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 모리미 도미히코(랜덤하우스코리아)●●●●●●◐○○○
당신은 '열대'라는 일그러진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시라이시 씨는 그런 말로 카지노 게임 추천를 시작했다.
그런 그녀도 학창 시절에는 나름대로 다양한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자 일과 관련 있는 책을 읽는 게 고작인 상황이 됐다. 유익한 책은 한도 끝도 없이 많았던 터라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지식을 흡수했다. 바쁘게 생활하는 사이에 소설을 읽는 습관을 잃고 말았다.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시라이시 씨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 p. 47. 학파의 남자
. 온다 리쿠의 초기작 중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이 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중편을 하나로 묶은 소설인데, 장르도 등장인물도 전혀 다른 네 개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수수께끼의 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작가가 자비로 직접 출판했기에 극히 적은 숫자만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조차도 작가가 직접 회수했다는 얘기도 있고, 이제는 시간까지 흘러 아무도 그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그 책을 읽은 이들끼리 모여 그 책의 내용과 문장을 최대한 떠올려 복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그러나 온다 리쿠의 카지노 게임 추천가 으레 그렇듯 그녀는 특유의 문장을 통해 헤어나올 수 없는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놓고 나서는 그 책의 정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카지노 게임 추천하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궁금해하는 건 촌스러운 짓이기라도 하다는 듯 모호한 분위기와 긴 여운만을 남기고 끝을 맺을 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열대'를 읽으면서 온다 리쿠의 '삼월-'을 떠올린 독자들이 꽤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끝까지 읽을 수 없다는 책의 내용을 떠올려가는 사람들이라는 소개를 듣자마자 온다 리쿠의 카지노 게임 추천가 떠올랐으니까. 시간이 없었든, 분실했든, 누군가에게 주었든 간에 아무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 '열대'라는 책. 그리고 자신이 읽은 내용을 - 왜인지 대부분의 내용은 잊혀졌지만 - 떠올려가며, 책의 내용을 찾아 헤매는 '침묵 독서회' 사람들의 카지노 게임 추천.
당신이 거짓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은 분명히 술집에서 불가사의한 여성을 만났을 테고, 미술관에는 그 그림이 걸려 있을 테죠.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열대'라는 소설과 결부시킨 사람은 어디까지나 당신이거든요. 그런 사실과 마주치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걸 대신할 편리한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무한히 많은 사실이 있고 그중에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까? 당신 자신은 '열대'의 수수께끼를 조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별개의 사실들을 엮어서 새로운 수수께끼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망상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 수 없을 테죠."
- p. 214. 보름달의 바다
. 하지만 모리미 도미히코는 온다 리쿠와는 달리 매력적이지만 풀어나가기 힘든 이야기 자체에 과감히 뛰어든다.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새 소설의 단서를 찾기 위해 불가사의한 일들 사이로 교토를 누비는 이의 편지가 되고, 그러다 이 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험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현실과 허구가 점점 뒤섞이다 어느 새 현실은 사리진 채 허구만 남고, 그러다 또다시 허구와 현실이 뒤섞이며 점점 현실에 발을 디디게 된다.
가엾은 노인을 생각했다. 그는 어째서 '창조의 마술'을 쓸 수 있게 됐나. 그가 나를 '은인'이라 부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카지노 게임 추천한 추억이 그가 잊고 있었던 추억을 일깨웠기 때문에.
만들어 내려 하니까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창조의 마술이란 카지노 게임 추천해 내는 것이다."
이윽고 진흙 바다에서 커다란 물체가 떠올랐다. 진흙으로 형성됐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백열전구의 불빛이 반짝여 우리가 있는 파편 더미 밑에서부터 바다 위로 한 줄기 환한 길을 만들었다. 다수의 노점과 소나무 가로수, 붉은 도리이 카지노 게임 추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요시다 신사의 세쓰분 축제야."
이윽고 밤 축제의 소리가 뚜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p. 458. '열대'의 탄생
. 후우.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소개를 하고 나니 나 역시 열대를 읽은 이들처럼 이 책의 내용을 끝까지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표류한 섬은 어디인지, 마왕과 노인과 마녀가 누구였는지, 아니, 그 이전에 책 속의 '나'는 대체 누구였지? 왜 '열대'였더라? 그렇게 모리미 도미히코는 읽는 사람을 카지노 게임 추천의 물결 속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놓고, 그 카지노 게임 추천에 정수리까지 파묻혔을 때 갑자기 출렁거리던 카지노 게임 추천를 탄탄한아스팔트로 바꿔놓는다. 그렇게 다다른 '현실'이 원래의 '현실'인지조차 확실치 않지만 - 대체 이 책에서 확실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 '나'는 그 현실을 알고 있다. 낯이 익다. 그리고 그리워하고 있다. 그럼 된 거 아니냐고, 거기서부터 너의 현실이 - 너의 카지노 게임 추천가 시작되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너의 '열대'라고.
. 그래서 나는 굳이 되돌아가 질문의 답을 찾지 않는다. 한 편으로는 머릿속에 남는 편린들을 그러모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카지노 게임 추천의 끝에서 다다른 '현실'의 모습을 되읽는다. 그러는 동안 카지노 게임 추천 속의 '나'처럼 나에게도 내가 가진 '풍경'이, '열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늦가을. 맑고 높은 하늘. 넓고 한적한 차도. 햇살. 익숙한 작은 공원과 익숙한 오래된 도서관. 공원의 사잇길을지나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는 나. 낯익은 풍경. 벅찬 마음. 그거면 됐다. 그 풍경이 있는 한. 나는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잊지 않을 수 있다.
점차 바다의 반짝이는 빛이 흐려지고 눈앞의 바다에 무수한 섬이 떠올랐다.
섬들은 수평선 너머까지 바다를 가득 메우며 큰 시가지를 이루었다. 그건 내가 잘 아는 거리의 모습이었다. 바다에서 떠오른 히가시 산이 태양을 감추어 주위가 옅은 청색으로 물들자, 차가운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발을 적시던 바닷물이 사라지고 그 밑에서 아스팔트가 나타났다. 나는 요시다 신사의 참배길에서 나와 히가시이치조 거리를 서쪽으로 걷고 있었다.
대학 정문 앞에 접어들어 걸음을 멈췄다.
손바닥에 떨어지는 눈을 봤다. 진짜 눈, 교토 거리에 내리는 눈이었다. 이른 아침의 대학 일대는 고요했고 우뚝 솟은 시계탑 위로 눈이 계속 떨어졌다.
익숙한 추위에 몸을 떨며 나는 히가시오지 거리를 건넜다.
슌킨도 서점을 지나 찻집에 들어가니 커피 향기를 머금은 따스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작은 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침 신문을 집어 날짜를 봤다.
1982년 2월 4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 p. 501. 뒷카지노 게임 추천