에 조잘거리던 애들이 말 수가 줄어들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부모님에 대한 불만 또는 친구에 대한 고민 등을 털어놓을 때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 중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때 아이들이 무심한 듯 던지는 말속에서아이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카지노 게임 싶어 하는구나! 아주 사소한 것에도 고민카지노 게임 걱정을 카지노 게임 있구나! 아직은 어린 마음속에도 자신과 가족 어떤 아이들은 나라까지도 걱정을 하는 마음을 담고 있구나! 하며 대견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영우는 미국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과 12살까지 살다가 그곳에서 사업실패한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영우의 부모님은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며 먹고살기에 집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곳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전혀 연고가 없던 번동으로오게 되었다.
영우의 엄마는 일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직 학원을 보낼 여유가 없었기에 뒤떨어진 학습을 채우기 위해서 학습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영우와 만나게 되었다.
영우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재계하기 위해서 식당을 하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보니 영우는 늘 혼자였다. 영우의 유일한 말 벗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내가 전부인 듯했다. 물론 학교선생님과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바쁘게 소통해야 하는 과정 속에서 영우의 한국어 실력이 그리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우는 말하기보다 듣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영우와 안 되는 영어를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한 지 일 년 반쯤 되어, 영우가 딱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의 수업시간이었다.
영우가 수업 중에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have a nice day~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